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끝나는가? - 벼랑 끝에 서 있는 일본
야마구치 지로 지음, 김용범 옮김 / 어문학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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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위험을 사전에 피하고 현재의 위기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열의를 품는 것이다." (이소크라테스[BC 436~BC 338])


이렇듯 2300년 전 선현도 아주 잘 알고 있던 진리이지만, 양차대전이 끝나고 영구평화를 위한 국제연합이 구성 된 이후로도 민주주의를 세우는 길이 쉽지 않았던 것은 현재 미얀마 군부의 민주정권을 뒤엎은 쿠데타나, 한국도 겪어왔던 군사 쿠데타에서 엿볼 수 있다. 이상(理想)에 대한 인류적 총론이 일치하더라도 그게 각 국가레벨의 각론에서는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왔다고나 할까···


사실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큰 파고는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을 패배시킨 미국 대선과, 작년 8월 아베 수상의 사퇴로 인해 한풀 꺾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서가 일본에서 201910월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시기적으로 조금 더 빨리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역자로서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면한 위기가 회피된 것 처럼 보이더라도, 왜 그 파고가 현실을 위협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는지 되새겨 보는 것에는, 앞에서 소개한 이소크라테스의 금언대로, 현재의 민주주의가 미래에 다시 겪게 될지 모를 위기를 피하게 만드는 데에도,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민중을 잠식할지 모를 압제에서 깰 수 있게 하는 의식의 각성을 위해서도 가치가 있다.


이미 끝난 역사라고 덮어둘 게 아니라, 그 강권통치를 이어오던 아베 정권 시기 일본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고, 그런 절박한 시대적 위기감에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소수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하였는가를 아는 것은, 국경의 틀을 넘어 압제에 대항하기 위한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게 해주리라 생각된다. 저자가 책의 부제(副題)로 선택한 벼랑 끝에 선 일본(瀬戸際日本)이란 말은, 정말 그 시기의 위기감을 드러내기 위함에 다름 아니었다.


포스트 아베정권인 스가정권은, 아베 총리의 복심이던 스가 관방장관이 총리의 자리를 이어 받은 것과, 아베 정권 시절 부총리인 아소 다로가 유임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거칠게 말하자면 아베정권의 잔여임기(~’219)를 맡기 위한 아베정권의 복사판 정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서에도 등장하는 아베 정권의 언론탄압의 사례 -2016년을 시작으로 하여, NHK의 클로즈업 현대의 캐스터를 맡고 있던 구니야 히로코, 테레비 아사히의 보도스테이션의 캐스터를 맡고 있던 후루타치 이치로, TBS의 뉴스23의 코멘테이터를 맡고 있던 기시이 시게타다가 차례로 방송에서 강판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본서 204p)-, 포스트 아베정권인 스가정권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스가 총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던 NHK의 ‘뉴스워치9’의 진행자 아리마 요시오 앵커가 강판당하는 등, 그 정권의 국민과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의 유사성은 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사성은 인접국을 대하는 태도의 유사성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 원형(原型)이 되는 아베 정권에 대한 이 책의 비판적 시좌는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유효성을 지닐 것이라 생각된다.


민의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일본 민주당 정권이 불과 3(2009~2012)으로 붕괴하고, 그 아베 정권의 그림자가 드리운 7년여 동안, 이렇듯 손쉽게 민주주의의 틀이 파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본서 내의 여러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례와,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들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독자들의 읽으시는 재미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따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저자인 야마구치 지로 교수는 그렇기에 당면한 일본의 민주주의의 위기와 비교하여, 본문 및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적 정권교체의 틀과, 시련을 이겨내고 되찾은 우리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성취를 자부하며, 한편으론 그 성취에 취하지 않고 민주주의적 대화의 틀,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공적 가치의 존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저자의 책의 한국어판 서문과는 별개로, 저자 야마구치 지로 교수는 칼럼에서 '한국에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한겨례신문 [세계의 창] 21 1월 칼럼) 이것은 한국이 애써 되찾은 민주주의를 다시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접국의 현인의 우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2017년의 시대정신을 몰가치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며, 대중들이 쏟는 개인의 인기의 성쇠가 역사의 선현들이 희구했던 불변의 가치와 결부되지도, 그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독자들이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호혐과는 별개로 민주주의적 틀의 긴요함을 이 책을 통해 되새겨 주실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을 듯 하다.


마지막으로, 본서 마지막의 문장을 인용하며 소개글을 마치고자 한다.

수백 년이라는 단위로 보자면, 인간은 자유의 획득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싸워왔고, 성과를 올려왔다. 역사는 간단하지 않고, 전진과 후퇴를 해 가면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는 정착되어 왔다. 20세기에는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반동이 있었으나, 인간은 그것을 뛰어넘어 전후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자유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그 포기 자체가 자유나 민주주의의 쇠약을 불러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마틴 루터 킹이나 넬슨 만델라의 고투를 생각하면,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절망을 말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걸음을 우리들의 시대에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본서 280-281p)-


역자로서, 불초한 제자였지만 그래도 일본 민주주의의 회복을 향한 스승의 열의를 조금이나마 국내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아무쪼록 독자 제현들의 많은 관심과 의견을 바라고자 한다.


자유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그 포기 자체가 자유나 민주주의의 쇠약을 불러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 P281

민주주의의 발걸음을 우리들의 시대에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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