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의 정체 ㅣ 창비아동문고 343
전수경 지음, 김규아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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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좋아하지 않아서 스스로 찾아 읽지 않는데 작년의 딥인고전과 올해까지 이어진 밤의페이지 독서모임, 창비 선생님 북클럽을 통해 몇몇 작가들의 단편집을 읽게 되었다. 장편과 다른 단편만의 매력을 알게 해준 멋진 작가들 - 모파상과 레이먼드 카버, 오늘 이야기 할 전수경 작가!-을 떠올려 보면 다양한 책을 접하고 읽어보는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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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인상은 참 묘...했다. 앞표지에만 14명의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색감과 화풍이 부드러우면서도 굉장히 미스테리한 느낌이라, 솔직히 썩 읽고 싶지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고 미루다가, 아 더는 안되겠다 하고 책을 집어 든것은 바로 다음달 북클럽 도서가 학교에 택배로 도착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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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못하고 읽었다. 반해버렸다. 또 읽고, 다시 한번 더 읽은 후에 책방 사춘기에서 인스타 라이브로 전수경 작가와 북토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인스타 라이브 특성상 채팅으로 간단한 의견만 보낼 수 있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내가 추리했던 내용들이 작가의 의도와 들어맞는다는 것이 기뻤다! 또 굉장히 철학적인 곳 까지 가 닿는 작가의 생각들, 즉 어린이들을 ‘어린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이미 완성된 자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쓴 작품이라 유치한 면은 전혀 없었고, 어른이 보아도 좋은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좋은 작가들과 동시대를 살고, 또 이렇게나 매체가 발달한 시대에 살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쓴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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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허수의 정체>를 포함해 총 8편의 작품이 실려있고 앞의 일곱 편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마지막 <우리 반 아침>에 모두 다시 등장한다. 각 편에서 조금 미운 모습을 보여준 아이에게도 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이 작품과 나의 직장생활, 달과 6펜스까지 맞물리면서 요즘 인간의 입체적인 면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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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회전 킥 - 유진 세호 수미 영배 가현
2. 허수의 정체 - 나(규호) 상규 준표 허수 민서 도훈 뚜언 찬우
3. 하나, 둘, 셋 - 윤채 성우 리나 재영
4. 현악 사중주 - 나래 현아 혜지
5. 할아버지와 바다 - 해수
6. 체험학습 - 주호
7. 월간 낚시 - 찬우 은서 범준 규호
8. 우리반 아침 - 전부 + 혜지 하령 나(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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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 모두를 펼친면에 그린 삽화가 앞, 뒤 표지로 사용되었다.
이 책에 정말 몰입해 읽고 나서 다람쥐에게 건내줬는데 그녀 역시 빠져들었고,
가장 인상깊은 편은 <허수의 정체>라고 했다. 난 사실 이 때 까진 이야기에 빠져 읽느라 삽화를 잘 살펴보지 않았었는데 다람쥐가 “표지에 그려진 허수가 엄청 튄다”며 한참 표지 이야기를 했다. 정말, 옆 얼굴 조차 보이지 않는 아이는 허수 뿐이다. 그 때부터였다. 이 표지 그림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등장인물이로구나 싶어서 책 내용과 삽화를 샅샅히 뒤져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아우 도파민 터진다!!! 일단 노트에 각 편에 등장하는 아이들 이름을 전부 다 쓰고,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각 이야기의 주인공과 서술자를 찾아보았다. 재밌는건 대체로 3인칭 전지적 시점이거나 <무회전 킥>의 경우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면서 ‘나’를 부르는 친구들의 대사에서 서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표제작 <허수의 정체>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고 ‘나’를 부르는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가 없기 때문에 서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표지에 나온 아이들 이름을 전부 찾아보았는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준표와 도훈이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허수의 정체는 정말 한 이틀 사이에 다섯번은 읽은 것 같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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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의 정체>의 ‘나’는 규호라고 추리했다.
왜냐하면 ‘나’는 비밀 수사대를 함께 만든 상규, 준표와 친하게 지내고 셋이서 피시방을 다니며 게임을 잘 한다는 것- 허수를 만나 게임을 하고 함께 놀다 헤어지는 장면-을 알 수 있는데, 마지막 <우리 반 아침>에서 학교 끝나고 우리집 갈사람! 하고 묻는 상규에게 규호가 제일 먼저 “피시방 가기로 했잖아”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 이런 재미있는 책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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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현악 사중주>다.
10여년 전 첫째를 낳고 키울때 맘카페에 들어가보면 많이들 하는 것이 플레이 데이트인데 난 잠깐 휴직중이기도 했고 운전도 할 줄 몰랐으며 심지어 이 동네 학구인 학교에 근무중이었기 때문에 누굴 만나 친해지는것도 사실 꺼려졌었다. 실제로 옆집이 내가 가르치는 학년 학생이기도 했고 복직해서 학부모와 교사 관계로 만나는게 껄끄러울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성격이 모르는 사람과 덥썩 친해지지 못하는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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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와 현아 엄마는 유치원부터 3학년 초까지 나래와 나래엄마와 함께 넷이서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을 많이 공유했을터. 하지만 현아와 나래는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아이였고, 문제가 생기면 먼저 눈물을 보이는 현아 때문에 나래는 억울한 일도 많았다. 또 최근에는 현아때문에 학폭 가해자 입장에 놓일 뻔 한 위기를 혼자 견뎌내야 했던 나래 입장에서는 이런 모임, 이제 그만하고 싶다. 엄마들의 의기투합으로 나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현악 사중주를 들으러 가게 되고 갑작스러운 현아네의 동행이 반갑지 않은데...
배가 아파 갑자기 들른 화장실에서 나래의 속마음을 엿들은 현아 엄마가 화를 내는 모습이 이 관계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래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아가 참 밉고 정이 안가는 이기적인 아이인데 그 엄마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이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갖는 나래를 보면서 내 아이를 돌아보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세상에 그냥 친구도 아니고 어릴때부터 몇 년을 함께 해온 아이 친구인데도 말이다.
