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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자주 하는 종류의 생각이 있는데 또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죽고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말하자면 이런 것들.
어떤 착한 사람이 나를 납치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부드러운 실크 스카프로 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내 두 팔을 등 뒤에서 묶고 극세사로 만든 보송보송한 안대로 내 눈을 가리고 하얀 봉고차에 태운 다음 내가 모르는 곳, 나를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줬으면. 그래서 딱 한달만 날 가뒀다가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같은 것들.
혹은 큰 길을 건널 때 작고 귀여운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이 나를 경쾌하게 탁, 치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살짝만 다쳤으면. 이를테면 팔만 똑, 다리만 똑, 예쁘게 실금만 갔으면. 그래서 다시 예쁘게 붙을 때까지 딱 두달만 깁스하고 누워 있으면서 누가 날 먹여주고 재워주고 닦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중략) 의식이 아득하게 흐려지면서 그런 생각들에 또다시 사로잡힌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류진 소설집 [연수]의 <동계올림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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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귀여우면서도 어딘지 살벌한 상상들이 한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이어진다. 언젠가 나도 해봤을법한 생각들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왠지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이정도로 구체화된 상상까진 아니더라도,
결국은 아무런 걱정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쉬고 싶다는 그런 생각.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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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소설집 [연수]에는 공감 포인트가 많다.
그럼에도 내 추측들은 한 끗씩 비껴나간다.
머릿속에 연상될만큼 뚜렷한 캐릭터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행보.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모습이 절대 그 친구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연수] 속 인물들도 꼭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런 소소한 반전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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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여섯작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 <연수>는 시원했고,
<펀펀 페스티벌>은 슬펐고,
<라이딩크루>는 웃겼고,
<공모>는 허탈했고,
<동계올림픽>은 먹먹했고,
<미라와 라라>에서는 겁이 났다.
읽다보면 답답한 결말도 위로가 되던 결말도 있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웃으며 볼 수 있는 부분들 위주로 기억에 남았었다. 술술 읽히는 문체기에 나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었던걸까?
2회독을 할 때는 느낌이 또 달랐다. 다시 읽으니 사건보다는 인물들에 조금 더 이입할 수 있었다. 모두가 희망차지만은 않지만,그럼에도 각기 다른 이유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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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연수>는 제목 그대로 '운전연수'와 관련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
순탄한 삶을 살아온 골드미스 '주연'.
그리고 운전 연수 전 혈액형을 묻고,
첫만남엔 남편 아침밥은 차려줬냐 묻는
'일타강사' 운전연수 아주머니.
초반부 둘은 완전히 상극같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 공통점에 묶이기도 하고, 나중엔 점차 유대가 생기는 모습을 모여준다. 정말 혈액형으로 성격을 파악하려고 했다는 아주머니를 보고도 '주연'은 이제 경계가 아닌 믿음의 눈빛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초면에 남편의 아침밥 유무를 질문했던 아주머니마저 남편의 아침을 차려주고 나오진 않는다 하자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그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셨던걸까? 아니면 별 생각없는 인사치례? 아무튼간에 경계해야할 무례한 속뜻을 숨긴 질문은 아니었다는 것. 이 대목에서는 왜인지 내가 아는 분들의 목소리로도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둘과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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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합숙 면접의 마지막 밤에 진행되는
협동 장기자랑, "펀펀 페스티벌"
면접자 '지원'은 밴드 보컬을 자원하고
거기서 훤칠하고 잘생긴 '찬휘'를 만난다.
그런데 찬휘는 참.. 이른바 '짜치는' 스타일이었다.
의견조율에 있어서 독단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조금만 알아도 다 아는 것처럼 나서는 그런 사람. 의견 충돌로 팀의 분위기가 부산스러울 때마다 '지원'은 열심히 중재하는 역할을 택한다. 일단은 이것도 면접의 한 과정이기에 분명 중재하는 모습은 가산점이 있을거란 기대로.
어찌저찌 연습을 마치고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찬휘는 지원에게 조언인 듯 훈수를 던진다. 지원에게는 노래부를 때 특정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이상한 쪼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의식해서 바꿔보라는건데, 무대 직전 이야기하는 심보가 참 투명하다. 그리고 찬휘의 의도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원은 자신의 '쪼'를 의식하다가 결국 크게 삑사리를 내고 만다. 그리고 이를 수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내 얼굴이 더 뜨거워졌기에 이 대목은 최대한 빠르게 넘어갔다.
면접이 끝난 후에도 찬휘와 지원은 간간히 연락을 이어갔다. 찬휘는 그 회사에 합격해 사내밴드부까지 만들어 활동했고 지원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말을 할 때 괜히 영어를 섞어 말을 하는 사람,
가사를 다 몰라도 흥에 취해 부르고 보는 사람,
처음 봤을 때 찬휘는 꼴불견에 가까웠지만
다시 봤을 땐 거침없이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는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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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천의 얼굴'에서는 많은 것들이 메이드된다.
