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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논어 - 2500년 전 공자의 사상을 해킹하다
심범섭 지음, 공자 원저 / 평단(평단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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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는 古典속에는 인간의 고뇌와 회한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論語에는 仁義를 근본으로 하는 유학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공자는 자기자신을 仁을 가르치는 스승이라 칭했다. 자신은 그저 자아실현의 여정에서 조금 앞서나간 사람아라 생각했다. 또한 그는 孝가 仁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 여겼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 질문에 관한 탐구를 통해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현 시대를 아울러 인간의 도리를 고찰하고자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있어 먼곳에서 찾아 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군자는 그 근본에 힘을 쓸지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길 것이다. 효도하고 공손해함은 仁을 행하는 근본이니라.'
 공자는 옛 것을 살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溫故知新의 전수자가 되길 바랐다. 그는 제사-천제-장례 등 수세기 동안 이어오는 의전의 존속이유를 탐구하다 그 것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 근원을 소속감과 일체감이라 여겼다. 공자는 과거의 주나라때 화려하게 꽃피웠던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규범이 전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자는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은 후에 일을 시킨다. 백성은 신뢰를 얻지 못한 군주가 일을 시키면 자신들을 괴롭히는 권력자라고 생각한다. 군자는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윗사람의 잘못을 간해야 하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간하면 자신을 비방한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혼란하였다. 신하가 권력에 눈이 멀어 군주를 죽이고,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 하는 등의 하극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공자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3세때 아버지를 여희고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옛 글을 읽고 배우며 스스로 견문을 넓혀나갔다. 그리하여 30대에 접어들어서는 훌륭한 스승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때부터 공자는 개개인의 사소한 문제를 뛰어넘는,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법으로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법망을 벗어나려고만 하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또한 잘못을 고치려고 할 것이다.'
 유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대목으로, 덕과 예로써 인간의 참된 인격적 변화를 유도하길 강조하고 있다. 법으로는 인간관계를 규정할 수 없으며 참된 자아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대중에게 덕으로써 존경받는 위정자를 높은 직급에 두어 아랫사람을 교화하는 유가의 사상과 현세의 통찰력이 뛰어난 위정자를 고위직에 두는 법가의 사상은 첨예한 대립 관계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하지만 역사속에서 인간이 행복했던 시기보다 불행했던 시기가 더 길었으리라. 말하자면 그 때는 이기적인 행복에 눈이 먼 몇몇의 인간이 타인을 불행으로 몰아간 때이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권리이자 의무이다. 3억마리의 정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세상 빛을 보고있는 인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세상의 부조리이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연구한, 인류의 행복을 기원한 공자의 영혼은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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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은 감동 그 자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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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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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고기를 먹는 습성은 아주 자연스러운 관습처럼 여겨져 오고 있다. 아무생각 없이 정육점으로 가서 고기를 산 뒤, 아무생각 없이 고기를 굽고, 아무생각 없이 맛있게 먹는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도래한 그 언젠가부터, 축산업도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물결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등장한 것이 바로 공장식 대량 축산이다. 방목 축산과 달리 공장식 축산은 시간과 비용의 측면에서 굉장한 이득을 가져왔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지 저렴한 값의 고기를 원하는 만큼 양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작은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고기는 어디서 왔지? 과연 이 고기를 믿고 먹어도 될까?

 과거에는 경작으로 재배한 채소를 먹는 것처럼 돼지나 소를 방목하여 필요한 만큼 기르고 먹었다. 그러나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은 소비를 목표로 하지 않고 상품을 생산하는 그 자체에 목표를 두고 무지막지한 도축산업을 벌이고 있다. 그곳의 동물들은 오로지 인간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인 것이다. 햇빛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고,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어 있는 사형수들 이다. 이렇게 고문과 핍박을 받으며 온갖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의 살이 우리네 식탁에 오르고 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은 공장식 축산 산업의 모태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저렴한 값에 많은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동물들에게 더욱더 저급한 사료를 먹이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사육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식욕을 위해 동물은 희생되어야 함이 마땅한 것인가. 인간에게 동물이라는 존재는 그저 먹잇감에 불과한 것일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과 동물은 오래토록 긴 끈을 이어온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동물에게 감정이 있느냐,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야기 되어 오던 문제이다. 나는 동물이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의 필자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식에서 올바른 먹거리를 찾아주기 위해 축산업을 3년간 연구·조사 해왔다. 이는 어떠한 명예나 권력에 구속되지 않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필자는 돼지고기 뿐 아니라 닭, 돼지, , 계란 등의 모든 공장식 축산을 비판한다. 필자는 우리에게 동물을 먹지말자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 유해한 공장식 축산 고기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한다.

 앞으로도 인간은 지금껏 그랬듯이 동물을 음식으로 먹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업의 방식은 인간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질병이 닥쳐올 것이고, 동물들은 죽어가고, 자연은 파괴되어 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업은 점멸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올바르고 좋은 것만을 물려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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