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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외로움
마리아 호세 페라다 지음, 마리아나 알칸타라 그림, 최경화 옮김 / 목요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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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피드에서 표지를 보고 멈칫했던 이유는 눈을 감은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외로움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책을 받고 읽고 난 첫 느낌은 서늘함이었고, 글자 한자라도 빼놓고 읽으면 안될 것 같은 심정으로 거듭 읽고 난 뒤에 남은 건 뭉근한 온돌 바닥의 기억이었다.

우리나라도 독재 시대를 거쳐왔고,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많은 이들의 사연을 뉴스나 다큐멘터리, 소설이나 시, 영화를 통해 접해왔지만 독재 시대의 어린이가 겪었을 공포와 깊은 상흔에 대해서는 그림책을 통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화자나 주인공이 어린이인 작품을 통해 어린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아이는 자기만의 작은 공간에 웅크리고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만의 도시를 건설하고, 갇힌 존재를 위한 창을 내고, 밤새 머리에 엉킨 별들을 풀어내고, 자신을 닮은 작은 존재를 돌본다.

그런 아이도 지극한 돌봄을 받는다.
"다 지나갈 거야. 지나가." 말해주는 따스하고 넉넉한 품을 가진 이로부터.

슬픔과 고통이 쉬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언젠가부터 '다 지나간다' 는 말이 위로가 되질 않았다. 그저 견디다보면 조금씩 옅어진다는 걸 알았을 뿐.
그런데 맨 앞장에 쓰인
'이 책은 COVID-19가 끝난 2023년 멕시코시티의 오프셋 레보산에서 인쇄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라는 글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이구나,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페데믹이 그렇게 지나갔지, 하는 생각에 이어 간절한 기도 같은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물고기의 외로움도 다 지나갔기를.

아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표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마리아 호세 페라다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는 2013년에 출판된 <어린이>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칠레 어린이들의 생각, 열망, 삶을 연대 순으로 기록하고, 칠레 독재 기간 동안 정치적 폭력을 경험한 미성년자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작가 소개글 중에서

#마리아호세페라다
#마리아나알칸다라
#최경화_옮김
#목요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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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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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발견한 호의, 곧 친절한 마음씨는 이런 것들이다.
법을 잘 모르는 착한 사람들이 받는 불이익과 피해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
법을 알면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들, 조정을 통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판결이 날 수 있는 사례들을 담았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호의도 인상 깊었다. 재판 과정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의 사연과 처한 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 벌을 주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다시 죄를 범하지 않고 잘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알콜 중독 치료, 심리 상담, 심지어는 그 사람의 사정을 깊이 헤아려 도움이 될 책을 재판 후 선물하는 장면 같은 것.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게 이런 작은 호의가 아닐까. 판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닌 법조인이 있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문형배 재판관의 인기가 뜨겁다. 이미 이 책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글의 밀도나 구성에 있어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만약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으면 기존 블로그에 쓴 글을 묶은 것에 더해 현재에 달라진 상황이나, 바뀌거나 보완된 법 이야기들을 추가하고, 과거에 쓴 글이 현재 어떤 의미로 다시 다가오는지 쓰고 싶으셨을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독서 기록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하는 책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읽고, 여러번 다시 읽은 책들, 특히 재판 장면이 나오는 고전들을 읽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적용해 배우려는 자세와 점검하는 태도, 어떤 판사가 될 것인가 깊이 성찰하며 사유하는 글들이 좋았다.
경험의 한계를 다양한 책을 읽으며 보완하려는 점도, 자신의 판단과 결정의 무게를 절감하며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책 속 인물들을 탐구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가난한 학생을 사려 깊게 뒷바라지한 김장하 선생님의 호의가 법이 우리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 문형배 판사에게로 이어졌듯, 이 책을 통해 그 호의가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법에 대해 무지한 데다 기대와 신뢰는 커녕 실망감만 안고 있는 내게 사람답게 사는 삶,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하는 법조인이 있으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무탈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것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으니 말이다.

나는 어떤 호의를 베풀고 살아갈 것인가, 조금은 무거운 질문이 남는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모두 각자가 이어갈 호의에 대해 생각할 터.
불신과 냉대, 혐오와 폭력이 난무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작은 호의들이 똘똘 뭉쳐 촘촘하고 튼실한 안전망을 만들어갔으면!

#문형배에세이
#호의에대하여
#김영사
#북코디네이터의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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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낙원 -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
박서영(무루)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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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 작가님 만큼 그림책을 융숭하게(정중한 태도와 극진한 사랑으로) 대하는 분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작가님의 깊고 너른 사유의 세계 속을 거닐며 아름다운 책들을 천천히 만나보고 싶습니다.'

