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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를 통해 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그 희망을 서술하려 했다.
- 페터 한트케
책의 뒷면에 쓰여있는 작가의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든 문장이기도 하다. 2019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니 궁금하기도 했고.
시작은 아내가 남기고 간 짧은 편지였다. 남자는 아내가 호텔에 두고 간 카메라를 찾기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그러면서 남자의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때 남자의 정서는 굉장히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혼잣말이지만 아내를 향해 폭력성을 드러낼 만큼 불안정한 모습이다. 아내의 흔적을 쫒아 여행을 하면서 남자는 조금씩 변해가는데 거기에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 모녀가 큰 영향을 미친다.
80p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없고 변화시킬수 없다는 것이 타고난 내 본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감각이 둔감해진 탓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순간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야.
105p 나는 내가 그 모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를 더이상 원치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오히려 지금부터는 그 콤플렉스들을 배려하는 방법이나 생활방식을 찾아내는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되었다. 내게 적합하면서도 남들 또한 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삶의 방식 말이다.
108p 그러자 불현듯 이제 내가 서른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21p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사물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눈곱만치도
알지못했다. 그제야 비로소 내 주변의 일상적인 움직임에 대해 알고일는 어휘가 너무도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레어와 그녀의 딸을 통해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여행하며 알게된 "한 쌍의 연인"에게서 함께 살아가는법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117p 서로 원만한 합의를 거쳐 매번 새로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상대방의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대방은 그것을 당장 기피하지 않고, 먼저 그것이 자기의 삶의 방식에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125p "그러니까 마침내 우리는 둘 다 같은 꿈을 꿀 수 있게 된 겁니다."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클레어에게 아내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남자는 스스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후 아내가 보낸 사진을 받고 마음속에서 그녀와 헤어짐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139p 예전 같으면 서로가 한동안 만나지 못하면 아마도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을것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얼마후 남자는 클레어 모녀와 헤어지고 다시 혼자 여행을 한다. 결국에는 먼저 미국에 와있던 아내와 재회를 하는데 참 과격하다. 총을 쏘고 소리지르고.. 과격한 재회가 끝나고 서로 말없이 걷다 버스를 타고 캘리포니아에 가서 은퇴한 영화감독 존 포드를 만난다.
196p 당신네들은 항상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다른사람과 혼동하면 외려 뿌듯해하더군요. 동시에 다시 자기만의 독특함을 가지려고 하기도 하고요! 바로 그 때문에 당신들은 토라지고 모욕감을 느끼는 겁니다. 누구나 다 특별한 존재들이지요.
그후 남자와 아내는 마침내 서로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헤어지기로 결정하면서 이 작품은 끝이난다.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이 두사람은 만나게 될까? 였다. 쫒아가는 남자와 먼저 떠난 여자. 뭔가 숨바꼭질 같은 느낌이었다. 여행 초반에는 불안정한 정서를 보여주던 남자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내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고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작품상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으로 묘사되었지만 여행이 끝났을때는 많은것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두사람 과거에 대해서 그다지 언급되지 않아서 왜 여자는 편지 한장 달랑 놓고 떠나버렸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자의 말속에서 추측할수 있었던건 두사람 모두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는것뿐. 생각해보니 둘이 엄청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각자 나름대로 힘들었고 이런 과거들은 헤어지기로 결심한 상황에서 중요하지 않은것들 이었다. 어쩌면 여행 초에 남자가 혼잣말로 아내를 만나면 죽여버리겠다 라고했던건 헤어지자는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랬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도중 아내가 남자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협하는데도 남자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공격하지 않은걸 봐서는 확실히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며 내적으로 성장한게 느껴졌다.
둘이 다시 대면했을때 아내가 남자를 향해서 총을 쐈던건 여전히 그녀도 혼란스러운 상태였음을 알수있었다. 남자가 총을 뺏어 바다로 던져버린것은 헤어짐을 받아들였기에 더이상 서로를 향한 증오는 의미없음을 아내에게 보여주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존 포드의 대사가 아닐까 싶다.
'나'로 살것인가 '우리'로 살것인가? 작품속 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지만 결국 우리가 되지 못하고 나와너 였기에 서로 다른꿈을 꾸고 헤어질수밖에 없었던것 같다.
197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서 현재와 조금 다른 부분들도 종종 등장했지만 인간의 내적 성장이나 발전가능성, 희망 같은 인류 보편적인것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이며 누구나 한번쯤 깊게 사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