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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마광수 지음 / 어문학사 / 2016년 4월
평점 :
마광수의 책을 접한건 이번이 처음이다만,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해당 저서의 기저에는 마광수의 강박적 피해의식이 짙게 드러난다. 마광수가 ‘인간에 대하여’를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은 지극히 본질적이다. 이를테면, 인간 개인의 자유가 최대화 되어야하며, 인간의 본능적인 에로스 역시 억압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들 말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만, 중간 중간 본인의 주장에 본인이 스스로 반대하는 듯한 모순적인 부분들도 드러나 있다.
마광수는 종교적 예시를 많이 인용한다. 중세적 기독교적 가치관이 인간의 자유를 탄압했다며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오늘 날에도 여전히 종교가 선택이 되지 못하고 필연이 되는 국가들도 존재하니 말이다. 전쟁의 상당수는 종교적 이념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그는 전쟁 역시도 인간이 즐기는 하나의 유희이자 놀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아무리 놀이라고는 하나, 전쟁은 죽음을 부르고 죽음은 더 많은 인간을 종교로 귀의시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는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마광수는 도덕적 금욕주의를 멀리하고, 실증주의적이고 육체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그 편이 ‘인간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허나, 넓은 의미에서 금욕주의에 대한 선택 역시 결국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방향인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에게 있어 현재의 세상은 가장 최선의 세계인 셈이다. 그는 본질을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 중세시대의 종교와 현대의 종교는 논리적 층위가 많이 다르다. (오늘날의 종교가 번영한 이유 역시, 인간의 본성인 기복신앙적 요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존주의 대한 예시를 들며, 실존주의적 태도를 제법 옹호하는 듯이 보인다. 실존주의는 분명 무엇보다 본질적이다. 하지만 그 본질을 깊이 응시하다 보면 인간은 금방 늙어 버리고 만다. 그 본질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책임져주지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주지도 않는다. 본질은 삶 자체를 돌보지 못하게 만든다. 실존주의가 ‘심연으로의 추락’을 필요로 한다고 전제한다면, 나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할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며 고통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굳이 심연의 밑바닥까지 핥고 올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있다면 되도록 피하는 편이 좋다. 니체가 말하길,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고통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니 인간이라면 본인의 감정과 관념을 소중히 돌볼 필요가 있다. (반드시 에로스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실존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적 세계에 발 담그고 있을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 편이 안전할 테니까.
성에 대해 외면하기보다는 직면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잘못된 성적 가치관을 가지기보다는 제대로된 교육을 통해 성에 대해 관대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나 성에 대해 봉건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종합적으로 마광수의 ‘인간에 대하여’는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이다. 글 중간중간 다양한 예시를 들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그 예시가 주제와 좀 엇나가는 듯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쉬웠던 점은,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사실이다. 본인 역시 그러한 부분을 캐치하고 있는 듯 하지만서도, 본인의 이상을 실천해나갈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