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 모임은 어떻게
진 에드워드 지음, 이영목 옮김 / 대장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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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드라는 분이 쓴 예수평전이라는 책이 문득 떠오른다.

본인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함을 앞세워 나름의 주장과 글재주를 마음껏 드러내었는지는 모르지만,

건전한 비판이 아닌 한결같은 비난만 난무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아니면, 책을 쓴 저자가 바라는 독자의 수준에 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읽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이드의 글과 사뭇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는 분명히 알겠지만, 글을 이런 식으로 쓰는데 실제 대화라면 과연 어떨지.

나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 이건가? 나의 화려한 전적이 있으니 너희는 무조건 내식을 따르라? 글을 가장한 무슨 횡포인가!

본인 글대로 칼빈이 종교의 틀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당신의 글은 인격적인가?

 

역자의 서문 또한 겸손의 실마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함석헌, 김교신 이 분들 잘 모른다. 하지만, 무조건 이 두 사람을 깎아내리는 그의 표현도 결코 반갑지는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공동체를 살자. 말은 좋다. 그렇다면 실재적인 것을 내 놓아야 할 것 아닌가! 아무것도 안 써놓고 그 다음 단계를 알기위해 편지해라. 장난질? 책 읽으면서 이렇게 어이없던 적이 없었는데.

무조건 가정에 모이면 그게 공동체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가? 기존 교회가 무조건 다 나쁜가?

나도 개인적으로 교회에 대해 좋게 생각해 본적 별로 없다. 하지만, 성경일부를 방패막이 삼아 나만 옳다는 주장 이건 아니다. 주저리주저리 더 쓰고 싶지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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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모임은 어떻게
진 에드워드 지음, 이영목 옮김 / 대장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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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의도는 알겠으나, 표현방법은 유아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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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행복론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주영 옮김 / 누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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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메탈에 심취해 있을 적에 세풀투라, 슬레이어, 드림시어터 등 의 초기 앨범을 들으면 약간은 어설픈 듯 하는 느낌을 받고 흔히 말하는 삑살이가 나는 것이 그대로 실려 있음을 보았다.

 

이 책의 제목과 주제는 행복론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논리야 놀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중고등학생들에게 한 주제를 놓고 3단 논법으로 풀어 나가봐라 하는 식의 기분이다.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어거스틴의 다른 책(자유의지론)도 봤었지만, 무언가가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어거스틴의 초기 작품을 접할 수 있어 좋았고 그의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어머니인 모니카가 등장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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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행복론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주영 옮김 / 누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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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고 그에 맞게 성장해 나가는 것. 제목과 내용이 따로 국밥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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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와 돈 대장간 문고 2
헤베르 루 지음, 심상우 옮김 / 대장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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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이란 것은 자발적인 기부나 사랑으로 은혜로서 형성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러나 어디 현실은 그런가? 전재산이 아닌 개인이 가진 일부만 내어 놓고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고 그 돈을 운용하는 교회에서는 얼마나 투명하고 깨끗하게 사용하는가? 물론 사람이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종교의 탈을 쓰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눈앞에서 시퍼렇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 현장이 아니던가! 글쓴이의 동네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여 이러한 저러한 제한이 많겠지만, 내가 사는 한국이라는 동네는 자유롭다 못해 방종의 극을 달리고 있는 곳이 허다하다.

 

성경에는 헌금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전에 우선 교회라는 단체부터 다시 검증받아야 하지 않을까? 과연 이 상태에서 내가 있는 공동체에 사도가 살던 시대같이 전적으로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함께 무리지어 살 수 있을까? 새로 변종된 기독교의 형태만 더 난리 치지는 않을까?

 

대부분 개인 또는 가정의 재정을 전부 헌납시키는 곳을 보자면 이단 삼단 소리를 듣는 곳이 많다.

 

물론, 개중에는 성경을 본받아 억지가 아닌 자유로이 공동체에 재산을 헌납하고 함께 살아가는 곳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는 헌금도 말은 자유라 하지만, 이름을 쓰고 액수를 적고 연말정산 한답시고 전산처리하고 더 웃긴 데는 주보에도 올리고 심지어는 광고시간에 헌금 낸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는 데도 있다.

 

더욱 봐 줄 수 없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개수의 헌금 봉투들, 그렇게 열심히 걷어 들여서 뭐하려고 하는지 의도가 정말 궁금하다(당연히 하나님사업에 쓴다고 말은 할 테지만).

 

저자의 글에 지역(문화)적인 차이를 빼곤 성서적으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실현해 줄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없지는 않지만 과연 얼마나 있을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마 19:24] 구절이 왜 이 대목에서 자꾸 떠오르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돈이란 상당히 민감한 부분 중 하나이다. 현세의 교회가 부유한 것도 부정할 수 없고, 반대로 언제 문 닫아야 할지 모르는 가난한 교회가 넘쳐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교회란 무엇인가? 왜 교회라는 거룩한 모임이 돈에 휘둘리는 것인가? 끌려갈 것인가 지배하고 갈 것인가는 각 신앙인과 그들의 모임인 교회에게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통용하고 함께하며 한 몸과 한 뜻을 이루는 교회와 모임들이 어디에나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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