차 안에서 감정에 북받쳐 자기 속마음을 쏟아내는 나래를 나래 엄마는 불편해 하고 “빨리 현아한테 사과해. 그리고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라며 명령한다. 오마이갓~
나래 엄마는 이 순간 나래 엄마가 아니라 현아엄마 친구 모씨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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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매개로 확장된 인간관계에서 아이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엄마들의 사교모임이 되어버린다. 어릴때야 단순하니 엄마를 따라다니며 고만고만 섞여 놀지만 커갈수록 저마다의 성향이 뚜렷해지고 서로간의 상호작용도 마냥 어릴때 같을 수만은 없는데 엄마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고분고분 말 듣고 따라 나와서 나의 이 사교 행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저 집 애랑 사이좋게 지내라, 그래야 엄마 편하게 수다 좀 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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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생 첫 저학년 담임을 해 본 때였는데 3월부터 학폭 조짐이 보였다.
여자애들 대여섯명 사이의 갈등이었는데 파고 파고 또 파보니 이 갈등의 뿌리는 유치원 시절에 있었고 관계의 악화 원인은 ‘엄마들끼리 친해서 자주 모인다’였다. 그놈의 이모 이모.... 3월 첫 주에 파악한 그 아이들의 성향은 너무나 상극이었다. 둘이 합쳐서 한사람 채울 인성도 못되는 부모(아이의 인간 말종짓을 전화해서 알리고 지도 요청하면 그게 왜 잘못이냐고 반문했음)밑에 자란 여왕벌 아이 하나에 최측근 시녀를 자처하는 아이 하나(얘는 심지어 내가 여왕벌을 지적하고 혼내는 순간에 끼어들어 ‘선생님, 우리 ㅇㅇ이는 그런 애 아니에요!’했다 ㅋㅋㅋ)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며 여왕벌의 수족 노릇을 하면서 선생님 앞에서는 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상한 아이들, 얘네들은 사실 자기가 그 여왕벌 노릇 하고 싶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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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조합의 시작이 바로 그놈의 엄마들 플레이 데이트 모임에서 아빠들까지 동반한 캠핑 모임으로 번져 애들 적당히 먹을거 먹여놓고 나래 엄마처럼 일생기면 ‘친하게 지내!’라고 자기 애 다그친 다음 부모들은 먹고 노느라 바쁜 그 사교 모임이다. 결국 그 아이들 부모는 뒤로는 나에게 전화해서 여왕벌 아이와 부모를 욕했고 그 집, 그 애 때문에 우리 애가 상쳐받고 나쁜 영향을 받았다며 멀어지고 싶다고 했다. 적극 권장하는 바라고, 댁 네 아이들은 기질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으나. 한 달 지나고 나니 그 집 애들은 또 다같이 묶어서 주말에 캠핑을 가더라. 거기서 또 새로운 문제와 불편감을 느끼고 학교 와서 상담요청하고 힘들다 울고, 일년 내내 이 난리를 반복. 오.. 인생...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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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는 정말 멋진 아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줄 알고 제 욕구가 무엇인지 안다.
나와 맞지 않는 친구와 조용히 서서히 거리를 둘 줄 알고, 자기 할 말도 결국에는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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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왜 날 피해는데?”
현아가 대뜸 말을 걸었다.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다.
“정말 알고 싶어?”
“응”
“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사과하면 끝인 줄 알아.”
“내가?”
“그래, 친구들을 진심으로 대하면 좋겠어.”
“...... 그렇게 할게.”
현아가 내 말을 받아 줘서 다행이었다.
“나래야.“
현아가 다시 불렀다.
”왜?“
”그럼 우리,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는 거지?“
나는 그 질문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중략)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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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하지만 쉽게 꺼낼 수 없었던 고민 끝에 이야기 한 결심을 말하고도
나래는 자신이 나쁜 애가 된 것 같아 불편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아이들이 관계에서 오는 불편감을 무조건 삼켜야 한다고 가르쳐서는 안된다.
왜 불편한지, 어떤 차이에서 오는 문제인지 살펴보고 해결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상대방에게 개선의 의사가 없다면
조용히 멀어지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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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차 안,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한 목적지를 향해가던 네 사람.
결국 나래 엄마는 앞차를 들이 박는다. 20년 무사고를 자랑하던 나래 엄마가.
이 네 사람의 사중주는 점점 듣기 힘든 불협화음이 되어갔고
교통사고는 이 연주를 끝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나래 엄마이고 늘 사고를 잘 낸다는 현아엄마는 얼른 내려 나래엄마를 돕는다.
사고의 피해자는 두 아이, 한 아이가 좀 더 많이 다쳤고 더이상 이 차에 함께 타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이 사고의 뒷수습은 두 아줌마의 몫이다.
​
​
표제작인 <허수의 정체>,
세개의 직장, 3단지의 아파트, 이 두가지의 조합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은 아이가 없는 표선마을 아이들은
자신이 어느 조합의 아이인지 알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또 어디에 속한 아이인지 잘 알고 있다.
어느날 전학온 외계인 같은 아이 진허수, 노란 티셔츠에 번들거리는 비닐 가방을 메고 온 이 아이는 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말도 안 돼. 다른 데는 없어.”
​
부모의 직장이 어디인지, 사는 아파트가 어디인지 집요하게 묻는 아이들에게 초면에 이런 개인정보를 질문하다니 불쾌하다고 일갈하는 허수는 이 두가지 만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늑대인간이 되었다가 귀신이 되었다가 한다. 우연히 허수의 뒤를 쫓던 아이들은 결국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 준표가 야구를 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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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좀 하네.” 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나 야구 선수야.” 허수가 말했다.
“진짜? 왜 말 안 했어?” 상규가 깜짝 놀랐다.
“안 물어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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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가 더 궁금하다.
나의 기준으로 사람을 재어보고 내 생각대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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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와 아이들은 이 날 허수에게 야구를 배우고, 같이 게임도 하며 친해진다. 진작 친해지지 못한게 아쉬울 정도로 허수는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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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허수는 전학을 갔고, 허수가 잊혀질 때 쯤 민서라는 아이가 전학을 온다.
회색옷을 입은 민서에게 다가간 아이들의 질문은 ‘모두 유채색’이었다.
무채색 세상에 사는 아이들에게 온갖 현란한 색을 가져와 눈을 뜨게 해준 허수 덕분에
