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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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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행

 

6년 전, 서른을 목전에 둔 그 해 여름, 일주일 동안 홀로 제주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여행을 앞두고 내 마음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고 진지하고 심각했다. 왜냐고? 스물아홉이었으니까. 이번 여행만큼은 뭔가 의미 있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어 오고 싶었다. 왜냐고? 스물아홉이었으니까.

‘최대한 가벼운 짐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주도를 만끽하자’가 여행목표였다. 여행 가방에 겉옷과 속옷과 양말은 한 두 벌만 집어넣었다. 선크림 따위, 선글라스 따위 불필요한 짐들은 과감히 제외! 그래도 책 한 권은 꼭 챙겨가고 싶었다. 일주일을 홀로 다니는데 친구 대신으로라도 책은 꼭 필요했다.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책. 너무 심각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책. 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적당히 수준을 갖춘 책. ‘홀로 떠나 나를 살펴보는 여행’이라는 주제와도 제법 어울리는 책. 그런 책이 딱 한 권 필요했다. 두 권, 세 권도 아니고 딱 한 권!

부산에서 떠나는 페리도 예약했고, 제주에서의 여정 계획도 다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여행을 이틀 앞두고도 아직 갖고 갈 책을 고르지 못했다. 낭패였다.

아는 친구(국문과 출신의 책 좀 읽는다는 친구였다)에게 반은 자랑이 섞인 고민을 늘어놓았다. ‘내가 모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다른 건 다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아직 갖고 갈 책을 고르지 못했다 이런 이런 책이 필요한데 적당한 책이 있다면 네가 추천 좀 해다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럼, 김형경의 <사람풍경>이 좋겠네’ 라며 이 책을 권했다. 물론 이런 얘기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에이, 빌어먹을 놈아. 누군 이 더운 여름날 똥 빠지게 죽어라고 일만 하고 있는데, 누구는 제주도 놀러간다고 책이나 골라달라 그러고. 니 내 약 올리라고 그러제!’

그 친구의 추천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저자인 김형경의 원래 직업(원래 직업이라는 말이 좀 우습긴 하지만)은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작품으로는 <외출>, <세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등이 있는데, 소설과 더불어 <천 개의 공감>, <사람풍경> 등의 다양한 심리에세이로 더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20대 중반부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범한 독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개념을 만날 때면, ‘인간의 마음을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설명해주는 책’은 없을까 꿈꾸며 본인이 심리학 관련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사람풍경>이다.

 

대부분의 남성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심리학이나 상담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가볍게 여기고 심리학 서적을 읽는 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였다. ‘오이디푸스’니 ‘무의식’이니 하는 ‘콤플렉스’니 하는 이들이 마치 사기꾼처럼 느껴지곤 했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 라는 인간은 왜 이런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까?’, ‘왜 나는 이런 상황에서 늘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일까?’ ‘나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부정적 감정들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와 같은 존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 무작정 심리학 서적들을 붙들기 시작했다. 그 즈음 읽었던 이 책은 그야말로 시기적절한 책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심리학책이기에 앞서 여행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지의 맛집이나 소개하고 가격대별 숙소나 안내하는 그런 여행기와는 다른 책이다. 시간대별로 정리되지도 않았고, 비슷한 장소끼리 묶이지도 않았다. 작가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이탈리아 로마, 독일 뮌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을 여행하면서 느낀 경험들을 바탕으로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자연스레 연결시키고 소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관리인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서 불같이 일어난 분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비와 안개와 습기가 가득 찬 파리에서 겪은 우울에 대해서 설명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에 대한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태도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로뎅 미술관에서 그의 여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 의문이 생기게 되면서 콤플렉스라는 감정을 떠올린다. 그 외에도 사랑, 공포,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투사, 회피, 자기애, 친절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마음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배경과 함께 설명한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단락을 옮겨본다.

