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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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가 어땠는 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운이 좋게 시험 점수를 잘 받아 한번에 원하는 대학엘 갔고, 고등학교까지 짓눌렸던 내 자유를 마음껏 풀어 헤치며 살았다. 방종까지는 아니었을 지라도, 나의 기본적 원칙 중 하나였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에 맞추어서 대학 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본 것 같다. 단 하나 소개팅 빼고. 아,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시험 때 공부는 했고, 강의도 들었고, 과제도 냈고 8학기만에 무사 졸업했으므로 한 걸로 치자.


졸업 후 잠시 '業'에 대한 방황 후, 기업체 취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기업체 취업이 쉬웠던 건 아니다. 나의 스펙을 보고 들어오라고 허락해준 곳은 오로지 지금 이 곳,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밖에 없었다. 그래서 뭐하는 회사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입사를 했고 난 무거운 엉덩이로 주저 앉아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몇년 후 수능으로 입시 제도가 바뀌었으니, 비교적 오랜 기간 안정된 입시 제도의 혜택으로 큰 혼란 없이 대학에 들어왔고, 유난히 수학이 어려웠던 시험 탓에 수학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나는 입학하며 등록금을 제하고도 오히려 방학 동안 놀 수 있는 용돈을 학교로부터 받았다. 학교를 졸업할 당시 서울에서 지리교사 TO 가 없었던 것은 정말 운이 나쁜 케이스였고, 결국 지금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졸업하던 그 때까지만 해도 맘만 먹으면 취업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입사하던 그 즈음에는 IT 붐이었고 기업마다 SI 업체를 비대하게 늘려가던 시기였다. 내 입사동기가 500명이 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다 몇년 후 바로 IMF 가 터졌고, 그 이후부터 대학생들의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갔다. 나도 한참을 팀의 막내로 살아야만 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의 20대는 어떠했는 지 돌아보게 됐고 그러다보니 장황한 삶의 궤적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의 파란만장한 20대에 비하면 너무나 우아하고, 고상하고, 편안하고, 그래서 배부르기만 한 20대이다. 나도 치열하게 살았다고 주장하는 20대이지만, 비할 바가 아니다. IMF 이후의 어려워진 경제를 온몸으로 껴안고, 그 때 벌거숭이 상태로 사회를 마주 대해야만 했던 불행한 세대. 더군다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집에서 태어나, 오히려 가정을 돌보아야만 했던 준소녀가장. 자기 몸 뉘일만한 공간이 없어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고, 점점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서 살아야만 했던 가난한 청춘. 이땅의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살아야만 했는 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맨얼굴 그대로 보여주는 바람에 가슴이 아프다.


