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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마쉬왕의 딸>은 평범한 일상 속에 두 딸의 엄마로 사는 헬레나가 자신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마쉬왕(늪을 다스리는 왕)'이라고 말한다. 15년 간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살았던 헬레나가 아버지의 감옥탈출로 그녀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버지를 왜 사랑했는지, 아버지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나는 어떤 역할이었는지...
자신의 어머니를 12년동안 납치해 그 범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헬레나. 헬레나에겐 태어나고 자라온 늪이 자신의 왕국이었고, 늪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아버지가 그 왕국의 왕이었다. 아버지는 헬레나에게 사냥하는 법을 알려줬고, 추적하는 법, 칼을 다루는 법, 총을 쏘는 법, 자신을 숨기는 법 등, 늪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알려준다.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책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었고 책 속 아마존 소녀를 동경하며 살았다.
당연히 비정상적인 그녀의 어린시절.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가 정말 그 어린시절을 행복해했고, 좋아했단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알려주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다만, 그게 그녀에게 어떤 역할인지 알기 전까지.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사랑했던 아버지를 그녀 손으로 감옥에 보낸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무엇일까. 무엇이 그녀를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것일까. 그리고 아버지는 왜 15년이 지난 후에야 딸을 찾아 오는 것일까.
주인공 헬레나는 아버지가 교도소를 탈출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아이들과 떨어져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을 통해 아버지를 쫒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쫓아간다. 늪에서 빠져나와 살아간 세상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하지만 얼마나 바래왔던 세상인지. 늪에서 나와 만난 세상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반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당황스럽고, 익숙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과는 달리 헬레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해한다. 할머니가 돈때문에 엄마의 이야기를 아끼라는 것과, 자신의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남다르고 돈이 된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욕심내지는 않는다.) 다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있지만, 그게 그녀에게 큰 충격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충격받고, 당황스러워할까봐 자신의 과거를 알아서 숨기는 영악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아버지를 쫓아가며 계속되는 살육.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헬레나. 아버지를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어린 소녀의 호기심은 늪 너머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점차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자신이 아버지에게 어떤 역할인지 알게 된다. 그 속에서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숨막히게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그녀 스스로 느끼며 소설은 절정에 달한다.
<마쉬왕의 딸>은 안데르센의 동화 '마쉬왕의 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물론 원작 동화를 읽으면 더 읽기 수월하겠지만 소설의 챕터가 바뀌며 동화 내용이 실려 큰 어려움 없이 있을 수 있다. 그것보다는 훨씬 흥미로운 소설 전개. 그리고 감정.
영화 <룸>이 납치범과 납치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 아버지에게서 탈출하는 이야기라면, 소설 <마쉬왕의 딸>은 납치범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쫓아가는 이야기다.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에 어쩔 수 없이 가까이 가야만 하는 이야기. 그 속에서 절제된 감정이 헬레나의 어린시절을 담담히 볼 수 있게 만든다. 아니, 담담하게 읽히는 것이 조금 소름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