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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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텐도 아라타를 내 머리속에 꼼꼼히 저장해 두고 있었다.
몇 해 전 한창 일본추리소설에 맛들일 때 '영원의 아이'와 더불어 '가족사냥'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들은 오츠이치의 zoo, 아야츠지 유키히토의 살육에 이르는병,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월광게임, 히라야마유메아키의 유니버설횡메르카토르지도의 독백,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을 비롯해 내가 죽으면 반드시 내 무덤에 챙겨가서 다시 읽고 싶은 "All time best 10"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뒤끝이 개운하고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이었다. 

그래, 나는 일본어 한 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면서 일본 추리소설작가 이름은 발음까지 또박또박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추리소설 마니아 맞다~_*!

이 책을 주문하면서도 그 때의 그 미끈미끈하고 끈적끈적했던 공포와 충격을 다시 느끼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이 '애도하는 사람'을 읽으면 가히 텐도아라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가족사냥'이 독자들의 뇌골수를 번번히 후려치며 그로테스크한 가족사의 애증을 그리고 '영원의 아이'가 촌철살인의 생명을 모태로 독자들을 현혹했다면 이 '애도하는 사람'은 아사다지로의 메인 테마인 눈물을 매개로 인간 심연의 모골이 송연해질만큼 눈물샘을 생리적으로 자극한다. 왜 이 책이 '리큐에게 물어라'와 함께 나오키상을 공동 수상했는지 심히 감격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맨홀처럼 뻥뚫린 내 심장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물이 한 마디로 '찔리는 책'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 나는 늘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TV로 최진영의 자살소식을 접했고, 당구를 치면서 수십명의 장정들의 목숨을 앗아간 초계함의 침몰 소식도 들었다. 그 뿐인가, 금세 내 기억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흉악범 김길태의 납치살인 사건을 침을 꿀꺽이며 인터넷을 사수하며 낱낱이 찾아 읽었던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 피해자와 유족들이 얼마나 큰 불행에 빠졌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현대인들이 죽음에 대해 얼마나 정신병리적인 감정의 황폐화에 빠져 있는지 경종을 울리며, 결핍된 인간관계를 담아내고 있기에 일말의 내 양심이 도저히 찔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목숨 내가 끊는데 그대가 무슨 상관?", "남의 집에 초상났는데 나하고 뭔 상관?"...'분명히 상관있다^.^!' 하고마, 이기적인 고독함에 길들여진 그 모든 현대인들에게 눈물로서 호소하는 책이 바로 이 '애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작가는 또, 이 눈물로만 호소하기를 멈추지 않고 제 아무리 억울한 누명을 쓴 자라도 능력없고 빽 없으면 매스컴조차 철저히 외면하는 진실에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 부조리도 처참하게 지적하고 있다. 유족들이 아무리 매스컴에 진실을 떠들어봐야, 매스컴은 그 어떤 아군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 6장의 에피소드 <집단 괴롭힘으로 살해당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있다. 

동급생 4명에게 구타로 사망한 소년은, 원칙대로라면 피해자인 소년의 유족들이 세상으로부터 동정되고 위로되어할 사건이지만 이 책에선, 가해 소년의 부모들이 경찰관이라는 권력으로 인해 정당한 법리적 해석이나 부검조차 없다. 그저 '사고사' 라고 이야기를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괴롭힌 4인조'가 '괴롭히다 살해당한 4인조'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이런 일은 그대들도 내 이웃 내 주변을 통해 종종 접해봤을 것이다.
특히, 멀쩡한 제 자식을 군대에 보내놨더니,,, 개 값도 안되는 의문사로 돌아오는, 유가족을 두 번 죽였던 그 사건들 말이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된다면 그 피해자를 과연 누가 동정할까?
,,,,,,,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 모든 외로운 죽임을 당한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
"생전의 추억을 잊지 않겠노라" 하고마,,,
"죽어서도 고독해질 필요는 없다." 하고마,,,

죽은 자에게 애도를 표한다는 것이 자칫 쓸 데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모금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위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들도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위선자로 불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우한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단 돈으로나마 조금의 성의를 표하는 사람이 외려 더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인간성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 <애도하는 사람>을 일생에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친구가 되고 싶다.
이렇게 볼륨있는 작품을 접한 것이 과연 몇 년 만일까. 정말정말 굉장하다. 추천글에서 왜 이 책을 21세기의 도스토예프키에 비견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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