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는 상실에 대하여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바깥은 여름 / 김애란

한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것은 흔적을 남깁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종류에 상관없이.

여기 오래된 관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개를, 연인을, 언어를, 스스로를, 부모를,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책은 다양한 아픔들을 이야기합니다.
위로를 가장한 타인의 국화꽃으로 두드려맞는 기분이 드는 어떤 슬픔과,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그 대상을 비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두려움과,
오래 쓰거나 만나 낡은 것들에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부정하는 아픔과,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한없이 외로워지는 침묵과,
누군가를 위한 풍경에 불과한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평생을 함께 하더라도 결코 알 수 없는 타인의 진짜 표정과,
부스럼처럼 성가시고 집요하게 흔적이 남아 결국 끌어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상실의 존재감을요.

넘치는 단어들에 문장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잦지만,
어쩌면 작가는 상실로 넘치는 마음을 표현하느라 그것들이 무겁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주변을 살피는 듯 보이는 글들은 결국 독자를 하나의 선명한 장면 앞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이 소설집을 다 읽고 나면, 내가 잃었던 것들이 떠올라 책의 감상 같은 건 한동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고 맙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 소설집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읽힙니다.
도시 어느 구석에서 이런 일들을 겪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스쳐 지나가고 서로의 소문을 듣기도 하며 각자의 인생을 견디고 있겠지요.

어쩌면 우리도 일상 속에서 이런 상실들을 겪으며 조금씩 바깥 풍경에 무뎌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은 햇빛이 따가운 여름인데, 여전히 겨울 속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