책표지, 작가와 출판사 이름까지. 단숨에 매혹되어 리뷰어 신청을 했다.

그림책을 몇 번 읽고 나서 얼마든지 예쁘고 다정한 말로 리뷰를 쓸 수 있다는 걸 알아챈 뒤, 그림책 얘기하는 걸 삼갔다. 그림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듭 펼쳐볼수록 의미는 풍부해지고 사유는 더 뻗어나가기 때문이었다.

5년 만에 책에서 다시 만난 작가의 어조는 더 세심하고 진중해진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가 한 권 한 권 그림책을 다시 펼쳐 보는데 어찌나 좋던지.

<모두 가 버리고>에서 냄비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장면과 눈동자와 시선 처리만으로 이이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낸 에바 린드스트룀에 반했던지라 첫 챕터부터 훅 빠져 읽었다. 같은 장면에 멈춰 오래 생각에 잠겼을 작가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이가 나만은 아닐 터. 같은 그림책을 좋아하고, 같은 등장인물에 애착을 느끼는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간질거리고 뜨듯해진다. 한강 작가가 쓴 '빛과 실'의 이미지가 그림책 세계로도 환하게, 튼튼하게 연결되는 듯하다.

어떤 책은 알지 못했던 사연을 알게 되고(까치밥나무의 열매), 촘촘한 의미를 놓치며 봤던 책은 다시 빌려보기도 했다.(나의 오두막)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안 켜켜이 쌓인 슬픔과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가도록 가만가만 등을 두드려주는 작가의 손길을 상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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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은 독자에게 언제나 재독을 요구한다. 아무리 단순하게 그려졌다 하더라도 그림책의 그림은 반드시 다시 읽었을 때 더 잘 보이는 맥락과 의미를 지녔다 새롭게 발견된 이야기와 이전의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오답노트 같은 것이 아니다.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 숀탠은 ‘이야기란 우리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답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그림책은 때때로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보여준다. 글과 그림, 낱장과 시퀀스, 넘기고 멈추고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의 진실이 이야기로 완성된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은 이야기가 언제나 하나의 초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모두를 환대하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오솔길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 저마다 진실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가모르는낙원
#무루
#오후의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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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깊고 너른 이야기를 미처 읽어 내지 못하고 있다가 그림책의 한 장면이 소설 한 권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놀라며 읽었던 적도 있다.
#한달에한권시와그림책 도 그런 조심스러움을 담아 만든 모임이었다. 한 달 내내 그림책을 보고 또 보는 동안 깊어진 건 그림책을 분석하는 안목도, 그림책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해설도 아니었다. 그저 그림책 속의 인물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구석구석 숨겨둔 작가의 다정한 마음과 살뜰한 응원의 흔적에 살아갈 힘을 얻었을 뿐이다.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 댁에서 지낸 이야기도,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파트도 참 좋았다. 좋은 어른을 눈여겨 보는 시선과 ‘타인을 복잡하게 이해하고 섬세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일’을 ‘지적인 노력’으로 이해하는 마음에도 깊이 공감했고.
사려 깊은 어른이 등장하는 호리카와 리마코의 <바닷가 아틀리에>를 슬며시 작가님 곁에 놓아드리고도 싶었다.

나는 낙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던가? 작가의 말대로 ‘낙원을 눈앞에 두고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낙원은 언제나 미래형 문장으로 쓰일 것’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림책을 읽는 시간들 속에서 종종 낙원을 엿본 듯싶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이야기 속 소녀가 진흙으로 빚은 작은 새를 소중히 손에 쥔 그림을 좋아한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게 해 주고, 더 나은 나를 꿈꾸게 해주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새를 서로에게 내보이며 함께 다정히 나이 들어가는 곳,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새로 꿈꾸게 된 낙원이다.

#무루
#우리가모르는낙원
#오후의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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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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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벤야민 <고독의 이야기들>
-읽고 쓰는 사람의 지난한 과제

깊은 사유로 이끄는 독특한 비유와 정돈된 문장들에 반해 여러 번 곱씹어 읽고 필사하며 읽었던 <일방통행로/사유 이미지>의 저자라는 이유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이한 꿈과 공상, 생소한 지명들이 등장하는 여행 이야기, 어린이의 놀이와 교육에 대한 단상 혹은 연구가 빼곡히 들어찬 책을 읽어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글의 다채로운 내용과 형식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 종종 미간을 좁히며 애를 쓰며 읽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가며 치열하게 분투하며 써 내려가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이 책은 두고두고 좋은 글이라 평가받는 글이 탄생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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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이 쓴 글의 다종다양함은, 유럽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어쩌다 한 번씩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글을 청탁받아 쓰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그가 구축해나갔던 종종 위태로워지는 실존을 반영한다. 이 책에 수집되어 있는 짧은 형식의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그 자체로 실험적 글쓰기 작품이기 하지만, 벤야민의 비평 작업에 투입되는 아이디어들의 공명판 노릇을 한다.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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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이든 독특한 체험이든, 그 경험담을 다양한 내러티브 방식을 찾아가며 실험적으로 글을 쓰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언어화해 명확한 인식으로 이끄는 벤야민의 책.
그 글을 읽으며 나의 의식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해 보고자 글쓰기를 시도하는 나.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이인삼각 경기인가. 책을 덮고 나니 어려운 숙제를 끝낸 듯 긴 숨을 토해냈다.

