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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비극은 그 끝까지 완결되어 있고 일정한 크기를 갖는 고귀한 행동의 재현으로서,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에 따라 각기 다양한 종류의 양념으로 맛을 낸 언어를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고 비극의 재현은 이야기가 아닌 극의 등장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며 연민과 두려움을 재현함으로써 그러한 종류의 감정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실현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김한식 역, [시학],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131쪽
참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다. 그저 읽어야 하는 혹은 읽고 싶었던 텍스트에서 벗어나고 싶어 내 우편함에 전해진 책을 읽게 됐다. ‘어린 가정부 조앤’. 맙소사, 어딜 가도 AI비서 일색인 요즘 시대에 가정부라니. 적어도 성인 손가락의 두 마디 길이는 족히 되는 듯한 저 두께까지 확인하고나니 괜히 책을 집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과연, 스마트폰 액정에 훑어지는 헤드라인 기사들과 (자세한 내용을 탐독하기위한 클릭은 수반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지식 노동을 위해 단편적으로 우겨 읽었던 정보물에 익숙한 내 팝콘브레인이 1900년대 초 미국에 1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 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내 예상은 기우에 불과했다. 조앤은 세계 유수 대학의 석학이라던지 최근 중국 시장을 점령한 스타트업의 수장이라던지… 그러한 타이틀 하나 없는 어린-촌뜨기 -소녀 주제에 내게 독서 본연의 즐거움을 안겨줬다. 가장 최근까지 독서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았다면 이번엔 이를 넘어 내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독서의 또다른 기능, 독자의 카타르시스 실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나도 결국 그녀와 같은 보통의, 시대적 차별에 고통받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는 그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함으로써 나를 매료시켰다.
“재닛 러브레이스, 드넓은 세상, 새로운 삶을 찾아서 볼티모어로 향하다!”
14살, 우리나이로 고작 16살 (고로 중학생인 것!) 에 불과한 조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랑하는 챈들러 선생님과, 책과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일을 도맡아하게 된다. 따뜻한 가정이었다면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을텐데, 농장일을 하는 아버지와 세 명의 오빠들은 조앤의 사춘기 소녀적 감성과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에 눈곱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파업까지 감행하며 아버지와의 소통을 시도하다 소용이 없자 조앤은 어느 보통날 가출에 성공해 당시 미국 대도시중 하나였던 볼티모어로 향한다. 이 탈출은 조앤에게 육체적 자유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장을 안겨준다.
소설은 고로 이야기이기에 더이상의 줄거리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색이 바란 파란색 드레스가 있지만 일요일 미사에 갈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은 갈색 양복을 샀는데 역시 다른 드레스가 눈에 밟힌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써놓은 조앤의 일기를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점. 그래서 빠르게 지워져가는 일상에서 누릴 수 없었던 책에서 즐거움을 찾는 경험을 오랜만에 누릴 수 있었던 점. 혹은 조금 낯선 유대인의 삶을 새롭게 엿볼 수 있었던 점. 마지막으로 조앤이 역경에 굴하지 않고 먼훗날 샬럿 브론테와 같은 소설가를 꿈꾼 데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점 등을 남기고 싶다.
학창시절 작은 아씨들의 이름과 성격을 외우고 가끔 오만과 편견 같은 영화를 관람하며 지금과는 다른 시대적 상황에서 한 여성이 꿈을 꾸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에 한번쯤 빠져봤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비록 고전 명작들에 비해 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나 내용 전개가 아주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중간 중간 오타나 번역이 의심스러운 부분도 언급을 안 할 순 없겠다. 하지만 아무리 정보가 범람해도 이런 자전 소설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을 고려할 때 분명 이 책은 존재 가치가 있다고 또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빛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