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 호모 -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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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호모 #혼불문학상 #다산책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케 호모'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다.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예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무리 앞에서 그를 가리키며 외친 말이라고 하며, '이 사람을 보라', '자, 이 사람이다'라는 의미다. 오수완 작가의 『에케 호모』는 프라임이라는 신적 존재의 출현으로 인류의 99%가 사라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그 말을 끌고 온 것 같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인간이 중심을 이룬다. 아포칼립스물을 볼 때 그 환경 자체가 특성으로 다가오곤 하는데, 에케 호모는 환경보다는 인물들이 더 강조된 느낌이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몇 년도인지, 한국인지 외국인지 등 SF를 쓸 때 필연적으로 작가가 설정하고 설명해주어야 하는 부분들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먼과 서브, 다른 인물들이 나누는 말과 생각이 더 궁금했다. 마치 판화처럼 인물들만 튀어나와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구에 비해 너무 커진 인간'이라는 시선이 그래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작가는 프라임이라는 존재를 내세워 리셋에 가까운 처방을 내린다. 그리고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도록 지켜보는 것까지가 작가의 시선이다. 리셋한 세계를 본인이 직접 가꾼 게 아니라는 것도, 새로운 걸 만들기보단 고치는 과정을 관찰한다는 게 프라임이 일반적인 신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서브를 위해 인류의 대부분을 죽인 프라임이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인류들이 결국 서브에게 위협이 되는 사회로 발전하다니 참 역설이지 않나. 하지만 프라임이라는 초인의 사고로는 그런 게 상관할 바가 아니었겠지 싶다.


50대 남자 노먼과 작은 소녀 서브의 가족도 우정도 아닌, 어쩌면 관계의 정의를 초월한 연대가 아름다웠다. 초반에는 유사가족을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개념인 듯하다. 노먼의 애정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맹목적일까 생각했는데 완독하고 나니 이해가 된다.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우려면 필연적으로 이별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감동은 잘 알고 있지만 현대의 독자에게 닿는 과정에서 한계가 있다. 우리는 모든 것과 결국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밥, 혼영 등 혼자 노는(누군가에겐 '해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으로서 받아들여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곁에 있어야 완벽했던 시절을 지나 독립적인 개체로 서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 모든 순간의 반짝임을 뒤로 하고 혼자 나아갈 용기. 결말은 마침내 노먼과 서브의 이별로, 서브의 홀로서기로 맺어진다. 미성년자 여성의 독립이 안전하길 바라며 노먼은 모든 걸 없애버리지만, 독립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브의 성장이 아닌가. 둘은 이별이라는 목적지까지 달리고 있고 그 과정에서 서브는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한다. '내가 점점 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대목에서 둘의 이별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작중 성폭행 장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심사위원 평에도 언급된 부분이다). 사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어린 소녀는 가장 취약해질 게 분명하지만 여성 독자로서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가해자인 사냥꾼은 서브를 보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가 떠오르기도 했다. 역시 성폭행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어린 소녀와 성인 남성이 등장하는 소설로, 남성은 소녀를 보며 공포를 느낀다. 약자가 강자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면서 강압감에서의 공수교대가 일어난다. 그런 부분에서 유사함을 느낀 것 같다. 그 자식을 노먼이 갈기갈기 찢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노먼은 애초에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인간의 죄를 판단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존재가 주인공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질주하는 로드스토리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의 매력이 살아나는 게 아닐까. 사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경우엔 독자도 작가도 인물들도 괜히 고양되곤 하지 않나. 『에케 호모』는 그와 달리 정말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이라 신선했다. 작가 특유의 문체인 것 같다.


만약 사랑을 이야기하는 다른 작품에서 쓰였다면 읽으며 굉장히 벅차올랐을 것 같은 문장들도 여기서는 담담하게, 그냥 그 말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노먼의 사랑이 결말을 다 읽고 나서야 밀물처럼 확 전해졌는데, 담담하다 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랑이 작다는 의미는 아니다. 초인의 사랑이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랄텐데 그걸 굉장히 압축해서 부처의 사리처럼 만들어 독자에게 건네주는 느낌이었다. 다시 곱씹어 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내 안에서 불어나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계속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노먼의 입으로도, 서브의 입으로도 등장시키고 있다. 그만큼 『에케 호모』의 인물들은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인물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그 '변화없음'의 상태가 이상하거나 평면적이지 않은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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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아니었으나 후폭풍이 엄청 강한 책이었다. 파면 팔수록 재미있고 곱씹을수록 신기하게 단물이 나오는 이야기. 그래서 작가들의 평에서 다시 읽어보라는 말이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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