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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위상학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평점 :
한병철의 지난 저서, 「피로사회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온통 '긍정성'의 과잉 상태이며
지나친 긍정성은 독이 되어 자기 자신을 향한 폭력을 야기시킨다는 것.
이번 저서인 「폭력의 위상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모든 면에서 넘치는 노력을 발휘한다.
그 결과 과잉 커뮤니케이션, 과잉 생산, 과잉 성과, 과잉 행동 등
적절하다 못해 흘러넘쳐 에너지가 소진되기까지에 이른다.
즉 우울증, 소진 증후군과 같은 소진 증후군은 이에 대한 대가로서 겪는 문제점이다.
철학 '에세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에세이와 같이 훌훌 넘길 수 있는 종류의
책이 절대 아니다. 한장 한장 쉽게 넘길 수 없는 심오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과거의 폭력부터 현재의 폭력까지 되짚어보는 '폭력의 양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언급된다.
그에 더해 간간히 더해지는 저자의 생각을 곁들여 읽는 것을 쏠쏠한 재미를 더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부정성의 폭력의 긍정성을 다룬 부분이었다.
"모든 부정성이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형식은 상당히 많은 경우 건설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의 점증하는 긍정화 경향 속에서 소멸의 위기에 처해있다.
잘 알려진대로 컴퓨터는 머뭇거릴 줄 모른다.
컴퓨터는 타자의 자원이 결여된 까닭에 자폐적인 계산기가 되고 만다.
사유 역시 그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부정성과 결부되어 있다.
부정성이 없다면 사유는 계산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주저함의 부정성에서 비로소 박자, 리듬이, 그렇다. 시간이 생겨난다.
반면에 편집증적 봉쇄도, 분열증적 방종도 시간을 파괴한다." (p.181)
머뭇거림, 심심함, 기다림 등 내가 나를 자책하고 한심하게 여겼던 요소들이
결국 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느꼈던 감정이었다니,
더 이상 그렇게 더 생산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쓰진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시간이 생겨나는 일, 방향성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도
다시 되돌아가는 과정. 내가 그토록 원하는 '여유'가 생기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 사회 기저에 놓인 문제점을 좀 더 심층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