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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핑홀 ㅣ 걷는사람 소설집 8
안지숙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2월
평점 :
작가의 말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그런가. 이 소설을 쓴 작가의 말이 가슴에 콕콕 박히듯 들어왔다.
“축제는 끝났다. 국가는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책임을 묻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두 슬픔에 잠긴 채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 잘못도 책임도 없는 국가를 향해 작은 돌멩이조차 던지지 말라고, 근조 없는 검은 눈을 부라린다. 그리하여 축제는 끝났다. 방향을 찾지 못한 분노와 깊은 슬픔, 트라우마가 된 기억이 용암처럼 끓고 있다. 경악과 고통이 시그니처가 된 날,”
이 부분을 읽는데 10월29일 밤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나는 차마 한탄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다. 이 소설을 쓴 작가도 같은 심정을 밝혀놓고 있다.
“작가의 말을 쓰기 위해 앉은 나는 작가의 말을 포기한다. 나는 애도한다. ‘지금은 애도(만)을 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공포에 따른 애도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 대한 애도이며, 그들 앞에 별처럼 펼쳐졌던 날들에 대한 애도이다. 애도는 죽은 자에게 보내는 산 자의 배웅의 의례이며 그들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이다. 이 참사가 일어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의 간절한 기도다.”
작가 안지숙은『스위핑홀』의 부제가 ‘더 나은 세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정, 평등, 정의를 외치는 우렁찬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서 교묘하게 뻔뻔하게 행해지는 온당치 못한 행위를 까발리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온당치 못한 행위를 하는 약탈족을 제거한다. 순식간에 삭제해서 스위핑홀을 통해 다른 세계로 보낸다. 그 세계는 정확히 어떤 곳인지 묘사되지 않는다. 유진이 갔다온 세계는 유진의 다른 세계이고, 다른 약탈족이 삭제되면서 간 세계는 알 수 없다. 다만 제 욕망이 흘러가는 길이 하나의 궤도가 되어 생성되는 가상세계 같은 게 아닐까 짐작된다.
적어도 이보다는 나은 세상을 바란다는 작가처럼, 나 또한 더 이상 어이없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 악행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