 

오래도록 나 역시 결핍감을 추진력으로 하여 살아왔을 것이다. 그 결핍감을 메우려는 욕망을 마음의 동력 장치로 삼아 현실적인 무엇인가를 성취해왔다. 질투는 나의 힘, 분노는 나의 에너지, 콤플렉스는 나의 추진력… 다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나르시시즘적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일상의 어려움이나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멀리 떠나고자 하는 방어의식…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내 삶을 이끌어 온 게 틀림없다. 삶이 막다른 곳에 부딪친 이유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p.288)

 

작가의 삶을 끌어온 추진력이 결핍감, 질투, 분노, 콤플렉스, 방어의식이었듯이 지금까지 내 인생을 지탱해온 감정들도 그런 것이리라. 어느 한 가지만 삐죽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때로는 내 인생을 휘청거리게도 했을 것이고, 가끔은 사랑하는 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도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어쨌든 내 마음 속에 존재하고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것들이라면 소중히 다루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것이다.

 

"남에게 보이는 관심을 반만 줄여도 생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역시 게슈탈트의 말이다.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방어의식이거나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 중 하나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p.140)

‘완전’ 동의한다. 제발 좀 남의 인생에 관심 좀 줄였으면 좋겠다. 그 관심 본인한테 좀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직장 상사든, 선생이든…

 

이제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 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점이 더욱 만족스럽다.(p.195)

 

현재 내 마음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괜찮은 존재임을 인식하자. 내 존재를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이는 나 자신 밖에 없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타인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한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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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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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가 묻는다, 당신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 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78년 발표된 김만준의 ‘모모’라는 노래이다. 그리 널리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 만한, 지금의 4,50대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이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가사를 빌려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노래의 바탕이 된 작품은 다른 소설이다(미하엘 엔데의 ‘모모’도 굉장히 감동적인 작품이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노래가사 속의 모모는 프랑스 작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이다.

 

1975년 프랑스 공쿠르 상을 수상한 이 책의 저자인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가인 ‘로맹 가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로맹 가리’는 19년 전인 1956년에 이미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사실은 1980년 그가 권총자살을 하며 남긴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그에게는 왜 ‘새 이름’이 필요했을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죽기 전까지 고민했던 ‘로맹 가리’의 고뇌를 이 작품 <자기 앞의 생>을 통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슬럼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7층에서 우리의 주인공 모모는 아우슈비츠의 기억에 시달리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아간다. 늙고 병들어 치매기까지 있는 로자 아줌마는 창녀의 자식들을 키우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로자 아줌마가 노혈증을 앓게 되자 이번에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봐주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모모에게 애초에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모모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비정하고 모질기만 하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유태인 로자 아줌마, 친구도 가족도 없는 아랍인 하밀 할아버지,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 전환자 롤라 아줌마, 카메룬 출신의 흑인으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왈룸바 씨와 그의 친구들, 화려한 옷차림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고 다니지만 글을 모르는 포주 은다 아메데, 알제리 출신의 좀도둑 친구 르 마우트까지. 모모의 친구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국가나 제도로부터도 버림받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모에게 있어서 그들은 스승이다. 학교나 가정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삶의 진리를 모모는 그들의 삶에서 보고 배운다. 모모는 이들을 통해 고통을 견디고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법과 슬픔과 절망 속에서 기쁨과 희망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그들이 모모에게 있어서는 부모이며 가족이며 친구이며 스승이며 연인이며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런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나이, 국가, 종교, 성별, 혈연, 재산, 교육 따위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기에 그 관계는 더 풍성해지고 따뜻하고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들이 맺고 있는 관계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위에 열거한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된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동창, 같은 신을 믿고 있다는 신우… 기껏해야 그 정도가 아닌가.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모든 선입견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거리로 나서서 그 사람을 만나고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어야만 한다. 그래야 진심을 다해 내 인생의 짐을 함께 나눌 친구 하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13p)

‘인생에는 원래 두려움이 붙어 다니기 마련이니까’(31p)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99p)

‘그것은 정말 별세계였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106p)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116p)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267p)

 

모모는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손에 쥔 달걀 하나, 그것이 바로 인생인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로자 아줌마를 죽인 것도 태어나게 한 것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이라는 사실을.

