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에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국민학교 운동장을 해대다녔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다.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봐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보라고, 네가 잘 보고 얘기해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다.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실험음이 낀다는 걸.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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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1부 새1. 결정結晶0092. 실 0283. 폭설 0594. 새 0905. 남은 빛 1246. 나무 1432부 밤1. 작별하지 않는다 1752. 그림자들 2003. 바람 2114. 정적 2335. 낙하 2546. 바다 아래 2823부 불꽃 299작가의 말 327

않았을 때,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마침 제주로 짧은 연수갔다. 어렵게 저녁 일정을 빼서 택시를 불러 타고 인선의 집을 짓았을 때, 치매 초기라고 들었던 그녀의 어머니가 예상 밖으로까끔하고 차분한 노인이어서 나는 놀랐다. 인선과 달리 자그마한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음성이 고와 마치 아직 소녀인 채로늙은 사람 같았다. 잘 놀다 가세요, 내 손을 가만히 잡고 인사하는그를 뒤로하고 방을 나왔을 때 인선은 말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긴장을 하는지 정신이 또렷해지셔. 워낙에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정이라 그런가봐. 대신 나한테는 울기도하고 짜증도 내고, 어리광을 많이 부리셔. 내가 언니라고 생각할때가 많거든.
다음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오래전 겨울에 들었던 인선의 가출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상하게도 그 어머니만큼이나 인선이 안쓰럽게 느껴졌었다. 만 열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밉고 세상이 싫었으면 저렇게 조그만 사람을 미워했을까? 실톱을 깔고 잔다고. 악몽을 꾸며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린다고. 음성이 작고 어깨가 공처럼 굽었다고.
리에다.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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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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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다!
종교도, 권력도, 핏줄도, 도덕도 그 앞에선 소용없다인간의 생사여탈을 쥐고 흔들며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는 돈우리가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남에게 줄 때는 쉬워도 남에게 얻기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너나없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무엇일까.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력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비극적 연극의 주인공으로출연하는 것일까.
<작가의 말> 중에서

해. 부모가 남긴 돈 앞에서 모든 자식들은 다 쌈박질하게 돼있어. 그게 돈 욕심이 시키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다만 큰돈 앞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작은 돈 앞에서는 작은 싸움이 벌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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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 P191

◆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73.5×92cm. 1890년 2월 · 캔버스에 유채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자신이 먹을 빵을 직접 일해서 벌어야 한다면 저는아주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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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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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안에 내재된 최악의본성도 설명해주는가? 우리는 탁월한 친화력과 극악무도한 잔인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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