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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일기 - 하루 5분, 십대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행복한 습관
장혜진 지음 / 르네상스 / 2013년 5월
평점 :
[마음일기] / 장혜진. 르네상스. 2013
p.26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아직 미혼이었지만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가정의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헤아리는 편이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지나치게 닦달하는 가정이 갖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한 결핍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아내는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을 자식에 대한 기대로 대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대개 그 기대는 폭압에 가까웠다.
p.37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진우처럼 발톱을 내밀고 으르렁거리며 '나, 건드리지 마!'라고 절규하는 방식이 그 하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용준이처럼 혼자 끙끙 앓으며 속으로 곪아 들어가는 방식이다.
누가 더 아픈지, 누가 더 오래 아플지, 누가 더 치유가 빠를지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그게 '아픔'의 표현이라는 사실부터 알아주는 게 중요한 일이다.
용준이가 처름으로 '끙', 하고 신음소리를 냈던 유리창 사건은 내게 울림이 컸다.
그리고 사고를 쳤다는 아들 소식에 성적부터 묻던 아버지를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p.41
정연이는 제가 따돌림 당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착하다 못해 어리숙한 그 아이의 성정 때문일 터였다.
착함은 곧 약함과 같은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안 되는 시대다.
약한 존재가 공격에 취약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노와 억눌림에 휩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게 요즘 세상이다.
특히 학교는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짓눌린 감정을 터뜨릴 대상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은 너무나 많고,
결국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하기 마련이다.
정연이처럼 약하디 약한 고리.
약한 존재는 언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서 공격하기 쉬운 대상으로 바뀌었을까?
p.110
"생각이겠죠. 우리는 의외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사랑받기를 더 원하죠.
남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화가 나고 속상해 합니다.
남처럼 되고 싶다고, 남처럼 되지 못한다고 자신을 다그치죠.
나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정작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는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그럴 수는 없죠."
"....."
"가장 사랑해야 할 자신과 반목하느라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동안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상처도 치유됩니다.
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면 남의 상처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 사랑하면 이해되고, 사랑하면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하면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힘이 생긴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터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큰 노력 없이도 이해와 용서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나 자신에게 베풀어본 기억이 나는 정말로 없었다.
p.143
가만히 지켜보는 연습을 해보니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들어주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주면 자신이 바라는 방향을 찾아가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교사나 부모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기다려주는 과정은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지켜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미안한 마음을 표시할 줄 알았다.
그러면서 방향을 결정하고 선택을 해나갔다.
p.146
"네 마음이 어떤지 말로 표현해봐. 선생님이 들어줄 테니까 어떤 내용이라도 다 얘기해보는 거야.
하지만 얘기하기 너무 힘이 들면 안해도 돼. 오늘은 그냥 돌아갔다가 얘기하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오는 거야."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본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갔다.
'생활지도' 차원이 아니라 그저 편하게 보고, 편하게 대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제 문제를 스스로 풀어냈다.
차츰 내 눈에 진짜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아이들에 대한 내 시각이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잘못 보고 있었고, 아이들을 제대로 몰랐다는 걸 확인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태어난 몫만큼 알아서 잘 살고 있고, 알아서 길을 찾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는 제 뜻대로 안되면 포기하고 화내는 게 아니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교사가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힘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거였다.
p.173
"상상만 해도 막막해요. 아빠가 돌아가신다는 생각만 해도 눈 앞이 깜깜해요. 그다음부터는 미래가 없어요."
가슴이 턱, 막혀왔다.
수영이의 삶은 오로지 아버지라는 존재에 기대어 지탱되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밭아 하면서도 씩씩하게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아버지였다.
수영이는 오래 전부터 제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버지 한 사람밖에 없다고 여긴 거였다.
그 유일한 존재가 스러지면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도 살아갈 의미가 없어질 만큼 수영이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신앙이었다.