이제 아이들은 이 세상이 알록달록 다양한 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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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온 첫 날 부터 떠난 그 날 까지 아이의 이름을 한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담임선생님 캐릭터도 독특하다.
허수의 풀네임은 ‘진허수’, 선생님은 허진수라고 부르는데 ㅋㅋㅋ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자꾸만 혼동하는 어른들을 꼬집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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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에서 전수경 작가는 허수는 아이들의 세상을 확장시키는 아이이고, 데카르트의 좌표를 떠올리면서 몇가지 요소로 인해 좌표가 정해지는 요즘 아이들-다양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단수하게 눈에 보이는 몇가지 요소로 규정지어지는 무채색+비슷비슷한 브랜드 일색의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구상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허수의 정체를 부모 직장과 사는 곳으로 좌표를 찍으려 했지만 허수를 이를 거부했고, “실존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허수’의 존재로 이 좌표판을 좀 흔들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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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와 바다>는 나는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감동을 받았지만 12살 다람쥐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비슷한 경험이 없는 어린 아이이고 나는 할아버지나 해수 엄마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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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수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가족끼리의 모임을 피하고 싶은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며 이 편을 읽기 시작했다.
표현이 서툰,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는지 깨닫게 한 것이 바로 <할아버지와 바다>이다. 할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는 해수는 병든 몸에 갇힌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혼자 남은 할아버지의 눈물을 보며 할아버지는 여전히 할아버지라며 가장 큰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된 해수의 모습에 가슴뭉클함을 느꼈다. 가족들과의 떠들썩한 면회 시간보다 할아버지에게 더 의지가 된 것은 환자복 아래에서 느껴지는 여전한 할아버지의 살냄새를 맡을 수 있는 해수의 말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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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3쪽
“엄마, 할아버지는 예전과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할아버지는 해수가 아는 가장 단정하고 우아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손주인 해수에게조차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픈 몸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해수는 달라진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웠다.
“나라면 변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을 것 같아. 나는 할아버지를 보는 게...... 미안해.”
“오, 해수야.”
엄마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엄마 마음도 해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
105쪽
“우웅, 우우웅, 웅웅.”
할아버지에게 다가갈수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까, 신경이 곤두섰다. 침대 곁으로 가 할아버지 얼굴을 가까이서 봤을 때 해수는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는 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문 채 울음을 삼키는 중이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어디까지 느끼는지 모르지만 분명 슬퍼하고 있었다.
해수는 몸을 기울여 할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댔다. 환자복에서 할아버지 살냄새가 났다. 하루 동안 보았던 할아버지의 여러 얼굴이 스쳐 갔다. 모두 할아버지였다. 모습이 바뀌어도 같은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똑같이 할아버지야.”
해수의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흐느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격렬하던 가슴의 움직임도 차분해졌다.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순간 침대가 배가 되고, 병실이 바다로 변했다. 할아버지는 거친 파도와 싸우는 중이었다. 해수도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긴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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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가님께 표지 그림의 정답표가 있다고 하셨는데!!
북토크 시간이 다 되어 정답을 확인하지 못한 채 라이브가 종료되어버린것이 안타깝고...
책방 사춘기에 디엠을 보내보았으나 읽지를 않음.
정답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직업병 탓에 김규아 작가에게 직접 메세지를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서평을 마무리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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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인간 이시후 ㅣ 창비아동문고 342
윤영주 지음, 김상욱 그림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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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에 걸려 냉동된 열두살 소년이 40년 뒤에 깨어나 만나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
가족에게 닥쳐온 슬픈 사건들, 모든것이 변했지만 나만은 여전히 40년 전 그대로인 상황에서
12살의 몸과 마음을 가진 시후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
내용과 설정은 사실 조금 뻔하다. 제목과 뒷표지의 줄거리를 보면 결론까지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영주 작가의 저력은 이 뻔할수도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개연성있는 사건 전개와 복잡한 인물들의 감정묘사에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 느낌의 지후의 처지에 몰입하다보니 지후의 마음이 다치고 상할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두번째 읽으면서는 막대한 치료비는 둘째 치고 냉동되어 곁에 없는 형을 책임져야 했고,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요양센터에 아빠가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정후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훕!’하고 숨을 멈추고 눈물이 차올랐던 부분이 있다.
​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는 계속 걸어갔다. 정후 생각이 나서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듯 쓸쓸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놀라운 걸 깨달은 것이다.
