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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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겠습니까?

-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5월은 많은 것들이 가족을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우선 눈에 띄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또 가정의 달이라는 명목 하에 여기저기서 아이와 어른들을 위한 물품들을 소개하고, 길거리엔 카네이션이 우후죽순으로 널려 피어났다 사라지곤 합니다.

 이런 계절에, 어린 시절에 머무른 자식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습니다. 한 집 넘어 한 집 꼴로 제사음식 냄새가 퍼지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는 가버린 이에 대한 이야기 만큼이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 여기는 전라남도 광주입니다.

 

 

 저는 87년에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18은 교과서에서 시험에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어를 맞추기 위해 다루고 넘어가는 정도의 근현대사였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대통령 선거를 하던 해에 정권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여/야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미 성인이었습니다. 정치란 기업과 지역 기득권들만의 일인 줄 알았던, 무지했던 청춘이었습니다. 선거기간동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입에서, 매일같이 인쇄되는 신문에서, TV 속 뉴스에서 지역감정을 편견으로 못박는 말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전라도 출신 친구를 사귀고 있던 저에게는 의뭉스러운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의 시작이 대부분 1980년 5월, 광주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대학교 선배들 입에서 오르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서 나온 영화 '화려한 휴가'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화면 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저것이 현실보다 나은 화면이라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것이 무지했던 저에게 다가온 첫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습니다. 과제와 시험, 취업에 쫓겨 그 날의 충격은 오래지 않아 증발해 버렸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니고, 다시 퇴사를 하는 사이 저는 20대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제가 전공과 무관하게 책읽기를 좋아하여 꾸준히 했다는 것입니다. 몇 년이 흘러 신간 도서 중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습니다.

 이 책으로 몇 년 만에 저는 광주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영상으로 보던 지옥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던 과거에, 제가 포기한 것은 '진실'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글 속에는 그 날 광주의 무수한 사람들이 말 못하는 가슴만 내리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날의 기억을 끊임없이 복기하고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 이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인간 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저 그 때 광주가 아닌 부산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이 더 늦게 해산했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항의했더라면, 그 날의 고통과 참상은 내 부모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역사는 반복의 역사입니다. 이유도 모른 채 나의, 너의, 우리의 가족이 무참하게 죽어가는 일은 여전히 벌어집니다. 광주가 그러했고 세월호가 그러했듯이 남겨진 사람들은 그 시간 속에 갇힌 채 살아갑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을 바라는 것은 과한 요구일까요? 우리의 가족이 아니니 희생당한 사람을 그저 안타까워하며 살면 되는걸까요? 살아남은 우리는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일 뿐일까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으면서 느낀 의문은 같습니다. 그 와중에 이 일을 주도했던 사람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기나긴 변명을 하고, 일부 매체와 지면에서는 그 일에 대해 미화하거나 죄를 덜어내려 애씁니다. 그 날, 광주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일을 인간이 잊는다는 것은, 그 일을 벌인 사람의 책임을 나눠 지고 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책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하루동안 일어난 일들을 시간대별로 상세히 정리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괴로운 글이지만,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나면 한가지가 남습니다. 그 동안 접했던 많은 뉴스와 지면과 이야기들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판단기준. 이것이 우리가 이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건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사회가 개인을 필요에 의해 책임지지 않고, 공격하는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당신은 기억하는 것이 지겨운가요? 잘못된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일은 과연 그 날의 정부만의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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