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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삶의 의미를 9하라!>
"당신에게도 진정으로 그리운 스승이 있나요?" ,,, 하고 본서의 표지를 넘기게 되면 가장 먼저 묻고 있어요.
나에게 묻는 걸거예요~_*
초등학교 6년, 중 고등학교 도합 6년 그리고 또 4년이라는 대학시절동안 나를 가르치며 다독이고 칭찬해준 선생님은 많았던 것 같은데,,, 투명하게 떠올릴만한 추억을 공유한 스승님은 없는 거 같아요.
그래요, 이런식으로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은 거짓말일지도 몰라요.
그들이 나에게 가르침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영단어를 쉽게 암기하는 비법이나 수학공식을 가르쳐 준 게 전부일거에요. 바람직한 인성 교육을 심어줬다거나 친구들과 추억을 공유하도록 소중한 수업시간을 할애하는 인간적인 선생님은 단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그리운 스승은 없다'는 말로 표현하는 게 더 적절치 않을까 싶어요.
어쩐지 나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은사님들께 이렇게 불손한 진실을 말하고 나니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대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고 나면 놀라울 만큼 자유로워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은 오프라 윈프리나 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의 멘토이기도한 <마야 안젤루>가 쓴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내가 반드시 기억하고 싶은 문귀라서 살짝 인용해본 거네요.
사실, 제가 서점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같이 읽으면 좋은 '필독서'라고 써 있길래, 잠깐 뒤적여 보니까 10주년이나 되었더라구요. 저만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책장에 되돌리고, 이쪽을 구입한 거예요. 가끔 이럴 때가 있지 않나요? 짜장면을 먹고 싶다가도 옆 사람이 짬뽕 국물을 후르륵 맛있게 먹고 있으면 그 분위기에 짬뽕을 주문하곤 하는 일 말이에요. 저는 책 읽는 타이밍을 두고도 그런 적이 많은 독자거든요.
한 때, 모리 교수님의 제자였던 미치가 인생을 낙담하고 있을 때, 우연하게 텔레비전으로 모리의 병을 알게 되어 운명처럼 재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아무렴, 이 우연한 책은 읽을수록 저에게는 운명처럼 다가오더라구요. 죽어가던 내 가슴이 다시 촉감과 체온이 녹아들어 묵직함으로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달까요,
,,, 실은, 제가 요즘 삶에 대한 '열병'을 앓고 있거든요.
가까이 지내던 사람한테 마음의 상처를 받으니까 충격이 너무 큰 탓인지 눈물조차 안나더라구요.
그래서 빈둥빈둥 푸르러만 가는 하늘만 쳐다보면서 한 숨만 쉬게 되고, 서점이나 기웃거리면서 어떻게든 스스로 이겨내보려고 노력중인 찰나에 이 귀서를 발견한 거라서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 몰라요.
저처럼 하루하루 가슴 뛰지 않는 삶을 답답하다 느끼며 사는 사람들에게 모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을 어떻게 밖으로 표현하는지, 또 어떻게 안으로 받아 들이는지 그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요. 그러면서 미치와의 일문일답을 예로 들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람과 확실히 함께가 아니면 안된다'는 말까지 남기시잖아요. 사실 독자대로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마치, 저의 작은 가슴에 단단하게 못 박힌 이기심을 조목조목 꿰뚫어보고 난도질 당하는 기분이였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늘 외롭다고 느끼면서 딴 생각을 하거나, PC를 하면서 흘려듣거나 그러다가 미안하다 싶으면 변명이나 늘어놓는 경우가 제법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결별을 당하고 나니까, 이 모자라고 성의 없이 보낸 과거가 가슴에 절절나게 사무치는거예요. 왜 사람은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면서 이별이나 작별을 고한 뒤에나 후회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일까도 생각하게 되고요...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나를 스쳐간 그 수많은 은사님들을 위해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승의 날에라도 한 번 다가갔다면 좀 더 그럴듯한 관계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고 이렇게까지 허전한 기분은 덜했을텐데요. 사랑을 표현할지도 받을 줄도 모르면서 허우대만 멀쩡한 척 가식적인 삶을 살아온 기분이네요. 이처럼 마음에 죽비를 내려치는 이런 책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만 갱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것도 어쩔수가 없네요~_*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자 내가 삶의 의미를 배워나가는 한 가지 방법일수도 있겠네요 ^^
루게릭 병을 앓고 죽음의 '문턱'인 병상에서 행해지는 모리 선생님의 인생 지침서에서도 마치 제가 보고 느끼라는 듯이 그런 활자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더라구요. 죽음을 의식한 순간부터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들은 사라진다나요?
틀린 말이 아니죠. 나나 우리 인간들에게 존재하는 무수한 욕망, 그 대부분이 마치 생은 무한하다, 시간은 무한하다,고 느끼는 감각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시잖아요. 제가 고민하고 코 앞에 닥친 문제들에 사로잡혀 헤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누구라도 머지않아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흡사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간과해 버리기 일쑤잖아요. 100년도 채 못 살고 죽는데도 말이예요.
이 부분에서 모리 선생님은 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어쩌면 그 해답을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떻게 죽을까를 배우면, 어떻게 살지도 배울수 있다>고 말이예요. 저한테는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보라, 는 말처럼 그 에너지가 몸과 마음에 전해지더라구요.
그리고, 모리 선생님은 계속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인생은 끝난다. 하지만 그 삶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하고요.
어디서건 한 두번은 들어본 말일테고 참 간단한 명제잖아요. 죽어서도 관계는 유지된다 처럼요. 하지만 이 말이 허구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죽음을 목전에 둔 모리 선생님의 실화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실한 사람의 <말>은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중량감이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이 한마디입니다.
<남은 여생은 가장 내 자신답게 살고 싶다>는 문장요.
모리 선생님이 미치에게 비로소 죽음을 응시한 후 무언가를 배우라고 제안할 때 나오지요.
그 무언가는 분명, 인류의 삶과 죽음을 잇는 영원한 단어 '사랑' 일테지요.
역시 사람은 새로운 차를 사고, 집 평수를 넓혀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현대인들에게 필수도 동반되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책상 머리에서 펜대나 굴리는 사랑이 아니라 실천적인 사랑이다' 하고마, 우리 현대사회의 비정한 때를 밀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용사처럼 모리선생님은 자신의 생을 걸고 이 말을 전하세요... 저는 눈물이 핑 돌던대요?
여러분들은 어땠어요? 아무튼, 저는 내 마음의 지표축을 다시 한 번 재정립할 수 있게 만드는 든든한 스폰서 같은 책이였달까요, 앞으로도 무수히 잠겨 있을 내 인생의 고비길마다 삶의 열쇠를 집어내듯 꺼내서 읽어 볼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