한없이 당당하고,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이겨내는 눈부신 젊음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슬프다. 그런 젊음에게 이제 난 배때기 부른 기성세대일 뿐... 그러나 이제 내 얘기가 아니라고, 어깨 툭툭 치며 극복하라고 하며 뒤돌아서기에는 이 굴레가 너무나 크고 깊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면 그저 암담할 뿐이다. 청춘이 처한 현실을 청춘에게 해결하라고 해서는 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자기의 청춘 자서전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자격지심,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불쑥 불쑥 튀어나와 당황하게 만드는 허황된 욕심들, 가진 건 없지만 나눌 줄 아는 소박한 옛동네의 인심들, 가진 것 없어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위태롭게 이어지는 사랑,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인간 군상들이 지금은 하나씩 짓밟혀져 간 서울의 뒷골목들을 무대로 이야기 꽃을 피워낸다. 간혹 피식거리며, 간혹 시큰거리는 콧등을 만져가며 휘리릭 책장을 넘기도록 만드는 저자의 필력이 놀랍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들이 이 땅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상에는 기억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기억이 죄다 휘발되기 전에, 글씨를 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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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평전 - 잃어버린 진보의 꿈
이원규 지음 / 한길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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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나. 선배들로부터 4.3 항쟁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4월이라면 4.19 정도밖엔 떠올리지 못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현대사 공부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나라 현대사의 많은 부분을, 1000피스짜리 퍼즐을 끼워 맞추듯 간간히 조합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라고 하면 그저 고조선과 삼국시대, 고려, 조선만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 나라의 역사 교육. 나에게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근현대사, 특히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직후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여기저기서 조각조각 떼어와 누더기를 깁듯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지은이의 이전 책인 김산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과 책의 느낌은 비슷하다. 평전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일생 전반을 마치 소설처럼 강약을 가지고 긴장감 있게 풀어내면서도, 여러 연구자료들을 인용하면서 다양한 측면에서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인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은이는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 과정과 국가 수립 과정에서 누구보다 힘을 다해 일했으면서도 후세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이 큰 듯 했다. 그래서 연속해서 평전을 내놓았는데,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수도 없이 답사했고, 참고자료 열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두 읽고 참조했다. 그리고 이 세번째 평전의 경우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봉암을 다시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장감 있는 구성과, 일제치하에서 독립, 한국전쟁과 2,3대 대선까지의 다이나믹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조봉암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어우러져서 한번 잡은 책을 놓기가 어렵다. 절대 얇지 않은 분량임에도 옛날 이야기 읽듯 하다가, 신문의 정치면을 읽듯 하다가, 다시 르포 기사를 읽듯 하면서 만나는 조봉암은 정말 이승만이 두려워할 만한, 또한 우리 역사에서 절대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인물임을 확인했다.


모스크바에서 조선공산당의 대표로 인정받을 정도로 탁월한 식견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누구나 감화시킬 수 있는 언변을 지닌 사람이었고, 진보주의자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에도 농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발전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최초의 농림부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추진했던 선구자적 인물, 사민주의야말로 조국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임을 확신하고 진보주의자로서 두려움 없이 앞으로 전진했던 시대의 등불. 일본에 의해 억압 받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선택했고, 국가를 살리기 위해 가족마저도 뒷전이었던 사람.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갇혀 외롭게 죽어야만 했던 사람.


지금도 사민주의 정도의 이야기만 해도 종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굴레를 씌워대는 상황이니, 이승만이 모든 권력을 휘두르던 한국 전쟁 직후에는 오죽했을까. 그런 상황에도 주변의 협박과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익희가 급서하지 않았더라면 조봉암은 좀 더 살아서 시대의 소명을 담당할 수 있었을까? 그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조봉암이 법살당한 지 9개월만에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군다나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반대로 조봉암의 죽음 또한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아쉬움이 달래질 듯 하기에... 


다행히 조봉암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재판은 바로잡아졌다. 지난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 합의부는 재심을 열어 죽산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는 유가족에게 큰 보상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독립유공자로서 서훈 수여가 유보된 것은 한가닥 아쉬움이다. 정황 상 일본에 의해 거짓으로 성금 모금 광고가 신문에 실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광고 하나로 인해 친일 행적이 있기에 신청이 반려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이 사회의 '정의'가 어디에 있는 지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또한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언제쯤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하는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나라의 역사를, 그것도 승자에 관점에서만 기록되고 왜곡된 것이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도 보여지는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될까? 김산평전과 약산 김원봉, 그리고 죽산 조봉암. 이 세권을 책장에 잘 꼽아 놓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게 해야겠다. 그리고 말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 역사 속에 뿌려진 뜨거운 피와 젊음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함을, 그렇기에 우리는 의를 위해서는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그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거두어야 함을...