정후를 껴안은 적이 없다. 한 번도 없었다! 맙소사, 왜 그랬지? 정후가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형인데 먼저 안아주면 될걸. 못 할 건 또 뭐야? 형이면서 동생을 껴안은 적이 없다니. 우린 40년이다 떨어져 있었는데!
146쪽
“내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엄마는......”
“이 바보야!”
소리를 빽 지르자 정후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갈색 눈이 엄마를 똑 닮아 있었다. 아픈 나를 보며 울고 있던 엄마의 눈. 그 눈이 언젠가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나만 없었어도 우리 가족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수백수천의 밤들. 나는 정후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해. 네 탓이 아니야.”
정후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는 반복해서 힘주어 말했다. 꼭 나 자신에게 말하듯이.
“네 탓이 아니야.”
정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볼에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후가 긴 시간 홀로 감당했을 고통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148-149쪽
시후가 돌아온 40년 뒤의 세상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일까?
시후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40년 전의 세상이 그럼 더 좋은 세상이었을까?
​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숱한 발명과 발전과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것을 차치하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발전된 의학기술로 희귀병을 치료하고 몸을 살려냈지만 뒤죽박죽인 세상속에서 삶이 제자리를 찾게 돕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러니 ‘좋은 세상’이냐 아니냐를 논할 수 있는 기준은 그 세상에 사랑이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
이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모티브인 ‘바나나 팬케이크’,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로는 마트에서 바나나를 볼 때마다 저걸 사다 좀 얼려놔야할까? 싶다 ㅎㅎㅎ 흔하디 흔한 바나나가 멸종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 못했겠지. 늘 곁에 있던 자식이, 형이 어느날 희귀병에 걸려 살아 있어도 곁에 있지 못한 상태로 40여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겠지. 시후와 바나나를 얼린것은 가족 모두의 ‘사랑’을 얼린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녹인 시후가 만난 세상은 처참했지만 그래도 살아갈 만 한 것 아니었을까? 시후와 바나나가 녹을때 그 가족의 사랑도 함께 해동되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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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인간 이시후 ㅣ 창비아동문고 342
윤영주 지음, 김상욱 그림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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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에 걸려 냉동된 열두살 소년이 40년 뒤에 깨어나 만나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
가족에게 닥쳐온 슬픈 사건들, 모든것이 변했지만 나만은 여전히 40년 전 그대로인 상황에서
12살의 몸과 마음을 가진 시후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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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설정은 사실 조금 뻔하다. 제목과 뒷표지의 줄거리를 보면 결론까지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영주 작가의 저력은 이 뻔할수도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개연성있는 사건 전개와 복잡한 인물들의 감정묘사에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 느낌의 지후의 처지에 몰입하다보니 지후의 마음이 다치고 상할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두번째 읽으면서는 막대한 치료비는 둘째 치고 냉동되어 곁에 없는 형을 책임져야 했고,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요양센터에 아빠가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정후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훕!’하고 숨을 멈추고 눈물이 차올랐던 부분이 있다.
​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는 계속 걸어갔다. 정후 생각이 나서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듯 쓸쓸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놀라운 걸 깨달은 것이다.
정후를 껴안은 적이 없다. 한 번도 없었다! 맙소사, 왜 그랬지? 정후가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형인데 먼저 안아주면 될걸. 못 할 건 또 뭐야? 형이면서 동생을 껴안은 적이 없다니. 우린 40년이다 떨어져 있었는데!
146쪽
“내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엄마는......”
“이 바보야!”
소리를 빽 지르자 정후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갈색 눈이 엄마를 똑 닮아 있었다. 아픈 나를 보며 울고 있던 엄마의 눈. 그 눈이 언젠가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나만 없었어도 우리 가족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수백수천의 밤들. 나는 정후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해. 네 탓이 아니야.”
정후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는 반복해서 힘주어 말했다. 꼭 나 자신에게 말하듯이.
“네 탓이 아니야.”
정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볼에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후가 긴 시간 홀로 감당했을 고통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148-149쪽
시후가 돌아온 40년 뒤의 세상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일까?
시후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40년 전의 세상이 그럼 더 좋은 세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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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숱한 발명과 발전과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것을 차치하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발전된 의학기술로 희귀병을 치료하고 몸을 살려냈지만 뒤죽박죽인 세상속에서 삶이 제자리를 찾게 돕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러니 ‘좋은 세상’이냐 아니냐를 논할 수 있는 기준은 그 세상에 사랑이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
이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모티브인 ‘바나나 팬케이크’,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로는 마트에서 바나나를 볼 때마다 저걸 사다 좀 얼려놔야할까? 싶다 ㅎㅎㅎ 흔하디 흔한 바나나가 멸종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 못했겠지. 늘 곁에 있던 자식이, 형이 어느날 희귀병에 걸려 살아 있어도 곁에 있지 못한 상태로 40여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겠지. 시후와 바나나를 얼린것은 가족 모두의 ‘사랑’을 얼린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녹인 시후가 만난 세상은 처참했지만 그래도 살아갈 만 한 것 아니었을까? 시후와 바나나가 녹을때 그 가족의 사랑도 함께 해동되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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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x4의 세계 -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ㅣ 창비아동문고 341
