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전쟁 - 자신을 사랑하는 법 via 여성의 속옷 역사 가치관 컬렉션 1
앰버 J. 카이저 지음, 허소영 옮김 / 상상파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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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저속한 행위이다. 그만큼 속옷은 그 누구든 당연히 겉옷 아래에 속옷을 입고 있으리라 의심치 않는 만큼 친숙한 의복이다.

그러나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속옷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형태도 아니거니와 성별 혹은 신분 고하 여부에 따라 용도가 바뀌기도 하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보온과 보호가 아니었다.

남성의 속옷은 과거와 지금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으나, 반대로 여성의 속옷은 남성의 성욕과 지배욕을 충족시키는 구속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주머니 전쟁>은 페미니즘 시선으로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말하는 여성 복식─속옷이 중심이나 겉옷 또한 자세하게 다룬다. 속옷이 오랜 시간 남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의 변화는 남성이 어떻게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읽던 도중 14~15세기 유럽에서는 여성을 재단하는 미의 기준이 다름 아닌 ‘다산(多産)’이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기함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성을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닌 인구를 늘릴 수 있는 존재라는 시선이 팽배한 만큼 입이 쓸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주머니 전쟁>은 코르셋을 비롯해 가랑이 부분이 트인 드로어즈, 크리놀린과 버슬 등 오랜 역사에 만연하게 자리 잡았던 여성 지배에 관해 페미니즘적인 시선으로 해당 의복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였고, 어떤 원인과 이유로 속옷의 형태가 변화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껏 마냥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드레스 복식이나 명화, 혹은 문화가 여성 억압으로 이루어졌다는 참혹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에 이르러 다양하고 편안한 속옷을 원하는 대로 입을 수 있는 데는 과거에 계속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다양한 투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대두되는 문제는 많다. 그러나 속옷은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혹은 기존 사회에 저항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선정적인 란제리와 퍼포먼스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사회 통념에 저항한 마돈나. 그녀는 단순히 여성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이와 함께 2017년 아월 에리츠쿠가 찍은 비욘세의 만삭 사진을 언급하기도 한다. 과거, 미국 흑인들은 백인을 응시하기만 해도 끔찍한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흑인의 직시는 정치적인 행동이 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저항의 시선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즉, 유색인 여성을 공격적이고 이국적인 성적 매력을 가진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낸시 데이비드슨은 거대한 라텍스 소재로 코르셋을 입은 여성의 몸을 표현한 조형물을 전시하는 예도 언급하였다. 거대한 가슴과 엉덩이를 풍자하면서 동시에 관람객에게 불쾌함을 선사한다.

나는 <주머니 전쟁>에 수록된 해당 작품의 사진을 보고 웃기기보다는 불쾌한 감정이 앞섰으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수많은 매체에서 연관도 없이 여성의 신체를 부각하여 광고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절로 입안이 씁쓸할 따름이다.

이처럼 여성의 속옷과 신체를 통해 사회에 저항하는가 하면, 미성년자 여성의 성 상품화와 관련해 나이에 맞는 브래지어를 만든 멋진 10대 청소년에 관한 일화 또한 읽을 수 있다.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미성년자 여성의 성 상품화가 노골적이게 되는 만큼 <주머니 전쟁>을 읽으며 더더욱 경각심을 느끼게 되었다.

더불어 본문과 별개로 챕터 중간마다 속옷에 관해 다양한 주제로 짧게 소개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떤 에피소드─정조대, 어른과 똑같은 의복을 입은 어린이 등등─든 매우 흥미로울 따름이다.

개중에서 트랜스젠더의 속옷에 관한 내용이 가장 인상 깊고 가슴이 아팠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속옷에 관해 간단히 설명한다.

트랜스젠더 남성 테리 티넬은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불쾌감을 주는 신체 부위는 사실 가장 큰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 곳이다.”

내가 인식하는 성별과 신체의 성별이 다를 때 느끼는 고통을 시스 젠더인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에피소드 마지막 문단의 문장을 읽는다면 그들이 해당 속옷으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바란다.

이 친밀한 의복은 여성을 통제하는 대신,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 되었다. 속옷의 소재로 면이나 레이스 중 무엇을 선택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란제리를 착용하는 여성 자신이다. 그리고 란제리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다.

<주머니 전쟁>은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이란 모든 여성에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기회를 주는 운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속옷을 입을지 말지, 소재나 디자인은 무엇으로 고를지. 설령 코르셋을 입는다고 해도 자신이 원한다면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는 과거에 수많은 여성이 그러하였듯 앞으로도 꾸준히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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