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스콜라 어린이문고 29
원명희 지음, 서영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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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내내 어린 시절 추억의 숲을 달리는 느낌이다. 세 명의 다람쥐와 키 작은 할아버지, 형태 어머니와 진구 아빠, 이러한 등장인물은 그 시대의 우리 가족이 모습이다. 다 허물어져가는 상가의 재건축 건물에서 신장개업한 세탁소는 친근한 주변의 물상이기도 하지만 다소 낯선 흥미를 끌게 한다. 수학 시험지를 빨간 색연필로 조작하는 장면에서 순진한 나의 모습을 투영한다.

이 글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복합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갈등을 세세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입체의 소묘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보는 피카소적 관점이 돋보인다. 형태의 당당하고 용기 있는 캐릭터는 우리가 닮고자 하는 표상으로서 각인된다. 목발의 파란 이미지는 마치 피카소의 초기 작품의 테마와 흡사하다. 스토리의 전개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다소 혼선이 있지만, 꿈과 죄책감, 플레이스테이션과 현실의 묘한 간극 속에서 의식의 흐름을 쫓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스트 적 기법이 살짝 엿보인다.

검은 줄무늬 고양이가 한쪽 다리를 끌며 간신히 문을 열수 있는 용기와 전학 오던 날 뒤집혀진 우산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어긋난 행로를 암시하고 있다. 친구의 협박과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일어나는 두려움은 괘종시계라는 상징으로 표출되며 노란 물풍선은 씻어버리고 싶은 그 무엇을 나타내고 있다. 마침내 풍선이 터지며 물이 쏟아지고 마음에 응어리진 것이 해소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극적 에피파니를 경험한다.

이 글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선한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성장소설이며, 육체적 장애 보다는 마음의 응어리가 더욱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회소설이며, 동시에 무엇이든 세탁할 수 있다는 희망을 근간으로 아이들의 꿈을 담고 있는 판타지 동화이기도 하다. 첫 출판 작품인 벽속의 아이들에서 나타난 빛과 어둠, 도형들의 극한 대조는 두 번째 작품에서 색깔을 덧칠하면서 그 기법 상 흑백시대에서 칼라 시대로 넘어온 듯한 변화를 보인다. 작가의 이러한 성찰과 변화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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