"우리가 못 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조봉암 옥중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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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성 父性 - EBS 다큐프라임 아빠가 된 남자를 탐구하다
EBS다큐프라임「아버지의 성」제작팀 지음 / 베가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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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는 날때부터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과 무관한 여자들을 보았던 탓도 있겠지만, 어떤 것이든 타고난 것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결정론 자체가 조금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에게는 부성애와 같은 감정이 도대체 언제 생길까가 참 궁금했다. 내가 임신했다고 얘기할 때도 남편은 드라마에서처럼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임신 기간 내내 들떠 있지도 않았고, 아기를 낳은 후 키울 때에도 남편은 한발 물러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해서 구박도 많이 받았고, 육아에 관한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 남편이라는 농담도 종종 했다. 더불어 사랑의 크기로 비교해보자면, 모성애 다음에 조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이모성애, 고모성애가 있고, 그 다음에 조부성애가 있고, 제일 뒤에 부성애가 있다고까지 자신 있게 얘기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한 것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 내 지인들의 경험을 대충 버무려서, 보편적인 모습을 뽑아내어 일반화 시킨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엄마보다 아이와 훨씬 더 친밀한 아빠들도 있고, 엄마보다 아이의 필요 - 기저귀 교체, 젖병 물리기, 음식 만들기 등 - 에 훨씬 더 능숙하게 대처하는 아빠들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개인의 성향 및 취향, 성격 탓으로 돌려야 하나? 이것 또한 선척적으로 그래~라고 일갈해버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결론이 되어 버리니 맘에 드는 결론은 아니다.


이 땅의 남자들은 지금의 아빠상과는 전혀 다른 아빠들 밑에서 자라왔다. 그 아빠들을 보면서 아빠 수업을 했고, 일부의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자라 자기 스스로 아빠 되는 법을 배우면서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아빠들은 과거의 아빠들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든 경제적 책임을 떠안은 채 아내에게 안 살림을 일임하고, 자식이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집구석에서 애들을 어떻게 키운 거냐고 큰소리 치는 남자가 과거 대부분의 아빠들이었다면, 지금의 아빠들은 그와는 좀 다르다. 많은 젊은 남자들이 친구같은 아빠인 '프레디'를 지향하고, 간혹 섬세한 남자들은 아가용품을 직접 만들며 2세를 기다리기도 한다. 남자들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보장되었고, 출산 휴가 정도는 눈치 보지 않으며 자유롭게 쓴다. 공무원 조직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실행에 옮기는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기를 키워주신 아빠의 모습에서 조금 더 이상적인 아빠의 상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아버지상을 만들어 나가는 젊은 아빠들이 지금은 당연한 게 되었다. 보면서 배우고, 부족함을 느끼며 또 배우는 과정에서 시대의 아버지상은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에게 모성애가 철철 흘러 넘치는 게 아니듯이, 남자들이 아빠가 되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자녀들의 양육을 어머니들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여 싱글맘일 경우, 아빠의 존재가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하고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만들어주거나, 스스로 그런 역할까지 감당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 제목과 광고 문구에 비해서 너무 이런이런 아빠들이 있다는 나열식이다. 남자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고 읽었는데, 그냥 내가 남편에게 늘 하던 잔소리를 책을 통해 보는 느낌이랄까. 부유수유 같은 조금은 쇼킹한 얘기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까지 굉장히 많이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너무나 아빠와 엄마를 남여의 성역할에 고정시켜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거부감도 드는 게 사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아빠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쨌든, 세상에 어떤 아빠들이 있는 지, 이 땅의 아빠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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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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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가 지승호와 박노자 교수의 대담. 

박노자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대놓고 좌파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지승호도 에필로그에서 말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특히 자신을 진보적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박노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전혀 좌파도 아니고 진보적이지도 않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불편해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내가 스스로 깨닫고 있는 나의 약점을 후벼팔 때의 아픔이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귀화를 해서 우리 나라의 국민인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한곳에 꿋꿋이 서서 싫은 소리를 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니까.


