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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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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소설의 주 배경인 1991년 전후는 학생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로 저자가 대학생활을 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 세계에선 독재 정권에 대항하며 정권을 바꾸겠다는 학생들의 신념과 정권의 폭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학생 운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노태우를 불태우자’ 등 무서운 혁명 구호를 입에 올리기도 한다. 무력 충돌 속에서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죽거나 다치고, 폭력을 자행하는 국가 권력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온 몸으로 느끼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가장 끔찍한 저항 수단을 선택하기도 했던 때다. 함께 시위에 참가했던 학과 선배, 동생, 친구의 몸과 마음이 다치는 동안 만들어진 죄의식과 연민 속에서 개개인은 외로운 존재로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아무래도 2000년대 대학생들의 풍경은 이전과 다르다. 대학가에서 학생운동은 이제 학생들 다수의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없다. 정권과 정부에 대한 분노가 적혔던 현수막에는 이제 자격증, 편입, 취업과 관련된 문구가 적힌다. 요즘 대학생들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고 때로는 ‘반값 등록금 시위’ 등 집회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대외활동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생 신분이 아니라 알바 신분에 가까운 대학생도 있다. 취업의 문턱은 높지만, 속 편히 취업을 위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학생도 많다. 취직에 실패하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상환이라는 빚을 짊어져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고통과 좌절의 무게만큼 무겁다. 삶의 풍경이야 다를지 몰라도 고독하고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세계에서 개인은 “세차게 밀려오는 새로운 시대의 파도에 본의 아니게 휩쓸린 조개껍질”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린 ‘우연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거대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연한 존재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과 관계는 그물처럼 얽혀있다. 1991년 전후가 주된 배경이긴 하지만, 시점은 ‘나’의 할아버지, 정민의 삼촌, 강시우와 레이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앞선 세대의 삶을 죽 따라가보면 인물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강시우와 레이의 할아버지가 모두 군산 불이농촌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는 점, 나와 할아버지, 강시우와 아버지가 입체 누드 사진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 등. 이들 관계는 ‘우연’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미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필연이란 단어에 가깝다. 코엘료도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언급했듯, 모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본문에 정민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면서 “밤하늘에 떠다니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처럼 누군가에게 연결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장면이 있다. 무주에 있는 외갓집에서 밤 새 사방에서 송출되는 전파를 수신하려고 이리저리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정민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외롭고도 우연한 존재들이 누군가에게 연결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 인상에 남는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타인과 맺는 관계의 본질에 가까운 말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인의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소설 속 강시우의 정체가 담긴 비디오에는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저자는 그를 “살아오는 동안, 그를 위해 슬퍼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까지 그는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그를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네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며 조롱 어린 말을 내뱉을 때 강시우는 세상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존재로의 깊은 고독과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니란 것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소외된 존재 즉 타인과 연결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가를 잘 표현해준 말이다. 강시우는 한기복, 상희, 레이를 만나 그들과 연결되면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우리들 각자도 외로운 존재이기에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밤에 환하게 몸을 밝히는 반딧불이의 속성을 “죽을 각오를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몸짓으로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죽을 각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온전하게 이해받는 일은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일 게다. 그리고 저자는 ‘나를 온전히 나로 받아들여 주는 존재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독자들에게 정민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 “아주 작은 단서 하나만 있어도 나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할 사람이 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올”거라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저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고 관계를 통해서만 구원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혹은 다 읽고 나서도 생각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괜찮다며 위로하기 때문이다. 그게 이 책이 2007년 나온 이후로 꾸준히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아온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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