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은 여름이야 창비아동문고 320
변선아 지음, 근하 그림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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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인데도 익숙한 만남이 있다. 아직 첫 마디도 나눠보지 않았는데, 기분 좋은 만남. 나에게는 이 책이 그랬다. 표지만으로도 낯설지 않고, 첫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기분 좋아지는 책. 표지의 그림과 제목이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 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그 장면에도 뜨거운 햇살에 부서지는 푸른 잎들이 있고,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자전거가 있고, 어지러운 마음을 어루어주던 바람이 있다. 그 때 나는 슬아나 정음보다는 두 살 정도 어렸다. 그래도 그 나이 나름의 혼란과 슬픔이 있었다. 워낙 겁도 많고, 밖으로 나돌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책을 끼고 지내는 게 좋았던 나는 그 시기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다 나는 자전거를 만났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잘 타고, 잘 웃고, 따뜻한 아이. 한 쪽 귀가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던 낯선 모습의 아이가 대뜸 내게 보여준 세상 또한 너무 낯설었다. 자전거에 올라 보는 세상은, 그 세상이 던지는 느낌은 낯설었고 멋졌다.

 정음이와 슬아. 그 중 나는 슬아속에서 내 모습을 조금 더 발견했다. 정음이가 자전거를 탈 수 없었을 때 낯선 세상을 마주했다면 슬아는 자전거에 올라서야 자기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일도, 자전거를 타는 일도 둘에게는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처음은 조금씩 어긋나는 법이니까.

 처음이 힘든 건 어린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른들도 매번 '처음' 앞에 겁을 먹고, 움츠러든다. 정음이의 엄마처럼, 슬아의 아빠처럼. 하지만 먼지 쌓인 자전거처럼,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려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나를 마주하고 페달을 밟을 용기가 필요하다.

 정음이와 슬아가 여름 문턱에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결정에 여름 바람을 가득 담은 꽃다발을 안기고 싶었다. 정음이 엄마가 드디어 울음을 토해낼 땐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그리움과 현실의 무게 앞에서 그들이 다시 달리기로 결정해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청기를 끼고 있던 그 아이 삶도 결코 가볍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친구가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5학년 중순 즈음 먼 도시로 전학 가는 친구를 보며 펑펑 울었지만, 또 금세 아이가 없는 세상에 적응했던 것도 같다.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며 혼자 울었던 건 아닐까? 바람이 그 눈물을 날려주었던 건 아닐까?

 정음이와 슬아에게 서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둘을 자전거와 마주하게 도와준 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들이 여름의 라이딩을 지나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세 아이가 마주하게 되는 여름방학은 마지막이 아니라 더 길고 멋진 라이딩을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노을빛이 내 어깨를 감싸며 자전거를 힘차게 밀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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