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지어 그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아. 아니 오히려 좋아●해, 복싱에 목숨 걸고 나랑 비슷한 삶을 살아왔을 이 사람하고친구가 되고 싶어. 그런데 그런 사람을 곤죽으로 만드는 상상을 하는 게, 실제로 곤죽으로 만들기 위해 주먹을 내뻗는 게 어느 순간부터 되게 힘들어진 거야. 이건 스포츠다, 직업이다 하고 계속 생각했지만 스포츠건 직업이건 맞으면 아프고 아픈건 싫거든. 진짜 싫고 기분 나쁘거든. 그런 걸 생각하게 된 날부터였어. 복싱이 하기 싫어진 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휙 그만둘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그러다가 그럴듯한 해결책을찾았어. 상대방을 미워해보기로 한 거야. 미운 상대를 때리는건 그나마 좀 쉬울 것 같았거든.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하려고 애쓰는 게 힘들듯이미워하지 않는 걸 미워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더라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미움을 억지로 만들어냈다. 세상 나쁜 것들을다 갖다 붙이면서 미워해야 돼, 미워해야 돼만 반복한 거야. 저사람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닐 거야, 저 사람도 날 때리고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거야, 맞기 전에 먼저 때려눕혀야만 해,
다시는 내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완전히 밟아버려야 해 하면서. 경기가 없는 날에도 나는 온종일 그런 것들만 생각했어. 내게 주먹을 휘두르고 싶게 만드는 것들, 그 감정을 좀더 효율적으로 응축시켜 오른쪽 글러브 안에 모으는 방법에 대해서만 -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