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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Ⅲ-1
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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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샤워 언어영역- 2010
이만기 외 지음 / 두산동아(참고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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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 * 끝없는 도전과 용기- 반양장
잭 웰치 지음, 강석진 감수, 이동현 옮김 / 청림출판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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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 승자의 조건
잭 웰치 외 지음, 윤여필 옮김 / 청림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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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 위대한 승리- 반양장
잭 웰치.수지 웰치 지음, 김주현 옮김 / 청림출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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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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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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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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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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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용어 해설-관개체성

 

관개체성貫個體性transindividualité


2부 세 번째 논문 제목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해석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transindividualité”, 곧 관개체성 개념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질베르 시몽동Glibert Simondon(1924-1989)이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개념이다. 시몽동은 프랑스 바깥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철학자이지만, 구조주의 운동에 중요한 이론적 동력을 제공해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생전에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의 일부인 󰡔개체와 그 물리ㆍ생물학적 발생L'individu et sa genèse physico-biologique󰡕(PUF, 1965), 그리고 부논문인 󰡔기술대상들의 실존양식에 관하여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Aubier-Montaigne, 1969) 두 권만을 출간했고, 그의 사후에도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의 나머지 부분인 󰡔심리ㆍ집합적 개체화L'individuation psychique et collective󰡕(Aubier, 1989)만 출간되었을 정도로 과작寡作의 철학자이지만, 그가 사망한 이후 이 세 권의 저작은 프랑스 철학계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몽동 철학의 핵심 과제는 개체를 원초적인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그 발생 과정 속에서, 곧 개체화 과정 속에서 파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시몽동은 개체 및 개체화individuation를 사고하는 서양 철학의 두 전통, 곧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는 질료형상론과 원자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전통은 이미 형성된, 또는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원초적인 단위로서 개체에서 출발하여 한 개체가 시공간 상에서 변화를 겪는 양상들이나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개체화다)를 사고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철학 전통에 맞서 그는 개체는 원초적 실체, 기원이 아니라 개체에 구조적으로 앞서 개체를 생산하는 과정, 곧 개체화 과정에 의해 생산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개체화 과정에 의해 개체들로 산출되는 , 그것은 무엇인가, 곧 개체화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된다. 시몽동은 이처럼 개체에 앞서는 이것을 “선先개체적 존재être préindividuel”라고 부른다. 시몽동에 따르면 이러한 선개체적 존재는 “하나 이상”, 곧 “통일성/단위 이상이자 동일성 이상”(Simondon, 1989a, p. 30)인 것이다. 왜냐하면 개체들에 대해서만 하나나 통일성 또는 정체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므로, 개체화 이전에 존재하는 이 선개체적 존재는 정의상 하나, 통일성, 정체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개체적 존재는 이처럼 부정적으로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개체적 존재를 단순히 “하나 아님non-un”이 아니라 “하나 이상” 또는 “통일성/단위 이상이자 동일성 이상”으로 부를 수 있다면, 이는 선개체적 존재가 고정된 동일성을 갖는 개체들 이상의 어떤 것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곧 시몽동이 말하는 선개체적 존재는 이행/변화의 역량, 포텐셜 자체로서, 이는 개체화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개체화 과정을 통해 산출된 개체가 자기 차례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자신을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또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재생산하거나 일정한 임계점을 통과하면 스스로 변화되도록 하는 힘이다. (따라서 데리다 식으로 말한다면, 시몽동의 “하나 이상plus qu‘un”이라는 개념은 또한 동시에 “더 이상 하나 아님ne plus qu’un”이기도 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몽동은 열역학에서 빌려온 준안정성métastabilité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개체적 존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열역학 또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준안정적인 상태란 체계의 변수들 중 하나(가령 압력, 온도 따위)가 최소한으로 변동되기만 해도 평형 상태가 깨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쉬운 사례를 하나 든다면, 이른바 “과냉각액체supercooling liquid”로 남아 있는 물, 곧 0°C 이하에서도 얼지 않고 계속 액체 상태로 남아 있는 물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물은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바로 얼어버린다. 시몽동에 따르면 선개체적 존재는 바로 이처럼 준안정적인 상태에 있는 체계 일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선개체적 존재는 서로 긴장상태에 있는 이질적인 포텐셜들(예컨대 액체와 고체)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으며, 포텐셜들의 긴장이 해소되는 것, 곧 “위상변화déphasage”를 통해 포텐셜들이 서로 다른 수준, 서로 다른 위상의 체계로 해소되는 것이 바로 개체들의 생성이다.  

