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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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서 사람의 일생이란 어린시절의 상처를 평생동안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죠. 나는 그날에야 비로소 그의 유난한 경쟁심을 약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다면 너에게 슬픔을 준 사람에 관한 얘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

"후…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이야길 해야 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쩐지 그의 리드가 자연스러워서, 나는 곧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좋아요. 맨 마지막날 이야기를 하죠. 우린 칠 년을 만났는데 작년10월 새벽에 그애한테 헤어지자는 문자를 보냈어요. 알아요. 문자로 이별 통보하는 거 별로라는 거. 하지만 여름에도 한번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애가 잡은 뒤로는 더는 얼굴 보고 말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우리 이제 그만하자. 부탁이니까 연락하지 말아줘.

"하지만 연락이 왔고, 나는 또 그애가 나오라는 대로 나갔고, 평소와똑같이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으로 늘 가던 성산동의 카페에 가서, 저는 말했어요. ‘너는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제 내 말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믿지 않고 나를 존중하지도 않는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다시는 보지 못한대도 더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거죠."

똑딱똑딱, 마루에 걸린 해바라기 모양의 시곗바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언젠가, 내가 처음 독립하느라 방을 구할 때 그애가 신물로 사준 것이었다.

그러곤 끝이었어요. 마지막 코스로 그애를 반포의 집까지 바래다주고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지 부르라고 말했지만 그런 날은 오지않았으니까. 그리고 왜 그랬는지 전 그다음날, 헤어지기 위해 갔던 카페에 혼자 다시 갔고 그때부터 그애가 늘 즐겨 먹던 자몽타르트를 먹고 재스민티를 마시기 시작한 거예요." 
나는 어느새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어졌다. 

근데요, 전 아직도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 엄청 병신 같죠. 근데 정말 궁금해요. 이유라도 알면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았는데 마지막 만났을 때도 두 시간 동안 떠든 건 나였지 그애는 아니었거든요.

그는 어느새 담배를 피우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트리에 걸린 전구가 따뜻하게 반짝였고, 거실엔 라디오 소리가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일 년 동안 아무하고도 하지 않았어?"
"네?"
"여자랑 안 잤냐고."
"상대가 있어야 하죠."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색해하는 나를 보며 그는 한일자로 입을 한번 굳게 다물어 보이더니 말을 시작했다.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과 하는 첫번째 섹스에서 사람은 아득한 슬픔을 느끼지. 난 삼 년 전에 이별을 했거든
좋아했어, 정말 많이, 그런데 헤어졌어, 헤어지는데 이유가 있다해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난 내 몸 위에 포개져 벗은 몸을 보면서도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어야 했는가를 생갔했었지,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고 할까? 난 궁금했어, 이 낯선 여자와 내가 왜 한 침대에 있는 거지? 
 난 궁금했어, 도대체 왜 이런거지? 왜 넌 날 이렇게 내버려두는 거지? 난 그 여자와 더이상 할 수가 없었어. 내 몸에 닿는 누군가의 살이 마치 돌덩이 같았지.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다시 옷을 입었어, 여자는 당황해서 화가 났냐고 물어보더군, 아니, 왜 화가 나겠어 난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고. 이번엔 내가 듣고만 있었다. 

"90년도말이던가, 중학교 삼학년 때 헤어졌던 첫사랑 여자애를 그놈의 아이러브스쿨 때문에 무려 십오 년 만에 다시 만나 그토록 궁금했던 나를 차버린 이유를 물어봤지. 그랬더니 뭐랬는지 알아?"

그는 허탈한 듯 우유갑을 접어 만든 재떨이에 담뱃재를 떨며 말했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자기는 비인문계를 가게 돼서 자격지심 때문에 그랬다는 거야. 세상에! 난 그때까지 틀림없이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십오 년 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얘길 하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사람이 누굴 좋아하고 헤어지는 데 이유라는 게 그렇게 부질없는 거더라고. 그러니 누굴 어떻게만나든 아, 우린 그냥 만날 수밖에 없어서 만났구나, 그러다 헤어져도, 헤어질 수밖에 없어서 헤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이유 같은 거 백날 고민해봤자 헤어졌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새벽 한시, 라디오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여자 재즈가수가 〈섬웨어 오버더레인보우>를 처연히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워리가 잠결에 일어나브레드 시리얼을 부스럭거리며 먹는 모습을 말없이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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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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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타임라인은 문문의 비행운이란 노래가사 부터 시작이었는데,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또 한명의 작가를 좋아하게 됐어. 사실 비행운 읽고는 와 이 작가 책을 몇번이나 덮었는지..
한 이야기가 정말 안읽히고 힘들어서 포기할까 했었는데, 이 책 읽고는 내 편식 탓이구나라는 걸 알게됐어. 이건 내가 그 책 중에 좋아한 이야기의 일부,

- 아빠랑 왜 헤어졌어?