 

열네 살 모모로부터 행복과 생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올해 서른다섯이고 멀쩡하게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한 나는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다. 행복이 무언지도 모르겠고, 여전히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몇 가지는 알겠다.

내 생의 무게를 감당해낼 이는 오직 나 자신 뿐임을. 그리고 진심을 다해 부르고 싶은 이름 하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또 분명히 내 앞의 생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스산한 바람 부는 가을이다.

가을바람은 우리를 독서가로, 철학자로, 로맨티스트로 만든다. 이 좋은 계절 가기 전에 좋은 책 한 권 읽고, 생의 의미를 곱씹고, 쓸쓸한 사랑에 눈물도 한번 흘려보자.

가을 가기 전에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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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여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오후세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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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를 둘러싼 소문의 진상들

 

아 , 그 얼마나 기다렸던가!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이 나왔다.

<꿈의 도시> 이후 3년 만이었던가. 나처럼 그의 신작을 기다리다 목 빠진 녀석이 여럿 있으리라. 그가 사는 일본에 찾아가서 제발 책 좀 자주 쓰라고 채근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발매 첫날에 받자마자 그날 밤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쿠다 월드’는 여전히 재미와 웃음과 풍자가 가득한 세상이었다.

이번에 나온 <소문의 여자>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책은 열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주인공 미유키를 묘사하고 있다. 왜 미유키가 ‘소문의 여자’가 되었는지, 과연 미유키를 둘러싼 소문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슬슬 살펴보자.

 

일본의 어느 지방도시. 미유키라는 여자를 둘러싼 은밀한 소문이 밤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미유키는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하고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느닷없이 색기를 발휘해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중고차 판매점 사무직으로 시작해 마작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을 유혹하고, 건축회사 사장의 애인이 되었나 싶더니 곧이어 예비 신부들이 다니는 요리교실에 나타난다.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후처로 들어앉나 싶더니, 남편 보험금을 받아서는 순식간에 고급 클럽 인기 마담으로 변신하고, 절에 나타나 젊은 주지와 관계를 맺고는 신도들을 조종한다. 미유키를 둘러싼 다양한 소문이 은밀하게 퍼지는 가운데 그녀와 관련한 남자들이 몇 년에 걸쳐 연달아 죽는 사건이 벌어지는데…(출판사의 책 소개 중에서)

 

첫 페이지부터 그야말로 온갖 부조리와 비리와 부도덕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중고차 매장에 몰려가 생떼를 부리는 블랙 컨슈머, 경영진이 모두 친인척에다가 영업사원들에게는 고물차를 타게 하고 본인은 렉서스를 몰고 다니는 중소기업의 사장, 그런 사장을 욕하며 낮에는 땡땡이치기 바쁘고 밤에는 마작장에서 날밤을 새우는 영업사원들, 인맥을 통해 시청에 취직한 공무원, 시영주택 입주를 미끼로 뻔뻔하게 사례금을 요구하는 공무원의 아내, 슈퍼에서 뒷돈을 받고 엉망인 재료를 구입한 문화센터의 요리강사, 자산가인 아버지의 유산상속을 두고 목불인견의 꼴을 보여주는 콩가루집안의 배다른 자식들, 삼 개월의 실업수당을 위해 취업을 포기하고 파친코에서 시간을 때우는 젊은 여자들, 또 그녀들을 어떻게든 꼬셔보려고 애쓰는 중년의 능글맞은 남자, 워킹푸어에다 하우스푸어로 내몰린 부모세대의 서글픈 모습과 그 궁상을 저주하며 유럽여행과 명품쇼핑만을 꿈꾸고 있는 딸, 담합과 낙하산으로 상부상조하는 건설업체들과 시청의 건설부, 돈에 눈이 먼 주지스님과 제 이익 챙기기에 바쁜 신도들, 경찰 내부의 파벌싸움에 수훈을 뺏기지 않으려고 초대형사건을 묻어두자는 형사과장, 이권 챙기기와 젊은 애인과의 연애에 눈이 멀어 의회 활동은 안중에도 없는 현 의회 의원.

