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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따위 멸망해도 ㅣ 사계절 1318 문고 155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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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 작가의 소설집 <세상 따위 멸망해도>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키워드였다. 서평을 신청하기 직전에 LOVE에서 DEATH로 바꿨는데, 죽음이라는 키워드 안에 사랑 또한 질척하게 얽혀있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LOVE와 DEATH라는 두 키워드는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죽음이 있다면 삶도 있고, 삶이 있다면 사랑도 있으니까. 그래서 계속 '죽음이라는 키워드 안에 사랑은 얼마나, 어떻게 섞여 있을까?'라는 질문을 상기하며 읽게 되었다. LOVE를 골랐다면 그 반대를 생각했을 것 같다.
「세상 따위 멸망해도」
전남친과 함께 둘만 남은 세계, 원숭이 손이 이뤄 준 재회와 다시 돌아가기 위한 의논이 펼쳐진다. 판타지 같은 배경의 비현실적인 광경을 빌려, 주인공이 견뎌야 했던 나날들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그려지고 있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원숭이 손이라는 유명한 괴담의 소재, 세상에 둘 뿐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같은 배경, 중3 커플(이었던 친구들)의 풋풋한 로맨스까지 특색이 강한 소재들이 각자의 매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어우러진 매력적인 이야기다. 다만 재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은 아쉽기도 했다. 주인공이 언니의 얼굴들을 마주할 때 재이가 치른 전쟁은 어떤 광경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숨은 머리 찾기」
어떤 우정은 너무 진해서 사랑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번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서로를 생각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다. 둘의 관계성, 특히 주인공이 바이올렛에게 가지는 감정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상대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이길 바라는 마음은 소중한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감정인 것 같다. 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성장도 좋았다. 주인공의 부모님도 머리가 없는 채로 찾아왔었지만, 엄마의 머리는 제자리를 찾고 빛의 세계로 가고, 아빠의 머리는 찾지 못했다. 그 진상이 주인공의 마음과 이야기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비 오는 날」
세 단편 중 가장 DEATH라는 키워드에 근접한 단편인 것 같다. 이상행동을 하는 엄마에 의문을 가지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가정환경과 그럼에도 주인공을 위하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엄마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되었지만, 다시 내용을 돌아보니 주인공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를 관찰하는 주인공의 시선에는 연민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다.「세상 따위 멸망해도」에 이어 가정폭력이 드러난 이야기다. 예민한 문제이지만 섬세하게 잘 포착되어 있다. 모두가 사라진 세계와 이상행동을 하는 엄마 모두 오싹한 괴담의 요소인데, 주인공들에게는 그것보다 집 안의 상황이 더 무섭고 두려울 것이다. 성인 독자라면 폭력이 도사리는 가정의 자녀가 어떻게 붕괴되는지도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일 것이다.
세 작품 모두 청소년 독자들의 흥미를 끌 것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둘만 남은 세상이라는 매력적인 배경, 친구에게 느끼는 소유욕과 진한 우정, 자신 때문에 변한 엄마를 바라보는 자녀의 마음까지. 모두 청소년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고, 나 또한 그런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교환 독서 하기에도 좋은 책인 것 같고, 성인 독자는 자신이 지나온 그 감정들을 복기하며 새로운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