조우리 지음, 노인경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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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뭘 의미하는 걸까? 정말 궁금했던 4x4의 세계를 북클럽 첫 책으로 받아 기뻤다.
산뜻한 노랑 표지와 노인경 작가의 귀여운 표지그림, 얇은 책에 신나게 펼쳐든 책에는
깊고 진하고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타겟이 꼭 어린이만은 아닌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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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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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명작의 반열에 오른 다른 책이 등장하고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2. 신파적인 요소가 없다.
3. 삶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4. 제목이 엄청난 호기심과 기대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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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클로디아의 비밀
- 코닉스버그의 이 멋진 책은 숱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만 4곱하기4의 세계에서는 메인 소재이다. 병원에 갇힌 ‘호’에게 클로디아 남매의 모험은 언젠가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꼭 가보고야 말겠다 다짐하며 내일을 꿈꾸게 한다. 이 책을 매개로 ‘새롬’이를 만나게 되고, 둘의 관계는 이 책에 붙인 포스트잇에 채워나간 16칸짜리 빙고가 한장한장 쌓여가며 가까워진다. 얼굴도 모르는 친구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한칸씩 채워가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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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파는 없다.
-‘호’는 자신의 삶을 그리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맞벌이로 바쁜(아마도 아이 병원비 때문에 더욱 그만둘 수 없을)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의 돌봄을 받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큰 불행을 맞이한 손주를 그저 딱하고 짠하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신규때 참 별로였던 학년 부장님께 딱 하나 배운게 있다면, ‘다친 아이 앞에서 호들갑 떨지 말라’인데, 이유는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다친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며 호들갑을 떨면 아이가 더욱 겁먹고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여섯살때 마비가 온 아이를 몇년째 별 차도 없는 병수발을 들었다면... 이제 눈물은 다 말라버렸을까? 시간이 갈 수록 더 조바심 나고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런데 이 집 어른들은 그런 조바심을 아이 앞에서 내비치지 않는다. 호의 ‘삶을 바라보는 낙관성과 반듯함’은 길어진 아이의 병에도 지친 기색 없이 그저 살아가는 한 방법인 양 하루하루 자기 몫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보고 배우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느 장면에선가 맞벌이로 힘든 엄마아빠의 이야기가 튀어나올까봐, 부모의 부재로 슬퍼 우는 아이의 모습을 마주할까봐, 친구의 죽음을 겪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책을 읽었지만 끝까지 그런 모습은 없다. 오히려 아이들 병실에 두고 가야하는 엄마가 아이를 안고 울지만 사실 호의 눈물은 엄마가 떠나서가 아니었다. 동상이몽! 어른들의 생각보다 아이들은 단단하고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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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삶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
-어느날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갖는 희망은 뭘까? 다시 두 다리로 서는 것, 스스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 그런데 그렇게 오래 꿈꿔온 희망이 찾아올 가능성이 정말 낮다면, 티끌같은 희망을 붙들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까 ‘다른 종류의 희망’을 꿈꾸어야 할까? 책 속 ’고온유 선생님‘은 호에게 다시 걷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살아가는 것’이고 넌 지금 그걸 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늘 언젠가 걸을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며 격려하는 다른 어른들 보다 기적이 찾아오지 않아도 남은 너의 삶은 가치있으며 그걸 살아내야 한다고 말해주는 고온유 선생님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완전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고 그 삶도 행복할 수 있지!
교실에서 만나는 몇몇 아이들은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기도 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은 무작정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더니 끝내 기적같은 일이 찾아왔다는 스토리보다 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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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제목 <4x4의 세계>
-어릴때 질리도록 했던 빙고, 어른이 되어서는 제일 만만한 교실 놀이가 빙고다. 사실 빙고판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체 뭐지? 어떤 세계야? 판타지인가? 하는 수많은 물음표와 함께 책을 펼쳤다. 병실 천장에 펼쳐진 좁은 세계가 호와 새롬이 사이에 오고가는 빙고판이 되면서 서로를 성장하게 만드는 넓은 세계가 될 줄이야. 제목 작명 센스가 가히 천재적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빙고게임을 하면서 25칸을 채우려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호와 새롬이도 서로 주고받는 빙고칸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결국 빙고는 호와 새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이기도 하고 호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과정을 보면서 관계맺기의 시작은 자기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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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재정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난 이 열여섯칸의 빙고와 삶을 보는 관점, 책을 통한 위로와 우정을 아이들 마음에 닿게 할 수 있을지 내내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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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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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온 우편물이 학교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기대를 가득 안고 행정실 앞 우편물 더미에서 찾아 들고 교실로 뛰어가 열어보았다.