회식 중 천사장의 손 끝에서는 각자가 원하는 비율대로의 소맥이 만들어지고
미팅 중 천사장의 말 끝에서는 새중앙에너지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착석만 하면 술도 안주도 입맛에 맞춰 척척 세팅이 되는 이 '천의 얼굴'은 새중앙에너지의 고정된 회식 장소였다.
‘수영’에게 거슬리는 것은 조미료 맛 뿐인 안주나 밍밍한 소맥 뿐이 아니었다. 불쌍한 천사장을 위한다는 그들의 태도도, 앞치마 사이로 보이는 천사장의 점도, 천사장의 자연스러운 스킨십도 모두 거슬렸다. 그래서 수영은 팀장직급을 달고서는 더이상 천의 얼굴에 일절 방문하지 않는다. 그렇게 수영의 팀을 서두로 사내 회식 분위기는 점차 변해가고, 확장 이전까지 한 천의 얼굴에는 파리가 날린다. 가끔은 천의얼굴에도 좀 가라는 김이사의 말에도 현팀장은 꿋꿋하다.
그리고 현팀장은 현부장이, 김이사는 김상무가 됐을 때 쯤 수영은 김상무의 천의 얼굴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간만에 들른 천사장은 수영이 사원 시절 골뱅이소면에서 소면만 골라먹던걸 지켜보고 있었고, 여전히 기억했다.
그 많은 사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취향을 파악한다는 것은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젊은 수영에게 거슬리던 천사장의 가슴 사이 점은 어느새부터인지 앞치마로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고, 천사장의 건강을 걱정하던 김상무의 말들과 함께 다니던 헬스장에 조건 없이 삼천만원을 후원한 할머니의 일이 겹쳐지며 사람에게는 응당 '그런 마음'이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아, 혹시? 하는 내 마음들을 서너번이나 꺾어내는 소설 <공모>.
기대와 실망과 체념을 반복하는 동안 원래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 싶었다.
천사장의 공모와 김상무의 공모와 세원의 공모.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려질 공모들까지..
모든 공모들이 다 다른 뜻을 띄지만 이런 걸 다 의심하며 살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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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따릉이를 타는 두 남자.
이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든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라이딩크루>는 크루장인 '나'와 새 부원 '도헌'이 왜 위와 같은 짓을 하게 되었는지의 그 과정을 그린다.
남둘 여둘, 그리고 크루장 하나.
평화로운 라이딩 크루를 운영 중이었던 '나'에게 '허니우드'라는 이름으로 추가 크루원을 희망한다는 메세지가 온다. 긴생머리만 보고 크루 영입을 허가했건만, 새로 온 크루원은 긴생머리의 남자 '최도헌'이었다. 도헌,, 헌,, '허니우드'.
심지어 도헌은 키도 180이 넘는 훤칠한 미남이었고 허리까지 기른 생머리는 단번에 잘라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하는 멋진 남자였기에 여자 크루원들의 관심은 모두 그에게 쏠린다. 심지어는 재치와 센스까지 겸비한 도헌에게 딱 하나의 콤플렉스는 길쭉한 몸에 비해 어색하리만큼 짧뚱한 팔, 그 정도? 내게는 너무 완벽한 도헌의 모습도 왜인지 그의 팔만큼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작가님은 도헌을 '로봇 물고기'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셨다는데, 어색하게 느낀 이유가 이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사건은 힘들기로 소문이 난 '아이유 고개'에서 벌어진다.
페이스 좋게 잘 달리던 도헌의 자전거가 사고로 넘어진다.
엎어진 도헌과 엎어진 자전거,
그리고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도헌의 자전거 바퀴.
도헌은 모터를 단 채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발끈한 크루장이 따지자 도헌은 나름대로 이목요연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고, 이를 듣고 있노라면 전부 맞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과열되는 분위기 속에서 나온 해결안이 다시 한번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자는 것이었고, 이 정당한 대결 사이 불공평한 것들을 걷어내는 과정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첫 장면의 홀딱 벗은 따릉이 승부였다.
크루장의 찌질함에 경악하다가도 다른 부원들이나 도헌도 다를바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나는 이들과 얼마나 다른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성찰보단 킥킥대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어서 좋았다.
+ 자전거는 엎어졌지만, 여전히 돌아가는 바퀴의 모습 하나로 소설을 쓰신 작가님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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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임에도 와이비씨 인턴기자 '선진'은 채용을 앞두고 현장 조사를 나왔다.
