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만나는 기분이라고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그때 쇼코가 내 말에 화를 내거나 적어도 자기변호라도 했다면 나는 내가 했던 말들로 인해 이만큼이나 상처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건 착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하기에 억지로 썼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나는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될줄은 몰랐다. 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구 영화감독두되구. 힘든 대루 손 벌리지 않고 네 힘으로 살구, 까짓것 다 무시하면서 네가 하고싶은 대로 살지. 난 그거, 멋지다고 본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커피 깡통에 비벼 끄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에 대한안쓰러움을 숨기는 얼굴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연습이 잘 안 된 사람이어서 그런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비쳤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렁에 빠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나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겠지.

할아버지 때문에 도쿄로 가지 못한 게 아니야. 할아버지에게 내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 나에게 할아버지가 필요했어.

할아버지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했는데 그게 고작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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