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도깨비 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하여
주강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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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빙산의 일각에 발 딛고 섰다, 물속의 거대한 빙산 몸체를 휘젓고 나온 느낌이었다.

잠시 활동했던 풍물패의 경험으로 귀동냥으로나마 민중의 생활을 알고 있다는 허상을 완벽하게 깨뜨렸다.

책은 천지 창조에서부터 최초의 예술, 바위 그림을 지나, 민중의 의식주를 아우르며, 탯줄에서 상여까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한 생명 나무와, 장승, 솟대 등을 거쳐 남근여근 숭배와 쌍욕과 쑥떡에 이르기까지 질펀하게 한바탕 대동판을 펼쳐 놓는다.

흔히 알고 있던 전통이라는 거대한 생명수가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손바닥만 한 화분에 들어찬 분재처럼 뒤틀리고,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분노와 참담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질기고 건강한 생명력도 보인다.

 

연기가 나가는 굴뚝 하나에도 멋을 부릴 줄 알고, 일상을 뒤집어 경계와 성역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고의 전환, 사물과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내는 도깨비나 남근여근 신앙이 순수하다.

하찮은 똥마저 돼지의 먹이로 만들어 내는 지혜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짓밟히고, 억눌려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미륵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정직한 노동으로 일궈낸 밥 한 그릇의 귀중함을 알고, 그것을 나눌 줄 아는 공동체 의식이 소중하다.

미신으로 치부되었던 무당의 세계는 사실은 천지창조의 본풀이이며, 만물이 기를 가지고 조화를 이루는 세계에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한다.

일제 강점기 때까지, 다산한 여인이 가슴을 드러냈다는 사진은 놀라웠다.

 남성 중심의 온갖 제의에도 불구하고, 가뭄이나 전염병을 해결할 수 없었을 때,가부장 사회에 짓눌린 여성들이, 밤새워 피 묻은 서답을 휘두르고 난장을 벌이는 도깨비 굿은 통쾌했다.

아이들이 궁지에 몰릴 때 엄마 품을 찾는 것처럼, 온갖 방법으로 여성들을 핍박하던 남성중심사회가 생명의 위기에 몰리자 여성들 뒤로 숨는 비겁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여성들의 당당한 행진 속에서 태초에 모계중심사회를 떠올렸다.

근대와 현대라는 이름으로 죽음마저 우리 것을 놓아버린 우리의 빈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조건 우리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것도 지켜내지 못한 부끄러움이다. 그 모든 우리 것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움켜쥐어야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소중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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