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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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들 위주로 돌아가고, 꿈을 위해 이 악물고 힘들게 번 돈은 모두 아들인 남동생의 결혼자금으로 들어간지 이미 오래다. 꿈을 위한 자금확보 차원에서 교수님 소개로 들어간 학교선배의 게임회사는 노골적인 성희롱이 만연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연을 끊었지만, 꿈을 향해 나가기엔 자신이 없다. 당장 먹고 살 궁리라는 미명하에 녹즙 배달원이 됐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비정규직 미혼 여성은 여전히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있음을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술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손이 귀한집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오빠에 이어 '아들 하나 더'를 욕심낸 아빠덕분에 세상에 나왔다. 뱃속에 있을때는 분명 아들이었는데 낳고보니 딸이었다는 이야기를 무슨 전설마냥 온 친척들의 입을 통해 들으며 성장했다. 여중, 여고를 다니며 다분히 변태같은 뽀글이 음악선생, 윤리선생도 만났다. 대학에 가니 멀쩡하게 생긴 남자동기들도 주말이면 퀘퀘한 자취방에 떼거지로 모여앉아 말 타는 부인들 비디오나 야동을 돌려보는걸 알게 됐다. 사회에 나오니 직책에 상관없이 남자상사들은 공공연히 여직원들 들으란듯이 음담패설을 해대고, 선배란 인간들은 술자리든 노래방이든 내 허벅지가 쇼파팔걸이 마냥 지들 손을 얹었다.

그 지난한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몰라도 아는 척, 아닌 척하며 찍소리 한번 제대로 못했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서는 남자의 많은 것을 이해해 주는 쿨한 여자가 됐다.

아, 됐고. 나 사실 진짜 싫거든. 쥐뿔도 능력 없으면서 성질까지 사나운 그 유전자 정말 진절머리 나거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날 좋은 주말 대낮에 그러고 있는 거 토 나와. 선배라는 인간들이 후배들을 노래방 도우미 취급하면서 누구는 싹수가 보이네 누구는 잘 키워봐야겠네 평가하는거 너무 웃기거든. 선배 니들도 집에 다 딸 있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 그저그런 여자 취급 받을까봐 무서워 세상 쿨한 척 살았다.

덕분에 이 책을 읽다가 혼자 감정이입 돼서 얼굴이 울그락붉그락 되기도 하고, 때론 심장이 쿵 내려앉기도, 속이 뻥 뚫린 것 같기도 하며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꼈다. 그 와중에 부끄럽지만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나보다 더 한 삶도 있구나 안도하면서 못된 마음의 위로까지 받았다.

대신 앞으로 계속 생각할 것을 약속한다. 창희쌤의 말처럼 생각하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야 한다. 나와 내 두 딸과 그리고 또 그 아이들의 딸들을 위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함을, 잊지 말아야 함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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