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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씹어 먹는 아이 -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1
송미경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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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 소감

1) 혀를 사 왔지

일 년에 한 번 삼 일간 열리는 무엇이든 시장에서 나는 를 산다. 나는 혀가 없다. 혀를 산 나는 말한다. 맛없거나 싱싱하지 않은 과일을 파는 과일가게에서, 어제 만든 빵을 오늘 만들었다며 비싼 값에 파는 빵집에서 용감하게 말한다. 평소 나를 괴롭히는 친구 둘을 만나 말을 한다. 한껏 비웃어 주고, 으름장을 놓는다. 주먹은 쓰지 않는다. 날카롭고 예리한 혀로 마음을 후벼 판다. 엄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은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시장에 간다. 나는 내 가방 속 물건들과 혀를 팔기 위해 돗자리를 펼친다.

==> 말을 한다는 것.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내 혀는 칼이나 창보다 더 깊게 마음을 후벼팔 수 있다, 숨겨진 진실 혹은 눙쳐놓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에 대한 뛰어난 형상화다. 할 말을 다 한 내가 다시 혀를 팔기 위해 내어놓은 설정도 신선했다. 내 입 속의 작은 혀가 새삼 무섭게 느껴진다.

 

2) 지구는 동그랗고

지구는 동그래서 집 나간 엄마는 돌고 돌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아빠와 영은이의 이야기다. 시를 쓰던 아빠는 집에 우주를 만들고, 할머니는 그 우주를 부순다. 나는 아빠와 함께 동네 바위에 올라 우주를 만난다.

====> 엄마의 부재로 느끼는 공허와 상실감을 아빠와 영은이가 공유한다. 삶에 단단히 발 딛고 있는 할머니와 대비된다. 현실에서의 초라함은 상상 속 우주를 불러온다. 공허하고 쓰잘데기 없는것이지만 때론, 그것이 삶을 버티게 하는 위로가 된다.

 

3)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

어느 날, 고양이 부부가 나를 데리러 온다. 자신들이 친부모라며 사람에게서 자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부부는 집으로 가 김장하고 있는 엄마에게 나를 데리러 왔다고 말한다. 엄마는 펄펄 뛰지만, 엄마와는 얼굴 생김새 빼고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나는 내가 진짜 고양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 부부의 느긋한 우아함과 차를 할짝이고, 쿠키를 갉작이는 모습은 나와 닮았다. 나는 엄마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길거리 고양이로 살 수 있을까 묻는 내게 부부는 살다 보면 저절로 알아지고, 때가 되면 할 수 있다고 한다.

==> 사람과 고양이의 대비가 절묘하다. 소금에 절여지는 배추처럼 가만가만 고양이 부부의 말에 순응하게 된다. ‘그렇군, 그렇군.’ 인정하게 된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고, 때가 되면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아이들에게 다그치고 재촉한다. 내가 낳았으니 내 자식이고, ‘내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당당하다. 그러나 아이는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아이의  자기 찾기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4) 아빠의 집으로

두 살 때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라던 나는 부모를 찾아 아빠의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새것이다. 밝고 깨끗한 환경은 낡고 더러운 그동안의 환경과 비교된다. 나는 이 집에 스며들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더러움에 싸여 있었고 내 기억들도 모두 더러운 것들이니까. 집에는 내 동생이라는 아기도 있다. 아기의 생일과 내 생일은 일주일 차이고, 부모님은 생일잔치를 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내 보육원 친구를 데려오는 것은 꺼린다. 보육원 친구 천우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나는 딱 하룻밤만 낡고 비좁은 그곳에서 잠들고 싶다.

===> 어릴 때 부모를 잃어, 부모를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부모의 집에 와서 느끼는 감정들이 섬세하다. 모든 것이 보육원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나는 친구가 보고 싶다. 혼자 남은 친구의 외로움도 아프다. 딱 오늘 하룻밤만 다시 그곳에서 잠들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찬찬히 펼쳐진다. 굳이 아이의 성장 변화로 결말짓지 않고, 마음결을 따라 그대로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손길이 따뜻하다.

 

5) 돌 씹어 먹는 아이

시골 강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아이 연수. 다섯 살 때, 돌을 씹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엄마의 비명을 들은 뒤론 먹지 않는다. 어쩐지 몹시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로 이사 온 어느 날, 엄마를 기다리다 화분 위 조약돌을 먹게 되고, 그때부터 다시 돌을 먹기 시작한다. 화분 속 조약돌, 어항 속 돌들, 동네의 모든 조약돌을 먹고 난 후 돌처럼 비슷한 것도 먹어 보았지만, 맛이 달랐다. 진짜 돌을 먹고 싶은 연수는 방학하자 길을 떠난다. 발길 닿는 곳마다 먹음직스러운 돌들이 널린 동네에 도착한다. 돌 씹어 먹는 할아버지와 돌 씹어 먹는 아이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동네를 떠날 때 할아버지는 돌을 한 보따리 건네준다. 집으로 돌아온 연수는 가족들에게 돌 씹어 먹는 아이라고 고백한다. 그러자 흙 퍼먹는 아빠’, ‘못이나 볼트를 먹는 엄마’, ‘지우개나 살아있는 것들을 먹는 누나의 고백이 이어진다. 가족들은 그동안 힘들게 숨겨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 소풍을 떠난 가족들은 각자의 음식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

===> ‘다름에 대해 이렇게 새롭게 쓴 작품이 있을까. , 지우개, , ,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먹는 가족들을 통해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다. 소풍을 떠난 가족의 4단 도시락은 그 자체로 사랑이다.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6) 아무 말도 안 했어?

