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축구장에서
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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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일: 2022. 6. 17.

한줄평: 좋아 죽어 써내려 간 이 순정의 기록

- 김민정(시인),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추천의 말에서



이 책과는 어떻게 만났나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을 어떻게 만났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구매내역을 보면 2019년 11월 15일에 산 것 같은데, 분명 그전에 어딘가에서 만났었던 것 같단 말이죠. 아마 서점이었나 도서관이었나, 뜬금없이 도서 검색창에 'K리그'라고 쳐봤던 것이 이 책을 알게 된 경위일 겁니다.

  'K리그 팬이 낸 에세이라고? 이건 사줘야지!' 하며 책을 구매했었고, 곧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다 읽는 데 2년 반이나 걸렸습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에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지. 중간중간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던 기간도 있었지만, 지금 떠올려 보면 책을 읽어나가다가 '에잇!' 하고 덮었던 순간이 꽤 있었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미리 변명을 해보자면, 전 이 책을 매우 좋아합니다. 별점을 보면 아시겠지만, 5점 만점을 줄 정도로요.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를 표시해둔 것만 84군데나 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 책을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다' 생각했던 순간들은 대부분 축구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응원하는 울산이 성남에게 진 다음날, 울산을 잡았다며 히죽이고 있을지도 모를 저자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서 읽기를 멈췄던 적. 울산이 또 라이벌 팀에게 패배한 날, '축구는 생각하기도 싫다!'라며 다른 책을 열었던 적. 울산이 또 눈앞에서 우승을 놓쳤던 날...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책의 독서 진행도는 방지턱을 수도 없이 넘어야 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한 줄 평으로 인용한 김민정 시인의 표현처럼, 이 책은 거의 364 페이지짜리(종이책 기준) 연애편지 같습니다. 연인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나요? 오랜 연인들의 편지에는 둘만의 추억이 소록소록 쌓여 있잖아요. '이때 좋았었지. 이때는 우리가 좀 힘들었었지. 그래도 이때는 우리 정말 행복하지 않았니?' 하며 두 사람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내용처럼, 이 책에는 K리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읽을 수 있는 추억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이 책, 어땠나요?

  저는 그 '연인들'의 범주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며 더없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저자의 표현은 신선하면서도, K리그 팬 입장에선 공감이 되기도 하고, 우리라서 웃을 수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84군데나 표시해둘 만큼 흠뻑 빠져서 읽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아쉬운 점이 있긴 했습니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저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미 7년 차 울산 팬이었습니다. K리그를 본 기간을 따지면 7년보다도 더 길겠죠. 그래서 완전히 'K리그 팬의 눈'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K리그에 무관심하던 사람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궁금하지만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드문 취미 생활(매 라운드 결과에 이다지도 휘둘리고 있는 사람에게 '취미'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을 가진 사람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K리그 팬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답 없는 개축 오타쿠들의 급발진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답 없는 개축 오타쿠 중 한 명으로서,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동한다면, 가까운 팀의 K리그 경기를 구경 가보시는 것도, 꼭 한 번쯤은 경험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쩌면 당신도 우리 '연인들'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게 전부가 아니다. K리그 팬들은 더 근본적인 싸움에 마주한다. 쓸쓸한 관중석을 보며 나의 팀과 그 팀이 속한 리그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에 화를 낸다. 그러다 이따위 경기를 하는데 관중이 참도 찾아오겠다 욕을 하다가, 그걸 보겠다고 여기 와 퍼질러 앉은 나 자신조차도 못마땅해져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만다. 또 그러다가는 이런 나를 받아 줄 곳은 결국 이 팀밖에 없다는 데 또 화를 낸다. 이렇게 자기 안의 쓸쓸함과 우울함, 나아가 인생 자체와도 싸운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구제불능인 점인데, 그걸 내심 즐긴다……. 참으로 유난스럽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이런 ‘직관주의자들’이 경험하는 시간의 밀도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코즈모폴리턴의 축구는 모든 경계를 지우고 "우리는 하나" 같은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단합된 하나’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개인들’ 혹은 ‘한 무대 위의 경쟁자이자 협력자’니까.

그런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서포터스의 모습이었다. 이 열정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슬프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꿋꿋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구단에서 나눠 주는 우비도 마다하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해서는 흔들림 없이. 무심코 바라본 한 젊은 서포터의 요동치는 목울대와 꿈틀대는 목 핏줄을 보니 코 안쪽에서 고추냉이가 도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다른 팬들의 모습도 차근차근 훑어보기 시작했다. 맨 앞 난간에 달라붙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초등학생, 손깍지를 끼어 앞으로 모으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20대 여성, 잠시 안경을 벗고 손바닥으로 얼굴의 빗물을 훔치고 있는 40대 여성,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앉은 60대 남성…… 모두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우리 팀에게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우리 팀에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사람들 그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는 일"이 곧 사랑의 한 정의 아닐까.

몇 달 동안 그라운드를 내려다보며 가장 많이 읊조린 말은 "어쩌려고 그래……."였다.

그런데 피해 의식 덩어리인 이 사람들은 말을 붙이는 태도가 떡잎부터 다르단다. ‘누가 봐도 K리그 팬’일 수밖에 없는 사장님이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데도,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본단다. "저…… 혹시 사장님 K리그…… 좋아하시나요?" 이미 눈에는 감격이 가득 차 있는데! 입가에는 설렘이 가득 차 있는데! 좀 더 확신하는 말투를 써도 되는데 말이다! 그 짠함을 너무도 잘 아는 사장님이 ‘내 그 맘 다 아오.’ 하듯 말해 주는 "당연하죠!"를 듣고서야 비로소 얼굴이 확 펴진단다. 그리고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밤새 술을 마신단다.

유일하게, 그것도 치킨도 맥주도 사 주지 않았는데도 한껏 경기에 몰입하더니 "이거 최고네! 다음 경기 언제야?"라고 되물어 왔던 단 한 명의 애인은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다. 축구로 고통받을 때마다 "이놈이 나한테…… K리그를……" 하고 부들부들 떨며 등짝을 때려 오는 것쯤은 평생 감수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놈의 월드컵 때문에 리그를 쉬어서 심심해 죽겠거든요!’

근데, 근데 있잖아, 이 사람들이 욕을 안 하네? 참더라고.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표정으로 선 사람도 있고, 거의 바들바들 떠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들 꾹 참더라고. 두어 명이 울면서 뭐라 뭐라 외쳤는데, 그 정도야 충분히 할 만한 말이었는데, 그마저도 누가 주먹을 딱 치켜드니까 옆 사람들도 따라 들고, 또 그 옆 사람들도 따라 들고, 그렇게 허공에 주먹이 좌악 퍼져 나가더니 말은 멈추고 흐느낌만 남더라고. 그러고는 ‘괜찮아, 괜찮아!’, ‘아직 플레이오프 남았어!’라고 응원해 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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