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박민규다.


문학이 수단이 되던 시기를 지나왔고, 그런 문학을 읽으면 자란 세대들이 작가가 되었다.

한국사에서 마지막 대모 시대를 거쳤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작가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민규 김연수 같은 작가들이 아닐까.

섣부른 합리화 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소설에서는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없다. 인물이 아닌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환경과 사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금 시국이 이러이러 하니까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해!’ 라며 툭하면 공중파를 장악하고 얼굴 들이미는 각하의 백 마디 말보다 우회적이지만 효과적인 방식이 아닐까.

이런 이유로 스마트하고 디지털한 게 각광 받는 시대에 지극히 아날로그 적인 문학이 건재하고 있지 않을까.


대다수의 독자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개인적인 가족사니, 애정사니 하면서 누구나 다 겪는 이야기를 마치 작가 자신만 혹은 화자 혼자만의 문제인 것처럼 구질구질하게 넋두리 하는 소설을 싫어한다. (독자가 울기 전에 작가가 먼저 목 놓아 울어 버리는 종류의 소설)


이번 단편집은 사실 그 동안 계간지에 발표한 작품, 문학상 받았던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새로운 단편들이 훨씬 많다. 소재도 다양하고 화법도 다양하다.

새로운 단편에서도 박민규 하면 떠오르는 리얼리티는 건재하고 우화적인 재미도 여전하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종말을 앞둔 먼 미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여과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분명히 리얼리티가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때론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이것은 소설이 리얼리티를 반영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판촉 도우미 하는 여자 친구와 동거 하며 (지극히 상식적인)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인물한테 애드벌룬 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쫒는 임무를 준다.

(굿바이, 제플린)

중매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죽어라 일한 60대 노인한테는 아내를 빼앗아 간다. 다수의 비극이 그렇듯이 진부하고 뻔한 현실을 부여한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죽음을 목전에 놓고 있는 노인들이 모여 있는 노인요양 병원으로 인물을 내쫓고, 독자가 현실을 인식할 때 쯤. 그들의 과거를 불러들이고 봄이 찾아오도록 한다. 치매에 걸려 서로를 못 알아보는 기막힌 절망 속에서 새로운 판타지를 선사한다. (낮잠)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의 셀러리 맨. 이제 좀 주변을 둘러 볼 여력이 생기자 암이라고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간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인물들이 그렇듯 과거를 정리하고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년 시절 추억을 되새긴다. 라는 것이 현실이라는 소설에서는 타임캡슐이라는 비현실적인 장치를 사용해서 인물한테 새로운 형태의 삶을 부여한다. 현실이라면 그는 약에 의존하다가 죽어가겠지만 소설 속 인물은 그 타임캡슐을 찾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근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렇다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 뻔하고 그냥 이 소설을 권하고 싶어서 이쯤에서 책 이야기는 그만 두려한다.


2000년대 대입시험 컨닝으로 대학교에 들어갔다고 당당하게 밝히던 물색 없어 보이던, 문제아 박민규가 돌아왔다. 여전히 파리 같은 안경을 쓰고 긴머리를 치렁치렁 휘날리며, 휠체어에 앉아서 쓴 글을 모아 독자한테 내밀었다.



대성한 자식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아버지를 기린의 모습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고시원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한테, 표류하는 낭만을 불어 넣어 주었던 그가 이번 소설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절망적이지 않은!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상상력과 박민규적 세계관이 가득한 책이다.

내가 이런 구질구질하게 칭찬하는 포스팅을 하지 않아도 더블은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며,

박민규 작가는 글 써서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작가임을 다시 확인 할 것이며

그게 배아파서 나는 욕 하면서 더블을 읽을 것이고, 또 지인한테 권할 것이다.


나는 외판원도 아니고, 창비와 관련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저 대산대학 문학상에 소설 한번 내고 창비 구독권 1년 받아먹은 게 전부인 많고 많은 독자 중에 하나일 뿐이다.

나는 박민규를 좋아하지 않는다. 때론 현실이 아닌 허공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조롱한다. 또한 우화적인 기법을 택하는 작가 때문에 독자들이 탐미주의적인 문학을 찾게 하는 것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억지를 부려 보기도 한다. 또한 이것들이 지속 된다면 후에 박민규 작가의 가장 큰 단점이 되지 않을까, 라는 건방도 떨어보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더블』책이 더블로 들어 있어서 책값도 더블이다. 25000원.

패밀리 레스토랑 가서 친구들과 밥 한 끼 먹으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순간을 꿈꾸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돈으로 리얼리티적인 환상을 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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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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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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