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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할머니 고래책빵 그림동화 15
함영연 지음, 한혜정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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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늘 궁금했다. 정말 주기만 하는 사랑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괜찮은 걸까?

 어렸을 때 어른은 무적인줄 알았다. 눈물도 없고, 무서움도 모르고, 지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건 어른도 다 똑같다는 것이다. 어른도 힘들면 울고 싶고, 기대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눈물은 참고, 무서움에 눈 꾹 감고, 다시 힘을 내었을 뿐이다. 단단해 보이는 인생의 성벽 그 어딘가에는 아직 메우지 못한, 혼자서는 메울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


 공주의 할머니에게는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메우지 못한 빈 공간이었나 보다. 그립지만 그립다고 말하지 못한 시간. 그리움은 저 구석 깊은 곳으로 밀어 놓고, 하루 하루 살아내는 데 버둥거렸을 인생. 할머니가 가장 약해진 순간 그 공간에 불어온 바람은 유난히 더 춥고 세게 불어왔을 것이다.

 아기가 되기 전 자신을 공주라 불러주며 놀아주던 할머니는 이제 없다. 그러니 얼마나 실망스럽고 속상할까? 게다가 엄마 아빠는 콩을 옮기는 할머니 젓가락 끝과 할머니의 스케치북에만 눈을 둔다. 물론 할머니 곁에 할머니 손끝, 표정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공주는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런데도 노력하는 작은 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마음이 놓였다. 사랑을 받기만 했던 아기 공주가 이제는 사랑을 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성장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할머니는 언니와의 만남으로 빈 공간을 메울 수는 없겠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춥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눈을 감는 순간에는 언니를 만나셨음 좋겠다. 그리웠던 언니 손 꼭 잡고, 보고 싶었다고 백번이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니랑 숨바꼭질을 하고 마음껏 웃으셨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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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분은 여름이야 창비아동문고 320
변선아 지음, 근하 그림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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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인데도 익숙한 만남이 있다. 아직 첫 마디도 나눠보지 않았는데, 기분 좋은 만남. 나에게는 이 책이 그랬다. 표지만으로도 낯설지 않고, 첫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기분 좋아지는 책. 표지의 그림과 제목이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 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그 장면에도 뜨거운 햇살에 부서지는 푸른 잎들이 있고,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자전거가 있고, 어지러운 마음을 어루어주던 바람이 있다. 그 때 나는 슬아나 정음보다는 두 살 정도 어렸다. 그래도 그 나이 나름의 혼란과 슬픔이 있었다. 워낙 겁도 많고, 밖으로 나돌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책을 끼고 지내는 게 좋았던 나는 그 시기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다 나는 자전거를 만났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잘 타고, 잘 웃고, 따뜻한 아이. 한 쪽 귀가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던 낯선 모습의 아이가 대뜸 내게 보여준 세상 또한 너무 낯설었다. 자전거에 올라 보는 세상은, 그 세상이 던지는 느낌은 낯설었고 멋졌다.

 정음이와 슬아. 그 중 나는 슬아속에서 내 모습을 조금 더 발견했다. 정음이가 자전거를 탈 수 없었을 때 낯선 세상을 마주했다면 슬아는 자전거에 올라서야 자기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일도, 자전거를 타는 일도 둘에게는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처음은 조금씩 어긋나는 법이니까.

 처음이 힘든 건 어린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른들도 매번 '처음' 앞에 겁을 먹고, 움츠러든다. 정음이의 엄마처럼, 슬아의 아빠처럼. 하지만 먼지 쌓인 자전거처럼,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려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나를 마주하고 페달을 밟을 용기가 필요하다.

 정음이와 슬아가 여름 문턱에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결정에 여름 바람을 가득 담은 꽃다발을 안기고 싶었다. 정음이 엄마가 드디어 울음을 토해낼 땐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그리움과 현실의 무게 앞에서 그들이 다시 달리기로 결정해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청기를 끼고 있던 그 아이 삶도 결코 가볍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친구가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5학년 중순 즈음 먼 도시로 전학 가는 친구를 보며 펑펑 울었지만, 또 금세 아이가 없는 세상에 적응했던 것도 같다.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며 혼자 울었던 건 아닐까? 바람이 그 눈물을 날려주었던 건 아닐까?

 정음이와 슬아에게 서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둘을 자전거와 마주하게 도와준 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들이 여름의 라이딩을 지나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세 아이가 마주하게 되는 여름방학은 마지막이 아니라 더 길고 멋진 라이딩을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노을빛이 내 어깨를 감싸며 자전거를 힘차게 밀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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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뜨기 별 단비어린이 문학
함영연 지음, 황여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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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전 한 친구가 알록달록 끈을 엮어 만든 긴 줄을 꺼냈다. 그러자 다른 일을 하던 아이들도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의외였고, 낯설었다. 요즘 아이들도 실뜨기를 좋아하나? 그런데 신기한 것이 내가 어릴 적 만들고 놀던 모양 말고도 다른 방법이 여럿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틀리고도, 원래 있는 거라고 우기는 아이들 모습이 재밌기도 짠하기도 했다.

 사실 실뜨기는 몇 가지 모양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왜 그리도 설렜는지, 침까지 꼴깍 삼켰던 기억이 있다.

