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해나 개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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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진짜 웃기는 놈이네..'

나만의 순도 100% 칭찬이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이미 그 사람한테 빠졌을 경우가 다분했으니..


말마따나 세상에는 참 웃긴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만 해도 재미있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런 인복이 나를 또 유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같고!


사실 이런 즐거움이나 재미, 웃음은 의식적으로라도 늘 내 삶에 유지하려 하는 요소인데, 내가 웃기는 쉬워도 남을 웃게 해주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아무래도 처한 상황이, 웃음의 기준이, 지켜야 할 선이 각자 다 다른 법이니까.


나는 항상 유해하지 않고도 유쾌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이런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읽었다.

해나 개즈비의

<차이에서 배워라>

이 책은 두께가 상당하다.

약 550쪽의 분량을 이번 2주간 짬짬이 나눠 읽었다,

또, 이번엔 책을 읽기 전에 예습이 조금 필요했다.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을 다룬 책인데 그녀의 스탠딩 코미디 한편도 보지 않고 책을 읽으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라는 생각으로.. <해나 개즈비 : 나의 이야기>, <해나 개즈비 : 나의 더글러스> 이 두 편을 독서 전 미리 봤다.

사실 엄청나게 박장대소하며 쇼를 보지는 못했다. 쇼에서는 생각보다도 더 다양한 이슈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자폐, 동성애, 성폭력 트라우마, 그러고는 예술의 가치까지.. 당연한 소리지만 내가 개즈비와 완벽하게 같은 나라, 시대를 살지는 않았기에 100% 공감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긴장되게끔 쇼의 분위기를 노련하게 조절하는 개즈비 덕에 간간이 웃으며 즐겁게 관람했다.



나네트에서도, 차이에서 배워라에서도

보면 볼수록 이 짤이 생각나던 개즈비의 이야기들,

재밌게 산다기보단 뭣 같은 삶을 재밌게 이야기해준다는 거..

이것도 엄청난 능력이겠지.


이 책은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단단했다.

하지만 결코 재미없지 않았다는 것이 책의 포인트일 것이다.

'자폐와 ADHD를 가진 시골 출신 레즈비언'

개즈비는 소위 말해 비주류의 사람이다. 그녀의 시작은 태즈메이니아 출신의 뚱뚱하고 뭘 해도 어색한 레즈비언이었고 본인의 소수자성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으며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해로운 농담은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개즈비의 이런 변화는 단순한 생각 회로의 변화가 아니며,

이에 대한 심리와 상세한 묘사들이 바로 "차이에서 배워라"에 있다.


코미디 프로 속에서도, 널리 퍼진 밈에서도 종종 불편함을 느낀 소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편을 느끼는 것을 조롱하는 지금 당장의 우리 사회에서는 그간 내가 왜 불편해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라는 시대에 말문이 턱 막혀 사고를 멈췄었다. 이제라도 이 불편함의 이유를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에 웃을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이런 특권을 누리고 싶지 않다. 상처를 헤집는 농담이 아닌 상처가 치유되는 건강한 농담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이제는 정말 해로운 농담이 끝났으면 좋겠다.


여기부터는 책 속 한 줄

모아보니 팔천 줄 정도 되네요..

개인적으로, 말의 의미보다 말의 효과에 더 신경 쓰는 사람들은 무모한 마키아벨리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P45

어렸을 때 꿈이 개였다니 황당하다며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현재 매우 성공적인 개로 성장했음을 밝히고 싶다.

P67

그 발의 자율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나는 그때부터 이 '발꾸러기'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점차 그것이 언니에게서 떨어져 나온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녀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 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이 발꾸러기에게 했다.

P153

나는 당시로서는 엄마도 최선을 다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엄마의 최선이 충분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은 최선이고,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건 그뿐일 때도 있다.

P213

나는 용기란 현명한 판단이 더는 어려울 때 분출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P318

뚱보 농담은 나의 주식이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종류의 주식이란 기본적으로 수치심을 잔뜩 넣은 샌드위치이며, 수치심은 그다지 영양가 높고 조화로운 식재료가 아니다.

P342

어떤 사람들은 코미디란 상처에 시간을 더하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P348

제발,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특별하리라는 기대를 버리자. 평균적인 능력을 가질 권리도 인간의 기본권이다.

P418

나는 우리 모두가 마음의 장님이라 생각한다.

P419

그러나 다시 한번 선택이란 단어를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에어컨을 제공해 주는 것과 추운 곳에 내버려 두는 것은 다르잖아요.

P450

내가 개그 욕심 때문에 대본에 넣는 이 대사들은 나의 온 기억과 충돌했다. 실제로 그 순간은 전혀 웃기지 않았지만 유머로 각색되었을 뿐이다. 관객들을 불편해하지 않기 위해 내 칙칙한 트라우마 부분은 가지치기를 해버렸고 그러면서 내 모든 아픔도 고통 벽장 안에 쑤셔 넣어버렸다.

P474

그는 매체를 정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매체와 대화를 하려고 했다.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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