그러나 수영이의 애착을 감히 지나친 집착이라고 폄하할 수가 없었다.
수영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이 읽혔기 때문이다.
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것이었다.
수영이는 이미 한 번 버림을 받은 아이였다.
이혼은 어른들의 일이라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게 어머니가 없어진다는 건 영혼을 보호해주던 우주가 한 꺼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런 끔찍한 일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아버지에 대한 애착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p.205
괜찮아, 잘하고 있어, 사랑한다, 넌 소중해........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그렇게 요약된다.
그리 거창하지도, 어려지도 않은 말을 듣지 못해 허기진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해서 가슴이 싸하게 아팠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아이들의 고백이 무척 귀에 익은 내용이라는 걸 말이다.
그랬다.
그건 한때 내가 몹시 듣고 싶어 한 말이었다.
괜찮아, 잘 했어. 어느 날 그런 지지와 격려를 받은 뒤부터 나는 얼마나 활기찬 교사로 변했나?
언제부터 내가 나 스스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복, 나도 꽤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나?
그리고 언제부터 어느 누구 아닌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나?
아이들의 간절한 아우성 속에서 나느 그렇게 내 마음을 돌이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들이나 나처럼 똑같이 그런 말을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한번도 그런 마음을 고백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
너무 오랫동안 듣지 못하고 살아서 이제는 그런 소망이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져 버린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소리와 맞닥뜨리면 반가움보다 놀람이 앞서 하던 얘기를 멈추고 끝내는 눈시울부터 붉히는 사람들. 어른들.
p.208
"많이 힘드시죠? 낮에도 밤에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느라 애 많이 쓰시죠?
애쓰느라 정작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조차 모르실 거예요. 그럴 때 누군가 힘드시겠다고, 애 많이 쓰신다고 격려해주면 살맛이 나고 행복해집니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기만 해도 단단히 맺힌 응어리가 풀립니다.
그런데 현실을 다릅니다.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보다, 나에게 그걸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방법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꼭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나 자신이 알아주면 되거든요. 그러면 굳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일도 없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 끝내고 집에 들어가실 때 심호흡하는 대신 이렇게 해보세요.
그날 하루 있었던 일 때문에 마음을 다쳤다면 그 마음을 돌이켜보고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겁니다.
혹시 직장에서 창피한 일이 있었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가볍게 가슴을 쓸어주면서,
'어휴, 그래 네가 쪽팔렸구나, 여러 사람 앞에서 쪽팔려서 힘들었구나, 아, 그랬구나....'
마음은 그렇게 알아주기만 해도 풀어집니다. 화난 마음도, 슬픈 마음도 알아주면 쌓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아주면 상처가 되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p.215
그랬다. 아이들만 아픈 게 아니었다.
교사도 아프고 학부모도 아프고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이 아픈 거였다.
교사나 부모나 자신의 상태를 돌볼 틈도 없이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중압감에 내몰려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는 죄인이 되고,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가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
'나 하나도 감당 못하는 상황'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버텨온 어른들.
이른바 교육의 3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아픈 시대. 그것이 요즘 내 눈에 들어온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사랑한다, 넌 소중해......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다는 말이다.
마음을 방치당한 채 수십 년을 살아온 어른들이 애타게 듣고 싶은 말도 그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마음,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그저 아이들을 닦달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게 대다수의 학부모, 교사가 아닐까?
날이 갈수록 나는 더욱 또렷하게 확신한다.
아픈 아이들을 끝내 죽음으로 몰아가는 건 학업 스트레스나 학교 폭력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지지와 격려, 그리고 공감이 함께한다면 학업의 중요성을 천 번 만 번 강조해도 아이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폭력은 점차 자취를 감출 것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교사, 이 땅의 어른들이 마음의 힘을 키우기를 그래서 나는 바란다.
그 전에 오래 상처받은 그이들을 먼저 보듬는 게 아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첫걸음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그 길에내가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 숙제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