 은구에게 실뜨기는 단순한 놀이 수단이 아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선물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경모보다 공부를 못해 수그러든 마음도, 실뜨기 앞에서는 활짝 펴진다. 그러나 거짓말 앞에서는 실뜨기도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설아와 엄마와 친구들에게 거짓말한 마음은 실뜨기 별도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실뜨기를 하다 실수로 줄이 엉켜버린 적이 있다. 그걸 제대로 풀어내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던지. 자신의 거짓말로 뒤엉킨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설아와 엄마의 응원으로 은구는 자신의 엉킨 마음을 풀어내고, 경모와도 활짝 웃으며 마주한다.

 마음에도 관계에도 언제나 별이 반짝일 수는 없다.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실이 꼬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국 실을 풀어내는 것이 움직이는 내 손인 것처럼 관계읭 엉킴을 풀어내는 건 내 마음이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마음에는 항상 별이 반짝이면 좋겠다. 그래도 혹여라도 실이 꼬여버린다면 그걸 내 손으로 풀어낼 용기도 함께 빛났으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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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릴리와 천하무적 차돌 특공대 중학년 막대사탕 문고
박상재 지음, 김미정 그림 / 머스트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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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릴리와 천하무적 차돌 특공대를 읽고

 

저자 박상재

머스트비

 

 

  윙, 위이잉, 곧 꿀벌들을 만날 계절이 다가온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인지라 사실 꿀벌은 나에게 반가운 생명체가 아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외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뒷목이 간지러워 뒤로 젖힌다는 게 꿀벌을 깔아 죽이고, 나는 벌에 쏘인 경험이 있어 더욱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꿀벌이 사라져버리기를 원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가능하면 나에게 가까이 날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더 많은 꿀벌이 더 많은 꽃들의 사랑의 마술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릴리는 참으로 용기 있는 꿀벌이다. 공주로서 조금만 있으면 여왕의 자리에 올라 모두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릴리는 큰언니의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더 넓은 세상에서 사랑의 마술사로 살아가길 원한다. 이런 릴리의 꿈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여왕 덕에 릴리는 드디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꽃들의 사랑의 마술사로 살아가길 원했던 릴리는 꽃들에게 뿐만 아니라 봉순이와 노랑나비를 위해, 그리고 우리 집과 여왕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릴리 옆에는 함께 용기를 내고 멋지게 싸우는 미리와 영리도 있다.

  말벌, 이름만 들어도 뒷골이 서늘하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말벌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은 적도 있었다. 나는 말벌보다 수백 배가 큰데도 그러한데, 꿀벌들에게 말벌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까? 하지만 지켜야 하는 것 앞에 차돌 특공대는 그런 두려움 따위는 없다. 그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결국 자신이 속한 사회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자신이 꿀벌처럼 작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이 동화를 읽었으면 좋겠다. 몸집이 작아도 얼마나 소중하고 훌륭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지, 용기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하고 멋진 일들인지 느꼈으면 좋겠다. 릴리에게 영리나 미리가 없었다면 차돌 특공대를 그렇게 멋지게 이끌 수 있었을까? 세상 모든 친구들에게도 영리나 미리 같은 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보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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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도깨비와 밀곡령
함영연 지음, 장영철 그림 / 도담소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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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흙에 담기고 싶은 우리 씨앗의 노래

<아기 도깨비와 밀곡령>

 

글 함영연. 그림 장영철. 도담소리

 

 

 

 

 

 신토불이身土不二. 이 말은 한때 노래 제목으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가수가 나와 신토불이를 외치며 구수한 목소리로 우리 것이 몸에 좋은 것이여.”라고 말한 것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농민들의 눈물과 분노가 있었다. 외국 농산물이 물밀 듯 밀려들어오며 단순히 한 두 작물의 위기가 아닌 대한민국 농업 생사 여부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며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을 느낀 것이다.

 

이제는 소원이 다 되었다니까.

예전처럼 우리 씨앗을 틔울 수 있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어.”

그게 어디 너만의 꿈이니? 논이며 밭이며 모두 흙 향기를 갖고 사는데…….”

 

  당시 농민들의 마음이 <아기 도깨비와 밀곡령>에 나온 흙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리 땅에서 우리 씨앗을 틔우고 싶은 마음. 그것은 우리 밀, 우리 씨앗의 마음이기도 했다. 간질간질, 늘 몸이 간지러워 괴로웠던 우리 밀 씨앗은 사실 몸만 간지러웠던 게 아니라 마음이 더 간지러웠을 것 같다.

  씨앗이라 함은 마땅히 때가 되면 땅에 뿌려져야 하고, 싹을 틔워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씨앗이 외국 농산물에 밀려 간지러움만 참다 말라 죽어갔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미래에는 식량과 물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먹을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은 첨단의 무기를 들이고, 우주 기술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식량 자급 능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다 올해 50% 선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아기도깨비와 밀곡령> 속 우리 밀 씨앗은 아기 도깨비에 안겨 우리 흙에 뿌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아기 도깨비가 조금 더 바빠진다면 우리 땅, 우리 흙에서 더 많은 우리 농산물이 자랄 수 있을까? 그래서 식량 자급 능력을 높이고, 우리 농산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을까?

  결국 아기도깨비의 역할은 국가 관련기관의 몫이 클 것이다. ‘우리 밀 살리기와 같은 캠페인처럼 끊임없이 우리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실질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와 함께 우리 농산물을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 주권을 강화하는 일이라는 국민 인식 개선도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 인식이 결국 아기도깨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아기도깨비와 밀곡령>은 생각거리도 많이 던져주지만 곳곳에 씨앗처럼 뿌려져 있는 우리말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싹을 틔우면 그게 날개지 뭐.”라고 했던 아기 도깨비 말처럼 우리 농산물도, 우리말도 싹을 틔워 날개를 달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내려앉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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