노랑, 흰, 검정의 극명한 대비와 종이의 서걱거림이나 매끈함이 없는 독특한 질감의 책이다.

표지는 정말, '하... 그래, 이 복잡한 세상...'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복잡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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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지의 까만 우 주 속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그 다음에는 지구, 그 다음엔 도시, 그 다음엔 도시의 어딘가로 점점 좁혀져 가고 거기에 한 아기가 있다.

기지개를 펴는 아기와 아기의 팔다리가 닿는 곳은 흰색, 그 너머는 전부 노랑으로 칠해져 있다. 나는 이 노랑이 아이 외부의 세상을 나타내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흰색은 아기 자신의 영역, 익숙한 세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아기의 그림자도 노란색인데, 어린 아기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놀라서 도망다니는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신생아들이 자기 주먹을 세상 신기한 장난감처럼 살펴보고 탐색하기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조차 새로운 세상이었을 이 갓난 아기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된 것 같았다.

아이가 사는 집 창문의 창살은 가정집이 아니라 감옥의 창문 모양이다.(아이들이 보자마자 이거 집 아니고 감옥 아니예요? 했다)

이는 안에서 밖으로도, 밖에서 안으로도, 어느쪽으로도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장치이다.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커다란 손은 바깥 세상의 위험이 아이를 해치지 않길 바랬고, 순수한 아이가 위험하고 잔혹한 바깥 세상으로 넘어가는것도 원하지 않았다는걸 보여준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대체로 이럴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


커다란 손이 주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서 행복했던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손은 쉬지않고 질문하는 아이에게 많은것들을 설명하고 알려준다.