 

이 모든 인물들이 ‘소문의 여자’ 미유키를 중심으로 퍼즐처럼 연결되어 있다.

미인은 아니지만 육감적인 몸매에 남자를 밝힌다는 소문의 그녀는 중고차 판매장과 마작장, 요리교실, 파친코 가게에 출몰하여 여러 남자를 쓰러뜨린다. 사실 그녀에겐 그 색기가 무기이다. 제 욕망을 위해 유혹과 사기,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녀, 무서운 여자다.

한국독자들에게 남긴 저자의 글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에 한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에만 발동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양심’과 ‘정의’같은 숭고한 단어들은 나의 욕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나 줘버릴 단어가 되어버린다.

악녀 미유키와 지방 소도시의 평범한 소시민들.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대상에게서 그저 선하고 성실하고 순수하고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평범한 소시민’ 그들은 욕심에 가득차고 한심하고 쩨쩨하고 어쩔 때는 찌질하기까지 하다. 우리 중에 그 누가 악녀 미유키를 손가락질 할 수 있으며,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이야기의 무대인 일본의 지방소도시처럼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친척이자 동창인 지방소도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혈연, 학연, 지연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그런 동네에서는 인맥을 통해서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일의 순서니 합리적인 과정이니’를 따지기 전에 아는 사람부터 먼저 찾아라. 지역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어떤 부도덕한 일, 탈법의 일도 불사하고 보통의 시민들은 그들이 배분해주는 이득에 만족해하며 사회의 부조리는 꼭꼭 덮어버리고 외면한 채 적당하게 사회질서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

 

입바른 소리 하고, 올곧고, 대쪽 같고, 개혁적인 사람은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도덕과 부도덕 사이, 합법과 불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적당히 내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이 장땡이다.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미유키를 둘러싼 소문의 ‘진상’(眞相)이 아니라 별 볼 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진상’(進上)같은 모습들이다. ‘진상’은 늦은 밤 술집 계산대 앞에서, 백화점 고객센터에서, 동사무소 복지과 앞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우리 안에, 아니 내 안에서 ‘진상’같은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보통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나 역시 눈꼽 만큼도 그들과 다를 게 없다. 내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거짓말을 내뱉고 부정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고, ‘양심과 정의’는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을 때만 용솟음친다. 남의 일에 대해서 마른 오징어처럼 와작와작 씹어댈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부끄럽다. 작품 속 찌질한 남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꼭 내 모습을 본 것만 같아서. 앞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자.

그래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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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슨 상상하니? 샘터어린이문고 35
정옥 지음, 정은희 그림 / 샘터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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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슨 상상하니?>

 

‘엉뚱한 상상’은 ‘용감한 상상’이다.

 

상상!

어른들의 세계에서 상상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접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아이 시절 그렇게나 떠들어대던 상상이라는 단어는 어른이 되는 순간 현실이라는 단어로 대체된다. 상상을 버리고 현실을 붙잡은 대신에 우리는 월급봉투, 아파트, 자동차 같은 것들을 얻게 된다.

그런데 과연 현실과 상상은 대립적인,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개념일까?