새삼스런 질문에 당황하지 않으려 천천히 고개를 든다.

… 전에 말해줬잖아.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

재이가 내 앞에서 짐짓 어른인 척 사회적인 표정을 짓는다. 마치 자신이 사회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듯.

- 나 때문이야?

아니라고 몇 번 말해.

-그럼 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말해줘. 생일 선물로,

… 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명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꺼기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것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 그런 걸 다 설명하진 않는다. 대신 이 곤경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다 온전한 참도거짓도 아닌 말을 던진다.

아빠랑 왜 헤어졌냐고? 웅음…… 생각이 달라서?

재이가 뜻밖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을 훈계조로 이야기한다.
-그럼 토론했어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슴을 크게 부풀리다 가라앉히며 숨쉬는 걸 처음 배운 아이자세다. 그렇게 ‘댄과 수연 언니가 없는 댄과 수연 언니의 집‘에 시서히 적응해갔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혼자라는 느낌은 덜했다.
남편을 잃기 전, 나는 내가 집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몰랐다.
같이 사는 사람의 기척과 섞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뜬 뒤 내가 끄는 발 소리, 내가 쓰는 물 소리, 내가 닫는 문 소리가 크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떠다녔다.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게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드문드문 솟은 풍력발전기를 보자 평화로운 해양성 기후‘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이 섬나라 하늘이 언젠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하늘, 전쟁에 지친 병사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며 회상한 풍경과 닮아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앞의 ‘청명‘이 남의 집에서 떼다 붙인 커튼처럼 느껴졌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고,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한데, 뭐가 됐든내 것 같진 않았다.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학점 관리와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로 고등학생들보다 더지쳐 있었다. 물론 나도 초보 강사 시절의 의욕과 기대를 많이 있었다. 강의 후 실수를 복기하며 며칠씩 후회하는 일도 줄고, 강의실서 마저 못한 말을 중얼대다 잠자리서 아내를 놀라게 하는 일도드물어졌다. 학생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뒤, 그저 성실한 강사이면 될 것을 오늘 나는 왜 선생‘이려고까지 했을까 후회하는 일은 여전하지만, 졸거나 스마트폰 만지는 학생을 적당히 모른 척하고, 무례한 질문에 놀라지 않으며, 관계보다 실무에 더 신경쓰는사람이 됐다. 어쩌면 프로야구 선수, 프로골퍼 할 때 ‘프로‘ 강사에 가까워졌다 할까. 그런 내게 최근 프로 강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앉을 기회가 왔다.

몰라도, 같은 척이라도 내가 하는 거랑 다르다니까. 술자리서 교수들이 떠들 때 나는 느슨하게 들어요. 음, 저 말은 지루하군. 음,
저 얘기는 건질 만하네. 골라가며 듣는다고. 근데 애들은 안 그래.
똑같이 지루한 얘길 들어도 더 열심히 지겨워하고 더 열심히 저항한단 말이야. 너무 가만히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소극적인 추임새를넣었다.

-그렇죠.

그죠? 그게 젊음이지.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 안 그래요, 이선생?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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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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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대신 집은 책,
‘몫‘에서 최은영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이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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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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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그 잔상이 남아, 어제를 복기하고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그런 삶의 장면들이 있다. 소설 속 화자에게 희영과 정윤을 만나 편집부에서 내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그 순간이 바로 그런 기억 아니었을까.
그때가 지워지지 않는 탓에 아니, 배경처럼 남아 삶을 이어가게 하는 탓에 나는 오늘을 이어붙이고 어느새 나로써 성장한다.

희영, 그리고 정윤의 삶에 그때는 언제일까. 용욱을 만나 출국을 하게 만드는 그 순간은, 기지촌에 들어가 자신을 고립하면서도 살아가게 한 그때는 대체 언제일까.

나는 어느 장면을 따라 지금 이자리에 온 것일까.


최은영이라서, 시작한 소설에 내가 좋아한 최은영은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은영이라 실망할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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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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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세상 진리를 깨달은 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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