장소는 쇼트트랙의 미래라 불리는 '백현호' 선수의 자택. 그 안은 이미 일찍이 도착한 대형 방송국들의 기자들로 꽉 차있었다. 그 안에서 작은 방송국 소속 선진은 다른 기자들과 호환되지 않는 육미리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인터뷰 중 아무리 무시를 당해도 선진은 꼿꼿하다.
오히려 그들이 하는 소리를 '방백'으로 여기며 제 할 일을 했다.
이렇게 의연한 대처가 가능했던건 선진이 자라온 가정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선진에게는 첫 월급을 고대로 드리고도 새 핸드폰과 발렌타인 삼십년산 양주를 원하는 엄마 아빠와 입시와 직결된 중요한 숙제를 선진에게 그대로 맡기는 동생이 있다. 선진의 부모님은 연극의 주인공 역할인 요리사를 맡아 멋지게 해낸 선진에게 왜 공주 역을 하지 않았냐며 아쉬워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선진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백현호 선수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온 기자님들이 불편할까 좁은 집을 죄송해하지만, 백현호 선수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잘만 살아오던 집을 남들 앞에서 반복해 깎아내리는 어머니의 행동을 못마땅해한다. 둘 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참 다양하게 표현된다지만 그 표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의미가 덜해질지도 모른다. 서로의 뜻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에게 조금만 더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만 한다면 다툼과 설움이 훨씬 줄어 들 수 있지 않을까?
선진에게는 원하던, 그녀가 그려오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있었다.
잘난 나를 원하는 가족들보다는 내가 따뜻하게 쉬길 원하며 새 이불을 깔고, 전기장판을 미리 틀어두는 정도의 사랑.
조금 쉬고 싶을 때는 누군가 날 친절히 납치해줬으면, 팔이나 다리에 실금이라도 갔으면 하던 상상을 하던 선진이 사랑에 대해서는 그저 보송하고 따뜻한 이부자리, 이를 준비하는 부모님의 친절한 마음만을 상상한다. 나는 그게 조금 슬펐다.
성냥팔이 소녀 같은 선진에게 마지막만큼은 가장 두껍고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는 작가님 말씀을 듣고서야 나도 선진이가 따뜻하게 겨울을 잘 나길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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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신입생,
서른 둘 박미라.
'미라'언니는 온갖 스마트기기들을 펼쳐두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바쁘게 필기하는 스마트한 듯, 안 스마트한 사람이다.
필명도 꼭 그렇다. 본명 박미라, 필명은 LALA☆ (별까지 미라 언니가 붙인거다 내가 멋대로 붙인 거 아님) 자신의 본명이 소설가로는 어울리지 않아 본인이 직접 지었다는데, 그렇다면 라라는 소설가와 어울리는 이름인가?
자신의 비싼 차에도 ' LALA☆' 스티커를 떡하니 붙이고 다니는 재력가 미라 언니. 원래는 IT 계열에서 일을 하다가 이른 나이에 성공 후 꿈을 찾아 국문과로 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미라 언니를 두고 국문과에서는 '친미라파'와 '반미라파'로 나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하나 있다.
미라 언니는 소설을 못 쓴다.
미라 언니는 소설 창작회에서 깍두기 같은 존재였다. 언니의 소설이라면 읽지 않고 합평에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래도 언니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방학이 되고 하나 둘 방학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때, 미라 언니는 그리스로 한달간 "창작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창작 여행에서 [모두에게 별 하나]라는 중편 소설을 완성시켜오고, 그 소설은 교수와 학생들 모두를 놀래킨다.
세상에는 남의 성공을 100% 축하의 마음으로만 대할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많을까?
종종 축하 속에 나 자신에 대한 불만과 성찰을 동봉하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소설을 쓰는 것에 성공한 미라 언니를 보며 주인공이 느끼는 부러움, 시샘, 동경들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소설은 뭣도 아니라는 '나'에게 미라 언니는 이게 참 귀하고, 중요하다고 했다. '나'처럼.
언니에게 '나'와 '소설'이 귀하고 중요하단걸까, '내'가 소설을 귀하게 생각하듯 언니도 마찬가지란걸까. 일단 나는 둘 다 일거란 생각을 하며 읽었다.
아무 기능 없이 존재하는 것이 그 존재의 전부인, 존재성 존재라는 것이 소설에서 언급된다. 나는 사람도 이 '존재성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있는걸로도 충분히 존재가 입증되는 것, 아무런 입출력 장치가 없는 것, 그게 전부인 것. 우리는 이런 존재일 뿐인데 자꾸만 그 기능을 입증하려 해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미라 언니 처럼 사랑하는 것을 향해 달려도, 설사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본인을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나를 증명하려 하기에 너무 급급하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