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 (양장) - 문명을 꽃피운 5천 년의 기술
윌리엄 N. 괴츠만 지음, 위대선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방대한 분량에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 써진 책은 구성부터 남다르다. 이 책은 순서대로 금융의 기원, 발생의 원인과 확산, 전달을 기록한다. 문명에 따라 다르게 진화한 금융의 모습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구조에 따라 다른 경제구조가 다른 금융환경을 만들어감을 알려주고, 반대로 금융이 제도와 문화와 사회에 끼친 영향을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금융구조와 금융에 대한 사고체계, 혹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경제시스템에 반영된 모습을 설명해주며 새로 등장할 금융의 신세계를 전망하며 끝을 맺는다.

 

서문에서 친절하게 책의 구조를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독자는 지은이의 친절한 에스코트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책의 두께 때문에 자주 목차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그야말로 이 책의 이정표이자 구성을 한눈에 표현해둔 지도이다. 읽으면서 자주 참고하게 될 것이다. 경제에 문외한이어도, 금융의 발생부터 설명해나가는 역사서이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는 설명이 풍부하게 되어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처음 발생한 금융이 그리스의 아테네, 이탈리아의 로마로 전달되면서 그 뒤 그들만의 독자적인 정치제도 덕에 발달하는 이야기는 인류사, 세계사에서 이 책을 인용하여 따로 설명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융과 언어라는 인류 문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요소를 약소하게 서술하고 지나간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세계사에서 주로 정치, 사회, 전쟁사를 다뤄왔지, 경제와 금융이라는 고도로 발달된 인간적인 사고체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적다는 것이 아쉽다. 지은이 같이, 경제학자이자 동시에 역사학자인 연구자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세계사를 보는 눈은 영영 애꾸가 되었을 것이다. 문명이 다양한 시스템으로 인해 발전한다는 것은 알지만 흔히 정치사가 비중있기 다뤄지기 십상이다. 물론 내 독서가 짧아서 그런 평가를 내릴 수도 있지만 역사라는 것을 배울 때 한 분야에 대해서 적어도 다섯가지 이상의 분야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의견을 함께 들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등장한 종교나 과학같은 것은 특수한 역사로 다뤄지곤 하는데, 금융은 인간이 씨족보다 큰 단위의 공동체를 꾸린다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수단이었고, 사회와 정치 구조의 발전에 금융 발전의 역사가 함께 했다는 것을 알고나면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는 것이 놀랍다. 이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따라가는 시간이 된다. 고대 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유럽의 세가지 문명과 거기서 발생한 원시금융을 다루고, 이후에는 인류사의 두 가지 축이 될 다른 문명, 유럽과 중국의 금융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금융이라고 할 수 있을 18~20세기 금융이론과 영미권의 경제 신세계를 다룬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아테네와 로마의 금융을 비교한 것은 고대유럽 사람들의 금융과 사회에 대한 사고개념을 들여다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는 혼재된 정치구조 속에서 무역과 대부업을 병행하는 혼재된 금융구조를 발전시켰다. 특히 그들의 회계, 계산, 계약 법 위에서 경제가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로마는 지배계급이 신용과 대출을 이용하여 현대의 주식회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국가를 다스렸고, 아테네는 농업과 무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국가로서 거래도중에 일어나는 불의의 사고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정변론이 중요했다. 곧 정치가 경제를 보호하여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결론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경제력이 그시대 인간에게 미친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사고, 아테네가 시민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고도로 발달시켰던 정치적 시스템, 사람과 이익이 몰리던 르네상스 시기에 베네치아에서 발생한 현대적 금융상품과 시장의 기원은 이후 18세기 금융혁신을 통해서 인간이 자본을 목적에 따라 모을 수 있게 되면서 현대적 금융으로 발전하게 된다. 곧 사회의 단위가 달라지자 새로운 관점이 탄생하고,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자본이 탄생하게 되는 순이다.

 

미래와 기회를 이동하고 자원을 재배치하게 된 것은 세상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인 것이다. 시간 자체를 세속화하게 되었다. 베네치아 리알토의금융구조는 곧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시간에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 그 옛날 이탈리아의 금융업자는 시계를 보고 시간이 중요한 차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차원을 인식하게 된 것은 수학에 혁신을 일으키게 된다. 이리하여 계량과 경제적 의사결정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이 등장하게 된다.

 

공채와 국채를 발행한 유럽과 지폐를 찍어내는 중국의 각기 다른 국가주의가 빚어낸 정치도구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가 아시아 사회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중국대륙과 유럽대륙을 큰 비교축으로 삼은 것은 이해하기에 편하고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유럽으로 인식되지만 잘게 파편화된 국가와 도시의 국민이 갖게 되는 사고와 드넓은 땅덩어리에 하나의 국가, 잘 짜여진 관료시스템, 강한 전제군주에 의해서 통치되었던 국민의 사고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당연히 그들의 사회와 경제도구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금융에 대해서 흥미로운 것은, 현대중국이 사회주의를 채택한 것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고대부터 부양하는 국가의 입장을 굳혀 금융도 정부가 관리감독을 해왔고 금융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적이 드물었다. 인간 본성과 부패를 관리하고 넓은 국가의 면적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중국은 철학과 윤리와 금융을 결합시켰다. 인간은 이익으로 움직인다는 명제를 전제하고 그 이익을 가지고 백성을 움직이는데 사용하였고 정부와 관료는 철저히 국가를 중심으로 생각하여 돈과 백성의 흐름을 조종하는 방법으로 금융을 사용했다.

 

4부에서는 현대 금융과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른바 기획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금과 주식과 보험의 등장은 미래를 기획하는 20세기 신인류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주식회사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원시적 모델이 존재했지만,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여러 곳에서 자본을 투자받아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시작한 17세기 부터를 본격적으로 본다고 한다. 새로운 금융질서는 흩어진 자본을 한데모아 강력한 파괴력을 갖게 하고 지역문화사를 지구사로 바뀌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주식시장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기획할 힘을 제공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대륙의 발견과 미국의 등장은 또다른 금융제도, 새로운 금융문화권이 발전하는 시작이 되었다. 미국의 등장은 가장 창의적인 금융실험이 되었다. 거의 모든 것을 금융상품으로 전환하여 미국정부가 현재 얻을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들었다.

 

금융학자들이 돈과 시간을 연결한 관점은 혁명적이다. 새로운 관점은 인류의 사고방식의 도약, 문명의 도약을 의미한다. 계절의 순환과 교회에 얽매인 농경세계의 농업적 시간의 축은 시장과 상업이 생겨나고 농노가 자본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속박되지 않은, 변경되는 자산과 불확실한 리스크로부터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는, 가져오고 빌려올 수 있는 유동적인 시간으로 변경되었다. 미래를 지정하고 설계할 수 있는 세계가 금융으로부터 도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그토록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한 삶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고, 금융상품의 등장은 그런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낮췄다는 진단이다.

 

수학적 사고가 힘들고 숫자에 약한 나로서는 역사나 개념보다는 기초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따라가기가 벅찼으면서도 주요한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워낙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였다. 두고두고 다시 꺼내어 읽고, 같은 시기의 다른 역사적 관점을 가진 책을 발견하면 두 관점을 같이 두고 읽어가면서 인류 사고의 전환과 확장에 대해서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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