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껍데기만 보고 단죄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치솟을 무렵, 나는 그 사람들 편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응. 엄만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엄마에게 쌓인 감정을 풀지 못했을 때는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엄마는 조금 웃다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버렸다.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쇼코는 미소가 감도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일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 손짓과 표정에서 나는 위안을 느꼈고 쇼코로부터 위안받았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사실나는 일본에 갔을 때 쇼코에게 느꼈던 우월감을 기억했다. 너의 인생보다는 나의 인생이 낫다는 강한 확신이 들얶을 때
"우린 이제 혼자네." 쇼코는 그 예의바른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쇼코는 할아버지의 여름 중절모를 썼고, 나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던 베레모를 쓰고 갔다.
그때 쇼코는 그 예의바른 웃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이,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해졌다.
쇼코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주 상냥하게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 교실에서 쇼코가 수줍어하는 표정을 봤을 때처럼 나는 쇼코의 웃음에서 알 수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쇼코는 정말 우스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공감을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 커버린 어른이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