  따라서 선개체적 존재는 단순히 개체에 시간적으로 앞서는 상태가 아니라, 개체 안에서 개체의 존속 및 변화를 이끌어가는 포텐셜 또는 역량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그리고 이 때문에 “préindividuel”은 前개체적이라고 해서는 안되며, 구조적으로 우선한다는 의미에서 先개체적이라고 번역하는 게 적합하다).   

  관개체성 개념은 󰡔심리ㆍ집합적 개체화󰡕에 등장하는 개념으로서, 원래는 심리적 개체화와 집합적 개체화라는 두 가지 개체화 사이의 관계, 또는 오히려 인간의 개체화의 두 측면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곧 이 개념은 정신 또는 심리활동은 인간의 내면을 이루고(심리주의), 사회 또는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는 인간의 외면을 이룬다고 보는(사회학주의) 대개의 이원론적 관점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2부 두 번째 논문인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에서 시몽동의 이 개념을 빌려와서 스피노자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이 개념을 시몽동이 원래 사용하던 맥락보다 좀 더 넓은 ‘존재론’ 일반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관개체성 개념은 시몽동이 말하는 일차적 개체화/이차적 개체화(또는 발리바르의 용어법대로 하면 개체화/개성화)를 포괄하는 개체화 과정 전체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관개체성”의 원어는 “transindividualité”인데,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윤소영 교수는 이 개념을 “초개인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에서 부적합하다. 첫째, “individualité”는 “인간 개인”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일반적인 ‘존재론적’(또는 발리바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비非존재론적mé-ontologique”) 함축을 지닌 개념이기 때문에, “개인성”보다는 “개체성”으로 번역하는 게 옳을 것이다. 둘째, 이 개념의 접두어인 “trans-”는 “초월”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오히려 “traverser”라는 단어처럼 “가로지다”, “관통하다”는 의미, 또는 “transformer”라는 단어처럼 “전환하다”, “형태가 변화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trans-”는 선개체적인 준안정상태의 퍼텐셜이 나중에 성립된 개체들을 관통하여 존립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이 퍼텐셜이 개체의 형태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더 나아가 이 접두어는 부분과 전체, 개체와 우주, 개인과 국가/사회 등과 같이 미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적 항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추상적 관계 개념을 해체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trans~”의 집합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초-”라는 번역은 다소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trans-”라는 접두어가 지닌 다의적 의미를 살리고, 무엇보다도 이 개념이 기계론 및 유기체론(또는 사회학주의와 심리학주의)에 맞서 관계의 우월성 내지는 원초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이를 “관貫”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trans-”가 갖고 있는 복합적 의미를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개체를 관통하는 퍼텐셜 또는 역량의 흐름을 표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초”나 “횡단” 등보다는 좀 더 적절한 역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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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용어 해설-대중들

 

대중들multitudo


“multitudo”는 지난 1980년대 이후 스피노자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많은”, “다수의” 또는 “큰”이라는 뜻을 지닌 “multus”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17세기 정치철학자들, 특히 홉스와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홉스의 경우 물티투도는 법제도의 틀 안에서 구성된 인민people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고유한 정치적 실재성을 지니지 못한 “군중” 내지는 “무리”(󰡔시민론De Cive󰡕 영역본에서는 이를 “crowd”로 번역하고 있다. Hobbes 1998 참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홉스 정치학의 원칙에 따를 경우 물티투도는 적법한 정치적 지위를 갖지 못하고 심지어 전혀 정치적 행위를 수행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물티투도는 정치학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불법적인 소요와 폭력으로 정치적 질서를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홉스 정치학이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홉스는 물티투도를 서로 독립해 있는 “다수의 개인들” 또는 “다수의 의인(疑人)들persons”로 해체함으로써 이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다(이 문제에 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2004 참조). 

