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책장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발견하였다. '이 책, 제목이 좋은데!' 라는 생각에 책을 꺼내어 첫장을 넘기자 면지에 편지가 쓰여 있다. '얇은 책이지만 큰 감동이 되기를 바래, 생일 축하해.'라고 쓰여있는 글의 끝에는 8년 전, 나의 생일 날짜가 적혀 있다. '아, 선물 받았던 책이구나! '라며 기억을 더듬자, '재미없어'라고 느꼈던 감정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향수'로 접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을 좋아했고, 책을 꽤나 읽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잘난척쟁이었다. 지금도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매한 독자에 불과한데 8년전이면 오죽했겠나 싶어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이라는 단편 세편과 '문학적 건망증'이라는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단편을 즐겨읽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왠지 짧은 글이라 부담없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깊이에의 강요'는 7page분량의 짧은 이야기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한 젊은 여류 화가를 소재로 하고 있다. 초대 전시회에서 화가는 악의없는 평론가에게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신문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은 그녀는 지독한 고뇌에 빠져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앞서 나왔던 평론가로부터 그녀의 그림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평론가 뭐야! 앞길 창창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놓고 이제와서 깊이가 있다니, 정말 이랬다저랬다 하는군.'이라는 분노가 치밀다가 여류 화가에 대한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것인지, 나에게는 일생을 걸만큼 절대적인 타인의 평가가 그에게는 별뜻없는 한 마디의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말고, 나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여류화가처럼 나 또한 '깊이'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기에 '깊이가 없다'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깊이,깊이... 깊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나는 책, 그림, 공예, 피아노, 바이올린 등 여러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깊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때로는 얕은 지식과 실력에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가 있는 척 떠들다가 밀리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발버둥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약간의 체념과 더불어 내가 내린 결론은 숙성된 된장이 깊은 맛을 내듯, 오랜 기간 쌓이고 다져져야 깊이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내가 '깊이'를 소유하고 싶다고 해서 단번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그 분야에 대한 지식과 생각이 쌓이면서 나의 마음이 깊어지고 실력이 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대신, 좋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계속적으로 쏟는다면 인생의 어느 순간 나에게 '깊이'가 생기지 않겠나라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깊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깊이 있다'라고 평가내린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한 대상이 지닌 '깊이'에 대해 모든 사람이 같은 평가를 내릴 것인가? 평가를 내린 사람은 과연 그만큼의 '깊이'를 가진 사람일까? '깊이있다'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깊이 있는 사람'으로 여길 것인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끝없는 물음이 터진다. 그리고 '타인의 깊이'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혹, 이야기에 나왔던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의견에 기대어 다른 사람의 '깊이'를 논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지니지 못한 '깊이'에 대해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그동안 나도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이 책을 읽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가깝게 느껴지니 말이다. '깊이에의 강요'외의 두 편도 예전과 다르게 친근하게 느껴졌고,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작가의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은 무척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잊어버린다면야 과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나의 고민과 유사한 생각을 그도 했다는 사실에 무척 재미있었다.

 

깊이에의 강요. 짧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오랜 시간동안 즐거웠다. 이렇게 뒤늦게 나에게 감동을 줄 줄이야. 그의 다른 유명한 책인 향수, 좀머씨 이야기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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