현실이라는 단단한 디딤돌 위에 서 있으면서도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꼬마 마녀 송송에게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편에서 마녀가 되고 싶다며 좌충우돌 소동을 일으키던 송송이 이번에는 제법 마녀의 티를 갖추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마녀의 이야기와 상상의 섬 이어도를 연결시킨 것은 정말로 기발한 발상이다. 제주 신화 속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이 이렇게나 멋지고 매력적인 존재였다니. 그녀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는 다수의 멋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마녀인 할머니, 엉뚱한 만화를 그리는 엄마, 호기심 가득한 꼬마 마녀 송송이까지. 꼬마 마녀 송송 시리즈에는 ‘백마 탄 왕자님’ 따위, ‘키스를 기다리는 공주님’ 따위 등장할 틈도 없다. 멋진 여성들이, 멋진 마녀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고, 풍요로운 세상이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엉뚱한 상상을 한 빗자루,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싶어 하는 아기구름, 공무원 대신에 마녀가 되고 싶은 송송. 이들의 상상은 실로 엉뚱하다. 하지만 엉뚱한 상상은 용감한 상상이기도 하다. 지금껏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상상이기에, 그 어떤 존재도 감히 그려보지 못한 꿈이기에.

세상에 엉뚱하고 쓸모없고 가치 없는 상상은 없다. 모든 상상은 아름답다.

 

금빛 억새 우거지고 보랏빛 쑥부쟁이 가득한 다랑쉬 오름, 수평선 아래 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섭지코지, 천 년을 살았다는 비자나무가 있다는 비자림 등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국적인 섬 제주라는 장소는 마녀들이 마음껏 마법을 펼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인 것 같다.

이번 여름에 제주를 방문한다면 다랑쉬 오름과 섭지코지, 비자림은 꼭 방문해보시길. 빨간 망토를 입은 꼬마 송송이와 요구르트를 맛있게 떠먹고 있을 송송이 엄마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을 설문대할망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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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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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게임의 룰은 반드시 지킬 것!

 

 

 

갑갑하고 답답하고 텁텁하기 이를 데 없는 요즘 내 삶에 유일한 낙이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는 일이다. 그의 소설이 없었다면 이 지리멸렬한 인생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싶다. 그의 소설은 내 인생의 구원자이고, 내 삶의 한 줄기 빛이며, 내 일상의 청량음료이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의 하나인 그는 미미 여사(<화차>, <모방범>의 저자 미야베 미유키를 매니아들이 부르는 호칭)와 함께 일본의 추리소설계를 이끌고 있다. 그가 썼다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일으킨다. 다수의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서 개봉한 <백야행>이나 <용의자 X의 헌신>도 그의 작품이 원작이다.

 

그의 소설은 한 번 손에 잡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올 초부터 읽기 시작해서 그동안 읽어댄 소설만 해도 열댓 권이 넘어간다. 추리소설 특유의 속도감과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곳곳의 장치들, 추리를 하나씩 풀어갈 때의 쾌감.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은 일본의 사회문제들(90년대 거품붕괴, 원조교제, 묻지마 범죄, 학교 왕따 문제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대단히 사실적이다.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이다. 그는 공학도 출신답게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소재를 빌려오기도 하고, 미스터리, 멜로, 호러, 판타지, 드라마 등 전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만도 40권을 넘어서는데, 그 중에서 대표작을 뽑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보통 다작을 하는 작가들은 작품에 따라 수준이 들쑥날쑥 하기 일쑤인데, 그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실망을 시키는 것이 없다. 이렇게나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모든 작품이 평단과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을 ‘필력’이라고 한다면 그의 필력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고 ‘갑중의 갑’이다.

 

그렇게나 열심히 읽었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절반도 못 읽었다. 그동안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재미있었던 몇 작품을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용의자 X의 헌신>, <악의>, <다잉 아이>, <새벽 거리에서>, <마구>, <백은의 잭>, <매스커레이드 호텔> 등을 꼽겠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게임의 이름은 유괴>이다. 이 작품 역시 일본에서 <g@m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소개한 책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는 사쿠마는 인생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여긴다. 그의 손을 거쳐서 성공하지 못한 게임은 지금껏 없었다. 그러나 대기업 부사장으로 인해 자신의 광고 기획이 좌절되는 난생처음의 굴욕을 맛보고 굴욕을 참지 못한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사쿠마에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부사장 딸의 가출 현장을 목격한 것. 첩의 자식이란 이유로 무시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주리. 부사장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복수를 계획한다. 바로 범인과 피해자가 파트너가 되어 펼치는 전대미문의 유괴 게임! 사쿠마는 게임의 달인다운 기막힌 방법으로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그녀에게 마음이 기운다는 것. 게임에 사적인 감정은 금물이지만 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한편, 부사장 쪽에서도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누가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게임의 승자가 지금 밝혀진다.’

