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신나치주의자인 소녀, 힐러리.

어느 날 힐러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하게 되고 3일간 뇌사상태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3일이란 시간동안  힐러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대인 소녀, 샤나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일까. 재밌을 거란 기대와 달리 첫 도입 부분부터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누

군가의 지겨운 하소연이 도통 이해되지 못했으며, 이 책을 읽는 동안 힘이 들었다. 

쫓기는 시간 속에서, 피곤에 절은 일상 속에서, 정해진 시간이란 제약 속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

은 내내 편치 못했다. 읽는 속도 또한 무척이나 더디기만 해서 생각 같아서는 그만 두고 싶었지만, 나

는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고 또 읽었다. 

 

한 할머니가 힐러리의 앞에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주변은 흐릿하기만 하고 오직 그 할머니만 선명

하게 보이는 이유는 과연 뭘까. 하지만 이런 의문을 채 풀리기도 전에 힐러리는 짜증이 났다. 난생 처

음보는 나이든 여자가 자신을 쳐다본다. 다정한 눈길로, 안쓰런 그 눈빛으로, 때로는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꿰뚫어보는 그 눈동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힐러리는 욕을 하고 소리치고 비난을

하며 맘껏 비웃어 줬다. 그러면 보기 싫은, 뒷통수가 심하게 뭉개져있는 보기 흉한 그 몰골이 치워지

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 지긋한 여자는 힐러리에게서 결코 눈길 거두는 법이 없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는 듯이, 힐러리를 바라본다.

힐러리는 빛이 있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과거였다. 히틀러가,  광기가 살아 꿈틀거리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이었다. 

대 혼란과 대 학살이 자행되는 끔찍한 그곳에서 힐러리는 유대인 소녀, 샤나가 되어 여러가지 것들

을 경험하게 된다. 독일 병사의 총에 의해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후 샤나 가족들은 나치에 의

해 게토로 강제 이주하게 된다. 좁은 방 한칸에 여섯 식구가 살아야 했고, 궁핍한 생활이 이어졌

다. 굶주림과 언제 죽을 지 모를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그들을 따라다녔으며 그런 지옥같은 생활에

서 샤나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얼마 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어머니와 동생을 팔아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그들을 덮쳤다. 강제퇴거 명령에 그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보

내지 않으면 남은 가족들의 생명마저 위태로우니까.  

어머니와 동생을 떠나보낸 후 그들이 보고 싶어 힘겨워던 샤나는 결국 탈출을 감행하기에 이르고,

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어느 날 밤에 샤나는 할머니와 단둘이 탈출을 감행하게 되고, 성공했다고 생

각한 순간 뜻하지 않게 기차 안에서 마릴라라는 옛날 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어 발각되고 만다.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어 버렸다. 히틀러가, 독일군이 세상을 점령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평화는 깨어졌고, 모든 것들은 예외랄 것도 없이 그들의 발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바이올린리스

트가 되어 관현악단에 들어가겠다는 샤나의 꿈은 핫낱 허울 좋은 망상에 불과했으며, 현실은 참혹하

기 이를 때 없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샤나와 할머니는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샤나

는 신이 과연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신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 이런 현실에 우리

를 내버려뒀을리가 있느냐며, 단호한 어조로 신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방황한다. 주인공 샤나처럼 삶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당혹스러움은 혼란

으로 바뀌고, 그것은 곧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흔들어 놓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인생의

등불을 잃듯이, 길을 잃는다.

샤나의 물음처럼 신은 어디에 있을까.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샤나는 또 이렇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대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 거냐, 의도하는 게 뭐냐, 왜 이런 삶을 살게 하는 거냐며 따지듯 묻고 싶

지 않았을까. 피할 수 있다면,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좋을 현실이 하루에도 수천번씩 저주하며 차라리

꿈이기를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때 뷔브 할머니는 말했다.

"고난과 고통 때문에 신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설사 이런 곳에 있다고 해도 이전과 다름없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신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거야. 잊지 말거라, 신은 이 땅 어디에나

존재하신다. 우리가 진심으로 청하면 신은 반드시......" - P 194

뷔브 할머니의 말처럼 신은 항상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마음

을 닫고 희망의 등불을 꺼트리는 순간, 신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넌 괜찮을 거야. 넌 네게 필요한 걸 다 갖고 있어. 그리고 샤나, 기억해라. 이 모든 것들을 잊지 말고

다 기억하도록 해."      - P 272

힐러리의 앞에 있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는 바로, 샤나였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전쟁에서 살아 남은

그녀는 몇 십 년 뒤에 태어날 힐러리에게 자신의 과거를 전하기 위해 생을 살며, 모든 것들을 기록하

고 또 기억했다.  

샤나는 생전에 하던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뷔브 할머니는 내가 언젠가는 내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해 줄 거라고 말씀하셨지. 그

때 할머니가 염두에 두고 계셨던 사람은 바로 너였어."

"아니요. 난 내 자신만 바꿀 수 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 세상은...... 세상은 항상 이

런 식이었어요. 내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할머니는 세상을 변화시켰나요?"

"나는 네 마음을 움직였다. 네게 영향을 주었어. 나는 비명을 질렀고 너는 들었지. 너는 목격자야. 이

제 네 차례다. 기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는 확식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말하고 또 할해야 할

사람은 바로 너야."     - P 277

 

 "다 기억해요. 이제 그건 내 인생이기도 하니까요. 당신과 나는 같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

 P 276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서 출발한 전쟁은 수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야 마침내 끝이 났다. 어떤 이유

에서 시작된 전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옳은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초반에는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마무리가 참 좋았기에, 마지막에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기억하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이 말처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자손들에게 전쟁이 불러오는 참혹

한 폐해에 대해서 알려줘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잊는 순간, 차디찬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히틀러는 눈을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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