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저속한 행위이다. 그만큼 속옷은 그 누구든 당연히 겉옷 아래에 속옷을 입고 있으리라 의심치 않는 만큼 친숙한 의복이다.
그러나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속옷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형태도 아니거니와 성별 혹은 신분 고하 여부에 따라 용도가 바뀌기도 하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보온과 보호가 아니었다.
남성의 속옷은 과거와 지금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으나, 반대로 여성의 속옷은 남성의 성욕과 지배욕을 충족시키는 구속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주머니 전쟁>은 페미니즘 시선으로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말하는 여성 복식─속옷이 중심이나 겉옷 또한 자세하게 다룬다. 속옷이 오랜 시간 남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의 변화는 남성이 어떻게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읽던 도중 14~15세기 유럽에서는 여성을 재단하는 미의 기준이 다름 아닌 ‘다산(多産)’이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기함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성을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닌 인구를 늘릴 수 있는 존재라는 시선이 팽배한 만큼 입이 쓸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주머니 전쟁>은 코르셋을 비롯해 가랑이 부분이 트인 드로어즈, 크리놀린과 버슬 등 오랜 역사에 만연하게 자리 잡았던 여성 지배에 관해 페미니즘적인 시선으로 해당 의복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였고, 어떤 원인과 이유로 속옷의 형태가 변화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껏 마냥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드레스 복식이나 명화, 혹은 문화가 여성 억압으로 이루어졌다는 참혹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에 이르러 다양하고 편안한 속옷을 원하는 대로 입을 수 있는 데는 과거에 계속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다양한 투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대두되는 문제는 많다. 그러나 속옷은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혹은 기존 사회에 저항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선정적인 란제리와 퍼포먼스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사회 통념에 저항한 마돈나. 그녀는 단순히 여성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