벤야민의 글은 집요한 질문의 연속 같다. 예컨대 이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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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왜 세상에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대체 왜 세상은 있는 것일까?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세상을 생각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매번 새롭게 놀라며 알아차리면서. 세상은 없어도 상관없었다.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에 비해 나쁘게 느껴졌거나 낯설었느냐 하면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그 있는 것들 중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부분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데는 달빛 한 줄기면 충분했고.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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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쾌하고 재밌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장난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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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으로 그 불행을 비밀로 하기로 맹세해놓고 비밀로 하지 않은 것이 그의 불행이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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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건 장마다 실린 파울 클레의 그림이었다. 긴장감 넘치는 텍스트로 과열된 머리를 식혀주었고, 다양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천사, 어린이, 꼭두각시 등이 등장하며 웃음 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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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 클레의 ‘단순하며 유머러스하며 공상적인 클레의 그림들은 벤야민이 여기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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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은 이런 것들이다. 무엇이든 기록하려고 애쓸 것. 표현하기 힘든 것을 언어화하는 훈련에 힘쓸 것.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할 것.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할 것.

새삼 제목이 와닿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감내해야 할 ‘고독한’ 시간과 부지런히 수집해야 할 ‘이야기들’. 어렵고 생경한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스스로 만든 좁은 세계에 갇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고독의이야기들
#발터벤야민 글
#파울클레 그림
#김정아_옮김
#엘리출판사
#북코디네이터의글쓰기
#북코디네이터의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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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 밑줄 긋는 시사 작가의 생계형 글쓰기
김현정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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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이자, 글쓰기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세상의 모든 글쓰기 책은 나의 교과서와 같다. 대단한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은 뭘까 염탐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쓰기의 괴로움과 기쁨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글쓰기의 오묘한 세계를 기막히게 그려낸 책을 흠모하며 읽는다.
어떤 글쓰기 책은 내내 고마워하면서 읽기도 하는데, 꽉 막혀 있는 상태에서 돌파구가 될 영감을 주거나 용기를 주는 책을 만났을 때다.
‘앵커 브리핑’을 볼 때마다’ 와, 손석희 앵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멘트를?’하면서도 방송작가의 존재를 자꾸 까먹곤 했다. 그런데 그 작가가 쓴 책이라니, 더구나 <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라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잘하지 않았다.’ 서문에 나오는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의 빗장이 확 열렸다. 물론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집도 샀다란 말에는 기가 죽었지만 말이다.
갑작스레 달리기를 시작한 작가가 달리기는 인생과도 같고, 달리기는 글쓰기와도 같다는 말이 와닿았다. 조급하지 않게 길게 보고 오래 달리는 법을 몸으로 익히며 ‘오늘도’ 달리듯 오늘도 ‘나는 쓴다’라는 말. 작가들이 으레 하는 말이지만 이 책의 목차를 보면 그 무게감이 다르다.
김현정 작가는 연중무휴로 쓰고, 연중공부로 실력을 채우며 쓰고, 연중궁금해 하며 한 발 더 다가가 쓰고, 처음이지만 연중도전하며 쓰고, 내성적이어도 연중취재하며 쓴다. 그렇게 오래 달리듯 연중마감하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은 묵직하다.
다양한 에피소드로 방송국 풍경을 구경하는 듯한 재미가 있고, 솔직하고 편안한 작가의 사람들 이야기도 정겹다. 방송이라는 매체의 기반이 되어야 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글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나의 글쓰기 태도를 점검해 볼 수도 있다.
나도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다.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나도 연중마감 모드로 글을 쓴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글 한 편을 쓰면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는 만족감이 드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절감했다.
261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뒤에 내일 또 시도하면 된다. 쓰는 사람, 쓰려는 사람은 모두가 훌륭하다.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된다.
글쓰기 모임이나 강의를 하면서 늘 강조하며 하는 이야기가 있다. 쓰고 있는 우리는 이미 작가라는 것.
‘작가’라는 정의를 한정 짓지 않으며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결함과 품위를 장착하며 쓰기. 오늘은 이 글을 쓰면서 오늘 치 글을 마감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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