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들 - 존 버거의 예술가론
존 버거 지음, 톰 오버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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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예술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존 버거에게 듣는다면, 그들의 삶이 전면으로 들어오는 걸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다른 방법은 없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의 삶이 서서히 온몸을 적시고, 결국 눈물과 함께 찾아오는 그 서럽고 숭고한 감정. 타인의 삶은 이토록 선명하고, 생명력 넘치건만 늘 잊고 있다. 존 버거는 늘 그 ‘잊힘’을 다시 살려냈고.

유대감이 사라지는 세계에서 그는 항상 이야기꾼을 자처했다. <초상들: 존 버거의 예술가론>에서도 존 버거는 세기의 예술가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죽은 화가를 불러내 그의 생을 둘러보고 그의 그림과 그림 너머의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에 남는 건 에드가 드가의 이야기. 드가는 인간의 ‘견디는 능력’을 가장 찬미했다고 한다. 존 버거에 따르면 후기로 갈수록 드가의 그림에는 화가의 의지보다는 모델의 요구가 더 드러난다. 드가가 타인의 행위(예를 들면,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모습)를 그림으로 그려냈다면, 존 버거(우리)는 그림 너머에서 인간의 견디는 능력을 발견했다. 반면, 잭슨 폴록은 그림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그렸고’, 존 버거(우리)는 그의 그림이 이야기하는 당시의 상황-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허무의 시대-을 짐작했다.

드가에서 폴록까지, 어쩌면 예술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들려주는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일 것이다. 그리고 존 버거는 누구보다 타인이 삶-그 빛나는 숭고함-을 소박하고 인간적인 언어로 살려낸, 화가이자 이야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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