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쓴 가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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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책을 겹겹의 레이어로 지닌 책이 좋다.
자기 스스로도 이미 완전한 작품이지만
다층적 레이어를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이끌어 내는 책 말이다.
이윤희 작가의 <안경을 쓴 가을>처럼.

책을 처음 받아 읽었을 때는 따뜻했다.
준코 나카무라의 그림책 <La visite>가 떠올랐다.
반려인들이 외출하고 나면 사람처럼 옷을 입고
친구 집을 방문해 차담을 나누는 고양이들처럼
이야기 전체를 관망하는 동네 길고양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고양이... 열세살의 여름에서 해원이와 산호가
돌보던 하트의 아가들 중 한마리가 분명하다. ㅎㅎㅎ
말하는 가을이와 안경 하나로 마치 ‘아내의 유혹’ 민소희처럼
가족들 보두 가을이를 형으로 인지하는 상황이 재밌었다.
심지어 형 노릇하는 가을이가 너무 차분하게 잘 먹고
학교도 잘 다니고 하니 들킬까 불안한 마음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점이 이 책의 멋진 부분이다.

다시 읽을 때는 형의 책상 위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 포송령의 <요재지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시지프의 신화>가 주는 메세지에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안경 컬렉션 위에 놓인 <요재지이>는 아마도 안경을 쓰고
형이 되어 살아가는 가을이를 암시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처럼 되어보려는
형을 들여다보기 위해 필요한 장치인데,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모른다 ㅎㅎㅎ
시지프의 신화도 요재지이도 딱히 궁금하지 않아
검색해서 요점만 파악했는데 그래도 샐린저는 읽어볼만 할 것 같았다.
동네 서점은 방학중이고..
태어나 처음으로 새벽배송 해주는 쿠팡에서 책을 샀다.

덕분에 형이 왜 가출을 하려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지만
중학교 2학년 형의 마음 속에 어떤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살다가 마음이 너무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사는지, 이런 생각들로 괴로운지
궁금해 늘 책 속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고
작가가 그 삶을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보고 싶어하는 나처럼, 형도 홀든의 방황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지 않았을까.
어린이 보호구역 화살표와 반대되는 곳으로
자꾸만 향해가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홀든 콜필드가 겪었던 여정보다 훨씬 따뜻해서 좋았다.

<안경을 쓴 가을>은 열두살 다람쥐도 벌써 두 번 읽었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너무 좋단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자기에게 맞는 공감과 이해와
다정함을 끌어내고 마는 책이다.

만약 홀든의 격정에 형이 빠져들어
미친듯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가을이가 사람 행세할 수 있는 방법을
구구 절절 풀어놓았다면?
삶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내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요? 하며 인생 강론을 펼쳤다면
이 책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이 되었을 텐데.
작가는 정말 똑똑하다. 지혜롭다. 대단하다.
책을 덮을 때마다 감탄사를 자꾸만 내뱉게 된다.

되도 않을 위스키소다를 주문하고 결국 콜라를 마시는 모습도,
바닷가에서 ’말해 버리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는 홀든의 마지막 대사를
온몸으로 느끼는 모습도, 내가 그 맥락을 이해하고 다시 보니 더욱 절절하고, 귀엽다.

이 짧은 가을이 가기 전에 나는 몇 번을 더 이 책을 더 들여다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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