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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패닉 -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ㅣ 팬데믹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인류사적인 사건인 코로나 19 사태, 이에 대해 슬라보예 지젝은 어떤 말을 할까?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지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팬데믹 패닉》, 이 책은 짧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이렇듯 잘 읽히는 지젝 책이라니! 다른 장도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 많은데, 특히 9장을 읽을 때에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 우리의 운명인가?’라는 글이다.
지젝은 “요즘 나는 때로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한다”라는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잘못하면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 안겨주는 ‘고통’과 ‘불안’, 이는 요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최근, 지젝은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 때문에 잠들기를 두려워하면서 공포를 느끼며 깨어 있곤 한다고 한다.
지젝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운행을 멈추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한 채 집에 고립되어 있는 중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지젝은 이야기한다. “나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 더 두렵다”라고. 밑줄을 그으면서 계속 읽어나갔다.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이라니,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는 하는 것일까. 지젝은 마치 해부학자처럼 현실의 피부에 메스를 들이댄다. 쩍 갈라지는 상처의 틈새로 나타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세심한 관찰자라면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어조의 변화를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요컨대 권력 지도층의 진짜 메시지는 우리 사회 윤리의 주춧돌인 노인과 약자의 치료를 축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을 읽을 때에는 스웨덴의 ‘집단 면역’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우리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취약한 노인과 빈곤층은 불가피하게 죽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는 미묘한 메시지들이 정말 몹시 불편했는데, 지젝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꼭 집어서 아프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진리인양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강자의 논리, 그것이 지금 우리를 더 끔찍한 악몽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
지젝은 또 이야기한다. “우리는 세 겹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의료 위기, 경제 위기, 심리적 위기.…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의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정치가 필요하다. 연대를 위한 결단은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다.” 정말 전적으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