아이가 창 밖의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을때, 손은 자상한 설명을 멈춘다.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묻지만 대답해주지 않음)

우연히 보게 된 사슴의 죽음을 보며 "보았니 저것이 세상이란다.", 죽는다는 건 어떤 거냐 묻는 아이에게 "모든 것과 이별하는 것이란다. 끔찍한 일이지."라고 단언하며 세상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이 그치기를 바란다.

​

아이는 아이답게 그 장면과 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지만 사슴의 사체에서 피어난 노란빛, 여자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모든것을 알려주던 손에게 누구인지, 나가서 같이 놀고 싶다고 말하지만 손은 아무말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바깥 세상에 대한 열망은 커졌고, 자신을 막아서는 손의 말을 의심하면서 대립하기 시작한다. 밖으로 통하는 쥐구멍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 아이를 손이 뒤쫓지만 손이 닿는 곳은 한계가 있었고, 아이는 다시 돌아와 손을 안심시키며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떠나간다. 손은 그런 아이를 응원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응???

나 이런 이야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 그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성장하는 아이.

아이의 삶에서 모든 위험과 슬픔을 없애고 싶은 부모와 점점 자라 그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은 아이

둘의 갈등, 아이의 탈출, 부모의 좌절,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세상을 향해 떠나가는 아이.

그러니까 아이의 세상을 존중해주고 위험도 좌절도 배반도 스스로 겪고 성장하도록 믿고 세상에 나아가게 해주자는거 아냐?

​

신나서 포장을 뜯어 주르륵 읽어 나간 그림책은 사실... 조금 실망스러웠다.

새로운 것을 기대했고

강경수 작가니까, 흔한 일상 속에서 뭔가 꼬집어서 마지막에 훅 끼쳐오는 뭔가를 보여주겠지,

기대했는데...

​

내일 애들하고 같이 읽어보면 뭔가 다를거야, 하고 일단 퇴근.

다음날 우리반 책 나누는 시간에 오늘의 낭독자에게 무슨 책을 준비했냐 물어보니 신기하게도 강경수 작가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란다.

놀라운 우연이다.

너랑 나랑 통했구나 싶어 너무 신나,

팔딱팔딱 애들한테 어머어머어머 내가 너희 오늘 읽어주려던 책이 강경수 작가의 새 그림책이야! 하고 아주 오도방정을 떨었다.

그러나 여전히 강팍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난 뒤 , 아이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

  • 불량한 자전거 여행의 호진이 마음이 이 책 속 아이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아서 호진이가 떠올랐다.

  • 노란색이 아이의 세상을 나타내는 색인가보다.

  • 내가 봐도 늑대가 너무 무섭게 그려져 있어서 그걸 이겨내고 세상으로 나간 소년이 정말 대단하고 생각한다.

  • 밀밭(?)에 고래가 헤엄치는게 환상적이고 멋지다. 대관람차도 있고 풍차도 있고 아이가 가는 세상이 신기하게 생겼다.

  • 여자아이가 길에서 손흔들고 있는게 찡했다.

  • 모자 뒤집어 쓰고 반항하는게 웃기다

  • 머리카락으로 쥐구멍 가려놓을 생각을 하다니 참 기발하다

  • 숟가락으로 구멍을 파서 탈옥하는 이야기를 어디서 봤는데...?

​

흰색과 노랑, 검정만으로 표현한 세상이 참 강렬했다고 한다. 노란색이 아이가 꿈꾸는 세상, 흰색은 아이에게 허용된 세상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렇게 책나누기 시간 마치고 아이들 집에 보내고 혼자 다시 살펴보는데 마지막 페이지의 까만 우주에 혼자 빛나는 노란 별이 보인다.

아, 이 아이가 자기만의 세상을 찾으면서 우주에 이 아이만의 노란 별이 생겨났구나 싶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작품에 대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ㅜㅜ

​


받자 마자 혼자 읽어보고,

다음날 아침 독서시간에 한번 더 보고,(아 뭐야...뻔한 스토리군)

아이들 읽어주면서 보고,(아이들 눈에는 그런것도 보이는구나)

집에 보내놓고 한번 더 보고(어머 이런 부분도 있었네)

다음날 고운언니랑 이야기 나누면서 한번 더 읽고.

그래도 뭔가 마음에 차오르는것이 없어 서평이 써지지 않았는데, 창비와 그사모가 콜라보해서 작가와의 북토크가 있을거란 소식을 들었다.



평소 북토크에 참여하는 마음은 늘 팬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평이 숙제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뭐라고 하시는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다.(팔짱끼고 ㅋㅋㅋ)

강경수 작가님은 참 편안하고 간결하게 말씀을 잘 하시더라. 북토크 처음이었는데 너무 좋아서 혼자 내적친밀감 엄청 놓아졌다.

