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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1944년 생 전후 세대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는
2차세계 대전의 잔재가 남아 있는가 하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의 혼란시기와 같은
정치적 쟁점들이 깔려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이 외도를 다루고 있다.
또한 주인공들은 역마살이 끼었는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끝은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자신의 묵은 감정과 쓸 데 없는 생각과 집착을 털어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책의 표제로 삼은 <다른 남자>가 그 대표적인 예다..
아내가 죽은 후 우연히 알게 된 아내의 외도,
질투심에 불타 그 자취를 쫓게 되고..
결국 자기 방식으로 승화시키면서 소설이 끝을 맺는다.
이 책에는 모두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다른 남자>보다는
운좋고, 재능있고, 이기적인 남자 이야기를 다룬
<청완두>라는 작품이 흥미롭다..
어찌어찌하여 유명 건축가의 길에 들어 서고..
건축일을 하면서 만난 아내...
건축이 충족시켜 주지 못한 공허함은
소싯적 꿈이었는 그림을 그리면서 해소되는데..
미모의 화랑 주인의 눈에 띄어 화가로도 성공하고..
그림을 팔아 준 화랑 주인과 딴 살림을 차리고....
두 여자 사이를 오가다
그 탈출구로 우연히 여행길에서 만난
여대생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한 마디로 세 여자를 오가며
어느 한 곳도 정리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수도사의 옷을 입고 떠난 여행...
여행 중에 사고를 당해
가슴 아래쪽이 마비도는 불구가 돼 버린다..
남자가 여행을 떠난 1년여 동안...
아내는 남편이 하던 일을 이어서 성공하고..
화랑 주인은 그의 잠적을 그가 남긴 그림의 가치를 높여
이득을 보고..
치의학을 전공하던 여대생 역시 그의 이름을 팔아
치과 건물 설계로 돈을 챙기고...
결정적으로 남자가 사라진 후
세 여자가 같이 살며
남자의 명성을 최대한 살려 실속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의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퇴원한 그에게 그가 살던 집을 작업실겸 숙소로 꾸며 주곤...
그를 돌봐 주겠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조건으로...
세 여자는 그의 이름을 최대한 이용해..
건축가로.. 미술상으로... 치과 건물 디자이너로...
성공적인 삶을 누릴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았고....
작업실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남자...
누릴만큼 누리고 즐길만큼 즐긴 삶을 살아서인지...
여자들의 행동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아닌...
여자들에게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가져다 달라 해서
주지 않으면 파업을 해야겠다는 아주 소박한 욕심을 갖는 것으로
이야가가 끝난다..
어찌 보면 복잡하게 뒤얽힌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너무 쉽게 생각의, 삶의 집착을 털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단편 하나하나를 읽어 나가는 내내 들었다.
<다른 남자>의 마지막 구절인
"그렇지만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리라.." 가
그가 소설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인 듯하다..
어찌 되었든 색다르고 재미있는 이야기 구조와 주인공의 삶이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