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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약국
김혜선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5년 11월
평점 :
『잔소리 약국』은 약사인 엄마의 고관절 수술로 인해 취향과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른 모녀 사이의 2년 11개월의 동거 생활을 담은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하게 된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약국의 일들과 약사인 엄마가 약국 문을 열 수 있도록 돌봄과 보조 역할을 하면서 겪었던 일상의 에피소드가 코끝이 찡한 공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만 보고 손님들에게 잔소리하는 약사를 상상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약국 문을 열며’로 시작해서 ‘약국 문을 닫으며’로 끝나는 소제목을 볼 때마다 천상 약국집 딸이구나 생각했다. 2부의 이야기 주제들이 약국집 딸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들이어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혼자 지지고 볶은 마음에는 2도 화상 버금가는 물집이 잡히고 흉터가 남는다. 물론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노년의 가족을 돌보는 모든 이의 마음에는 그런 화상이 있다. 심지어 돌봄을 받는 당사자마저도.”
-‘후시딘’도 ‘마데카솔’도 소용없을 때, 117쪽
“약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약국에 온다고 해도 결국 그 이유는 다쳐서, 아파서, 힘들어서다. 몸뿐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모든 동네 약국은 엄연한 영업장이자 자선사업 단체가 아니다. 터무니없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동네 약국에 왜 그런 이들이 끊이지 않는지는 알 것도 같다. 어떻게든 효능 있는 처방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모르는 척하며 속든, 알면서 속아주든, 염치 불고하고 내 사정을 비벼볼 수 있는 만만하고 낮은 언덕으로 느껴서가 아닐까. 동네 약국은 그런 곳인지도 모르겠다.”
-약국에 오는 이유, 135쪽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한 자리에서 50년 동안 약사의 일을 놓지 않았던 성실의 아이콘 같은 엄마와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약국 문을 열수 있도록 엄마를 돌보아준 딸의 노력에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세상 어딘가에 이런 만만하고 낮은 언덕 같은 약국이 있다면 위로가 될 것이다.
잔소리 약국은 추운 겨울날 차가워진 손과 언 마음을 데워줄 따듯한 손난로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