짧은 시간에 에센셜한 이야기들 전달할 수 있게 준비도 많이 해오셔서 북토크 마칠때쯤은 그림책 '세상'에 대한 마음이 좀 더 깊어졌다.

​

나는 사슴의 자리에서 태어난? 생겨난? 여자아이는 대체 어떤 존재인건지 왜 등장한것인지 참 궁금했다.

마지막 여행길 위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손흔드는 진부한 캐릭터로는만족할 수 없었다. 상당히 비중이 있을 듯 그려졌지만 막상 아이가 밖을 더욱 갈망하게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아이의 마음이 투영된 실체가 없는 존재라는 작가님의 설명에 납작했던 그림책이 확 부풀어 올라 부피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부분을 살펴보니 여자아이에 대해 묻는 아이에게 손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데, 아이에게만 보이는 존재라고 하니 마음에 든다.

​

또 사슴이 죽고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은 삶의 희노애락이 영원하지 않고 순환함을 말하고 싶어서 였다고 하셨다. 죽음 이후의 과정이 끔찍해 보이지만,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생명으로 다시 피어난다는 것이다.

​

아이가길을 떠나는 세상 속 풀밭을 헤엄치는 고래와 나른한 화산, 대관람차와 풍차를 그린 이유를 질문했더니

소년이 가는 길이 그렇게 재미있는 길이 되기를 원했다고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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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모태가 된 미니북 '갇힌 남자'도 볼 수 있었다. 책 프레임에 갇혀있는 아이의 이야기. 표지에 휠체어 탄 노인이 앉아있다.

자유의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다. 나는 그 미니북도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

작가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그림책의 서사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

​내가 꼽는 베스트 장면은,

  1. 마지막 장에 그려진 우주에 아이의 새로운 세상이 노란 별로 그려진 것 - 아무튼 나는 노란색은 아이가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표현하는 색 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에 저 노란 별이 소년의 별이구나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북토크 마지막에 '개인의 스토리를 갖게 된 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작가님이 숨겨둔 암시를 잘 알아먹었군 싶어서 기뻤다. 뒷표지 면지에는 다른 별들은 보이지 않고 그 아이만의 노란 별 하나만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좋았다. 더 크고 화려한 다른 별들도 많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이야기가 담긴 나의 별, 나의 세상!

 

​

2. 사춘기가 찾아온 아이 방 벽에 "쇼생크 탈출"포스터가 붙어있는 것 ㅋㅋㅋ - 앤디 듀프레인이 하수구를 기어서 똥물을 다 뒤집어쓰고 탈옥한 끝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그 장면!! 온 몸에 묻은 오물이 씻겨져 나가며 드디어 삶을 되찾는 그 장면!! 자유를 속박하는 부모 밑에서 청소년기 자녀가 느끼는 감정이 딱 앤디가 감옥에서 느낀 '억울함'과 '자유를(바깥 세상을) 향한 미칠듯한 갈망' 이겠구나 하고 보니 이런 찰떡같은 포스터가 있나 싶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번역한 홍한별씨는' 옮긴이의 말'에 클레어 키건에게 받은 조언을 남겼다.

"....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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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작가의 이번 그림책 '세상'은 많은 암시를 품고 있었지만

스토리의 진부함만을 바라본 나에게는 더 읽어보고자 하는 동기유발이 안되는 책이었다.(북토크 전)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책장 한켠에 꽂힌채 잊혀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라 내공이 좀 더 쌓이면 다시 한 번 글로 정리해 보고 싶다.

​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이 월요일이었는데 화요일 북토크 후로 꾸준히 문장을 더해왔지만 결국 일요일 밤늦게 이 빈약한 글을 마무리 한다.

핑계를 대자면,

내가 지금 월요일 출근을 목전에 두고 있고, 단원평가 채점도 해야 하며,

내일부터 기말고사 시작하는 중학생 동동이 뒷바라지에 마음이 급한 지금은 도저히 그것들이 다 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

반 아이들하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림책은 읽어주는 사람이 그 책에 얼마나 마음이 닿아 있는지에 따라 몰입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 맞다 우리 다람쥐.

정작 집에 있는 자식에게는 읽어주지 않았다는걸 이제야 깨닫는다.

난 아직 다람쥐도... 동동이도... (어머님 아들인 펭귄도.) 손아귀에 쥐고 있어야겠어.... ㅋㅋㅋㅋㅋ

아직은 엄마 손아귀에서의 행복(???)에 만족하며, 도망갈 구멍을 파기 위해 숟가락을 숨기지 않는 자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서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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