병우는 수민이가 자꾸 자기를 바보라고 놀리는 소리를 듣는다. 수민이는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병우의 귀에는 자꾸 그 소리가 들린다. 수민이는 선생님도, 엄마도 모두 칭찬한다. 나보다 태권도도 못하는데 수민이만 칭찬한다. 엄마는 수민이랑 놀지 말라고 한다. 나는 억울하지만 수민이랑 노는 게 재밌다. 하굣길에 분식집에 들린 병우와 수민이는 떡볶이를 먹는다. 엄마는 평소에 밖에서 만든 음식은 못 먹게 한다. 나는 떡볶이를 두 개씩 먹는다. 아줌마는 떡볶이가 생각나면 언제든 그냥 준다고 오라고 한다. 나처럼 떡볶이 두 개씩 먹는 애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한다. 수민이는 바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고, 나는 들었다고 우기다가 서로 바보라고 놀리며 웃는다.

===> 병우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가혹하리만치 아들을 몰아붙이는 엄마를 보고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병우는 엄마가 치켜세우는 수민이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그래서 환청처럼 바보라고 놀리는 수민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병우는 그래도 수민이랑 논다. 재밌기 때문이다. 분식집에서 떡볶이 두 개씩 먹는 애를 보면 힘이 난다.’는 아줌마의 말을 듣고 병우는 마음이 풀린다. 그리고 수민이랑 서로 바보라며 장난친다. 아이들은 아주 조금만 인정해주어도 새파랗게 살아난다. 몰아붙이는 엄마 대신 풀어주는 다른 어른이 있어서 다행이다. 환청을 통해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7) 종이 집에 종이 엄마가

나는 윤지네 집에서 윤지랑, 아픈 윤지 엄마랑 종이접기를 한다. 할머니 집 앞에 나를 버린 가수 엄마는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라고 했지만, 나는 윤지 엄마를 종이 엄마로 생각하며 산다. 셋이서 종이학이나 나비 등 여러 가지를 접는다. 종이 엄마는 내게 죽음을 알려준다. 나는 울지 못했지만, 다정한 종이 엄마를 통해 울음과 죽음을 배운다. 종이 엄마는 죽는다. 가수가 되어 나를 찾아온 엄마는 내가 사는 집이 할머니 집이 아니라고 한다. 진짜 할머니 집에 데려가지만 나는 거절한다.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쏘다녔다고 타박하며, 군고구마를 준다. 여러 가지 화초를 다독이며 이 집에 오게 된 사연을 말한다. 나는 가만히 잠이 든다.

===> 눈앞에 종이접기 한 후, 펼친 종이가 그려진다. 그 낱낱의 접힌 자국들이 삶의 속살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버려진 아이를 말없이 품은 할머니의 큰 사랑이 먹먹하다. 미솔이가 그 사랑에 깃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한차례 광풍이 지나가도 아이들은 여전히 자란다. 허술한 세상 한 자락에 큰 사랑을 품은 이가 있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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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닭 치리 높새바람 51
신이림 지음, 배현정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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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 특별히 소재의 제약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투계를 선택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기우였다.

작품은 빠른 전개로 책을 놓을 틈을 주지 않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는 힘이 있었다. 투계의 자식인 부모 잃은 깜이를 경쟁 상대로 의식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우는 치리의 감정선도 재미있었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무심한 듯 치리의 투정을 받아내는 깜이의 속내도 좋았다. 전문 투계꾼인 챙모자의 비열함과 돈을 위해서 닭의 목숨 따윈 상관없는 투계꾼들의 거침없는 낫칼사용은 섬뜩했다. 편안함을 버리고 야생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사는 늙은 수탉은 숨어있는 무림의 고수를 연상시켰다. 절로 미소짓게 하는 털보의 따뜻함은 잔인한 투계 세계에서 위로를 준다. 털보가 부르는 달구와 챙모자가 부르는 달구 새끼의 다른 어감은 생명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의 문제는 당연히 치리를 따라 깜이도 농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멋지게 반전시켰다. 치리를 대신해 투계 세계로 들어가고, 상대 선수를 죽이지 않으려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깜이다운 선택이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중계하듯 생생한 투계 현장은 동물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공존하는 동식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결국 인간 삶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인간 생명만이 존엄하고 중요하지는 않다.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 될 것이며 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걸음이 될 것이다.

작품에 덧붙인 수묵화는 편안하면서도 총천연색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단지, 투계 선수를 갈망하던 치리가 낫칼에 희생된 닭을 보고 탈출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이 갈등 없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살짝 아쉬웠다. 목숨이 달린 일에 망설일 필요야 없겠지만 좀 더 고민하는 모습이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늙은 수탉도 전반부에 언급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 수탉이 깜이의 아버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아버지를 알고 있거나, 친구이거나, 아버지를 죽게 한 장본인이었다면, 그래서 야생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든 동화든 문학작품에서 다루어지지 말아야 한다거나 적절치 않은 소재는 없다.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동화의 영역을 한 뼘 더 넓힌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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