대선 내내 고민을 했었다. 누굴 찍어야 할까. 친구 말대로, 내가 어차피 문재인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을 신뢰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고민해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정말 별 것도 아닌 수천만표 중에 한표지만 그래도 누가 과연 '내 후보' 인가를 생각하느라 머리도 아팠고, 그러다 다시 주적이 누구인지를 고르다가, 다시 내 편을 찾다가, 다시 차악을 고르다가, 그러다 혼자 짜증내다가... 그리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대선이 끝나고 멘붕을 겪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어든 '좌파하라'. 사실 내가 이 책을 산 것도 잊고 있다가, 사무실 이사를하느라고 짐을 싸면서 발견했다. 그것도 멘붕에 빠진 바로 그날. 무슨 계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집어 들었고, 나름 힐링이 되었다.


물론,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은 거겠지만, 얼마나 나을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일까.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박근혜가 노무현 프레임을 걸고 들어온 것도, 문재인이 결국 그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단순한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분명한 실정 때문이었던 것이고, 참여정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 머리를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여러 수치를 가져와서 경제 지표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식자층이나 있는 사람들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지표일 뿐, 특히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참여정부는 또다른 MB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일본에도 극우 정부가 들어섰고, 우리가 늘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북유럽에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박노자는 그것을, 좌파 진영의 무능 때문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좌파가 우향우를 하면 할수록, 거대담론만 뇌까릴 수록, 현실과 타협할 수록, 현실의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들에게 아무런 대안을 주지도 못하고,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지를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탓하거나, 내 울타리 밖을 탓하게 되고 그것이 극우주의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박노자가 생각하는 좌파, 박노자가 생각하는 진보, 박노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교육, 남북관계, 정치, 스타 지식인, 도덕성, 투표...등을 매개로 조근조근 잘도 풀어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박노자는 어쩌면 대선의 결과까지도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박노자의 의견에 100%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나도 불편한 구석이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우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좌파가 뭔지,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차분히 정리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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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강 - 불확실한 시대, 지성에게 길을 묻다
송호근.유홍준.정재승 외 지음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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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으로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는다'라는 주제 하에 우리 나라의 대표 지성이라 할 수 있는 8인을 초대해 매달 한번씩 강의를 했고, 이 강의를 책으로 묶었다. 사실, 책을 골라집을 때는 눈에 띄는 몇몇 사람을 보고 골랐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책을 펼치고 나서야 이게 '신동아'에서 펴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8명에 김지하가 끼어 있다는 걸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안 샀을 수도. ㅋㅋㅋ 산 지 6개월이 넘은 것 같은데, 이제서야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민망함을 느꼈다.


송호근 교수의 강의는 딱히 인상적인 것이 없었고, 유홍준 선생이나 정재승 교수의 경우는 직접 강의를 들어본 터라 내용이 대부분 겹쳤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론이야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했기에 또 딱히 임팩트가 없었고, 김지하는... 두페이지 읽다 넘겨버렸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수도 없었고, 완전히 중언부언대는 듯한 느낌이랄까. 앞뒤가 안 맞는 얘기에, 무슨 사이비 교주 같은 얘기만 잔뜩 늘어 놓고 있는 듯 했다. 거참... 뭔가 그래도 성의를 표해 보려 했는데 능력 밖이었다.
문정인 교수의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뭐, 중국의 부상을 주의 깊에 보면서, 한미 동맹, 북중 동맹을 어떻게 하느냐,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는 얘기이면서, 정확한 대안을 내놓는 건 없었다. 그냥 잘 하자... 정도? 마지막 이덕일 선생과 도정일 교수의 강의가 나름 재미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를 이야기하는데, 현재 우리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왜곡된 관점의 시작이 인조반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노론의 집권과, 그들이 주무르는 정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지었고, 그들이 갈아 치웠던(?) 왕과 조선의 패망,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까지. 이분이 썼던 책 중에 조선왕독살사건을 예전에 읽었었는데 조만간 다른 책들도 쭉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정일 교수의 경우는 인문학과 문명에 대한 성찰, 관용이라는 화두가 무척 신선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가 과연 문명의 세계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강의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니,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불끈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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