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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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밀레니엄 졸업세대다.
지금도 가끔 졸업 전 직업 설문조사에서 우리 과 대다수 학생들이 첫 희망 연봉으로 4천만원을 써냈던 기억이 종종 떠오른다. 아마도 희망에 비해 대부분이 그저 그런 직장이나 백수생활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더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IMF를 직격탄으로 맞았으며, 밀레니엄 사회의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각자 살 길을 찾아 4년동안 비싼 등록금을 내며 수업을 받았던 '과'하고는 전혀 상관 없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직업군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 중 대학원에 진학한 절친이 발빠르게 선택한 직업이 바로 '코리안 티처'였다.
'외국인을 위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 너무 길어서 한번에 알아듣지도 못했던 수업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꽤 유망한 직종이었다.
서울의 유명한 대학 두 세군데 정도에서 어학당을 운영했고, 아직은 초기단계라 제대로 된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데다가 당연히 교사 인원도 부족했다.
그 친구는 대학원에서부터 정식 코스를 밟아 몇년 뒤 신생에 가까운 또다른 대학의 어학당에서 외국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직업군도 다양했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유도 각기 달랐다. 그때도 국내체류를 목적으로 어학당에 등록을 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목적을 가진 이들을 가르치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천직처럼 보였다. 자발적으로 제자들과 어울렸으며, 시간외 만남도 기꺼워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제자들의 초청으로 해당 나라에 여행도 다니고 오래토록 몇몇 제자들과는 끈끈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업무적으로는?? 매일 수업준비를 하느라 잠이 부족했으며, 늘 교재를 만들고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했던 것 같다. 몇 년 뒤에는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정식으로 관련 교재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보람이 있었다.

초창기였고, 그랬기에 열약한 사정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몇 년 뒤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자격증을 딸 수 있다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망직종으로 한국인 강사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한류열풍으로 급증하는 외국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기본적인 교육만 이수하면 강사로 받아주기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딸 수 있다는 '자격증'에 잠시잠깐 솔깃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그 이면에는 저출산으로 입학할 학생수는 줄고 대학은 넘쳐나니 이를 외국인 학생수로 메워보려는 대학들의 꼼수가 있었던 것 같다. 돈이 부족해 외국인을 유치해 그 돈을 메우고자 했던 대학들이 그들을 위한 컨텐츠 개발을 할리 만무하다. 정식 교수들도 넘쳐나서 난감한 판에 어학당 강사들을 위한 처우를 생각해 줄 수 있을까. 심지어 한류는 말 그대로 순간 치고 빠지는 물거품이다. 잠깐 수요가 급증했다고 해서 지속되기 어렵다. 진짜 필요에 의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이 책 '코리안 티처'에 등장하는 선이, 미주, 가은, 한희는 서로 조금씩 다른 상황에 처해있지만 결국 직업 생존권 앞에서는 다같은 입장이다. 그들이 싸워야 할 존재는 서로가 아니다. 젊음을 저당잡힌 채 죽도록 공부하고 고학력자로 세상에 나와도 그들을 제대로 보호해 줄 권리 하나 없는 '제도'의 문제다.

책을 읽는내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그들의 삶이, 비정규직 고학력 여성들의 인생이 아프고 속상했다. 남의 잘못도 내 잘못이 되고, 단 한 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며, 아무 잘못 없이도 잘못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이십여 년 간의 공부가, 그 삶이 모두 부인되고 이후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저당 잡히는 그들의 이야기에 숨이 막혔다.

그저 한 편의 잘 짜여진 소설로 읽고 내려놓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그래서 더욱 아프고 마음이 가는 책이다. 높은 곳에 계시는 교육 당국자들, 정부 관계자들에게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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