 

사쿠마에게 있어서 모든 일은 게임이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성적의 우열은 게임의 승패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연애조차도 그에게는 게임이다. 자극적이고 수준 높은 게임.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얻었다는 것은 게임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게임에서 진 적은 거의 없다. 짜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그 게임에 집중한다면 어떤 게임이든 이길 수 있다. 또한 뛰어난 직감력과 과감한 결단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게임의 승리는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그런 사쿠마에게 굴욕을 안긴 이가 있으니 닛세이 자동차그룹의 부회장 가쓰라기 가쓰토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사쿠마가 아니다. 그의 딸을 유괴하는 것으로 그에게 게임을 건다.

 

“게임을 해보지 않을래?”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게임?”

“네 소망을 이루는 게임 말이야. 너는 가쓰라기 집안에서 네 가치에 걸맞은 액수를 빼낼 동수 있어. 동시에 나는 보수를 손에 넣고.”

“뭘 하자는 건데?”

“그거 뜻밖의 반응인걸. 이건 원래 네가 꺼낸 이야기야.”

나는 다시 한 번 캔 맥주를 손에 들었다. 꿀꺽 마시고 그녀를 계속 노려보았다.

“유괴 게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다. 게임의 달인 사쿠마가 아닌가. 너무 심심하고 뻔한 이야기 같은가? 하지만 이 게임의 끝에 기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일찍부터 실망하지 마시길.

이 모든 이야기는 게임의 제안자이고 범인이기도 한 사쿠마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대단한 건 아니야. 게다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편할 때가 많아. 누가 무슨 소릴 해도 상대는 가면에 말을 걸고 있을 뿐이지. 나는 그 가면 아래 혀를 날름 내밀면 돼. 그러면서 다음에는 어떤 가면을 쓰면 상대가 기뻐할까 생각하는 거지. 인간관계란 원래 번거로운 거야. 그렇지만 이 방법을 쓰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렇게나 ‘쏘쿨’하신 사쿠마가 피해자이며 게임의 파트너이기도 한 주리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슬슬 불안하다. 뭔가 수상쩍다. 결국 농락하는 입장에서 시작한 사쿠마는 농락당하는 입장이 되고 만다. 본인이 그토록 철저하게 삶의 철칙으로 받들어온 게임의 법칙을 스스로 어기고 만다. 게임의 패자에게는 쓰디쓴 결말만 있을 뿐.

굉장히 속도감 넘치고 감각적인 소설이다. 한 편의 오락물로써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작품성이 떨어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추리소설의 생명은 반전이 아니겠는가. 이 작품에도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나온다.

 

어린 시절 내게 책읽기의 재미를 가르쳐준 작가는 셰익스피어도, 괴테도, 톨스토이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내게 책읽기의 괴로움만을 안겨줬을 뿐이다. 10대의 초입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게 이렇게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기막힌 추리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명탐정 홈즈와 너무나 매혹적인 범인인 괴도 루팡 시리즈를 밤새워 읽으며 책과 친하게 되었다.

세계명작이니 고전이니 하는 책들을 굳이 무리해서, 괴로워하며 읽을 필요도 읽힐 필요도 없다. 세상에 재미있는 책은 널려있다. 재미있는 만화책과 추리소설만 읽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다. 책읽기가 괴롭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권한다. 그래도 책이 재미없다면 책 보다는 TV 리모컨이 어떠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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