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 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김정환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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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한 시간을 지나왔다. 그 결과, 2017년 드디어 뒤집어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으니 나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출한 내 일상에만 눈길을 두고 살았다. 우리 힘으로 민주주의를 바로잡았음(?)에도 불평등, 불공정, 불합리는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이러한 사실에 질문을 던지기 보다 냉소와 체념으로 퉁치며 외면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왜 또다시 정치적 롤러코스터에 올라타야만 했는가. 나는 그 밤, 통렬하게 스스로를 탓했다. 운동경기의 심판 혹은 극의 관객처럼 이 사회를 바라보며 냉소와 체념을 늘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부작위범과 다름없는 스스로를 탓해야 했다.

저자는 책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열망-실망/죽음-결집의 사이클"*이라는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극의 결함은 없는지 나아가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실행해온 주체, 시민(이하, 민)의 책임은 없는지 혹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지나온 한국 역사를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그와 동시에 저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민의 역할에 대해 견해를 제시한다. 이처럼 무겁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 편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숨 가쁘게 몰입하여 읽어갈 수 있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한국 민주주의 항쟁 역사를 톺아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간 대략적인 흐름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저자는 수많은 참고문헌, 사진자료, 인터뷰, 당시 언론 기사들을 바탕으로 5.18부터 2016년 촛불집회까지 매순간을 현미경 아래에 두고 세세히 펼쳐보였다. 덕분에 다시 봐야 할 영화, 다큐멘터리, 책들이 메모지를 가득 채우고 말았다.
그래, 민주화-탈 민주화의 지속적인 교차, 축제와 탈진을 오가는 반복에서 이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극적인 민주주의 탈환'에 취해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저자가 말하는 민의 책임이란, 국가를 견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이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사회를 만들겠다는 단절과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몇 차례에 걸친 한국 민주주의 레퍼토리 속에서 폭압적인 국가에 대한 저항을 해오면서 시민사회 자신의 과오를 성찰하는 작업을 부차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매번 지금 제일 중요한 목표를 위해 입막음 당한 소중한 가치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없었다.

역사적 이미지 속에서, 때론 현실에서 마주쳐야 했던 폭력적인 국가 앞에서 민과 함께 모였다. 그리고 악인은 끌어내리고 선인은 무대로 불러내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삐걱거릴 때는 극단에 놓이곤 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민의 위치를 선정하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이웃과 함께 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정치 현장이라 여기며 서로가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깨어있을 때 반복되는 한국 민주주의 롤러코스터는 멈추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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