  반면 스피노자는 물티투도에 대해 좀더 미묘한 태도를 보여준다. 정치학에 관한 스피노자의 첫 번째 주저인 󰡔신학정치론󰡕에서 이 개념은 단 세 차례만 사용되고 있으며, 거의 이론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6년 뒤에 씌어진 󰡔정치론󰡕에서는 사용 빈도도 늘어날뿐더러, 스피노자의 논의의 핵심 대상으로 등장한다. 󰡔정치론󰡕에서 이 개념은 한편으로 주권 또는 통치권을 규정하는 위치에 놓인다. “대중들의 역량에 의해 정의되는 법/권리를 보통 통치권imperium이라 부른다. 공동의 동의에 따라 국정의 책임을 맡은 이가 이 통치권을 절대적으로 보유한다.”(󰡔정치론󰡕 2장 17절(강조는 인용자). 또한 3장 2절, 7절, 9절도 참조)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피노자는 물티투도를 결코 자기통치적인 주체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는 물티투도의 삶을 지배하는 정념적인 동요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었고, 이를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인 매개를 추구했다. 따라서 󰡔정치론󰡕에서 물티투도는 기본적으로 양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물티투도 개념이 스피노자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의 󰡔야생의 별종󰡕(1981)이라는 저서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반오웰」(1982)이라는 논문 덕분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물티투도 개념이 단지 스피노자 정치학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철학 전체에 대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어떤 점에서 이 개념이 중요한가에 관해서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이 책 2부에 수록된 「스피노자, 반오웰」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몇 가지 점만 지적하겠다.

  첫째, 두 사람은 물티투도 개념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 전체를 새롭게 고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네그리는 물티투도 개념이 실체, 속성 같은 초월적인 형이상학의 범주들 없이 유한양태들의 차원에서 완전한 구성의 존재론을 전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중시하며, 이 때문에 이 개념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를 “재정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본다. 반면 발리바르에게 대중들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은 이 개념이 󰡔윤리학󰡕 1부와 2부에서 전개된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대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지 않고, 오히려 ‘존재론’에서 자연학, 그리고 인간학에서 정치학에 이르는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를 관개체성의 관점에서 재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둘째, 네그리는 물티투도를 일종의 정치적 주체, 더 나아가 해방 운동의 주체로 간주하는 데 비해, 발리바르는 물티투도가 근본적으로 양가적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인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물티투도가 현대 사회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대중masse”이나 “군중crowd”와 구분되는 존재론적 위상을 지닌다고 본다. 곧 대중이나 군중은 자신의 독특성을 상실한 익명적인 개인들의 집합, 따라서 지배장치에 포섭되어 있는 수동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데 반해, 스피노자의 물티투도는 능동적인 역량과 독특성을 지닌 개인들의 결합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네그리는 물티투도는 초월적인 통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율성을 지닌 다수의 독특한 개인들의 결합체라는 점에서 해방 운동의 정치적 주체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물티투도는 ‘존재론적’으로 토대의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수동적인 집단으로서 “대중”이나 “군중”이라는 차원도 포함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발리바르에 따르면 물티투도에 고유한 이러한 양가성, 이중성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스피노자의 역량의 존재론이 관계론적 존재론이라는 것, 곧 능동과 수동의 끊임없는 변이과정이라는 것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적대와 갈등을 환원 불가능한 정치의 요소로서 사고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리바르에게 물티투도의 양가성이라는 관점의 중요성은 정치를 막연한 유토피아적(또는 목적론적) 이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조와 변혁 운동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 있다.    

  셋째, 이러한 차이점은 두 사람이 선호하는 용어법의 차이로 이어진다. 네그리는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라틴어 multituo를 줄곧 “multitude”라고 번역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국내의 네그리 연구자들은 다시 이를 “다중多衆”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물티투도가 지닌 “다수, 여럿”의 의미(곧 주권의 초월적 “하나”에 대립하는)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네그리의 주장과 일치하게 물티투도를 정치적 주체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번역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발리바르는 이 책 2부에 수록된 세 번째 논문의 한 각주에서 물티투도에 대한 가장 좋은 번역어는 “masses”, 곧 “대중들”이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으며, 스피노자의 물티투도 개념을 (단수로 쓰인) “multitude”, 곧 “다중”으로 번역하는 데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물티투도 개념이 지닌 이중성 내지는 양가성을 보존하기 위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틴어 원어는 하나인 데 반해, 이 용어에 대한 적어도 두 가지 상이한 현대적 번역과 용법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에는 또 다른 번역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발리바르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에서 물티투도를 몇 가지 상이한 불어 단어(“masse”와 “masses”, 그리고 “multitude”)로 번역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발리바르가 “masses”, 곧 “대중들”이라는 번역을 물티투도에 대한 최상의 번역어로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번역어들이 혼재되어 있는 점을 감안해서 발리바르가 “masse”라고 번역할 때는 “대중”으로, “masses”로 번역할 때는 “대중들”로, 그리고 “multitude”로 번역할 때는 “다중”으로 각각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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