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도 성악설도 나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랜 토론을 거쳐 완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교육에 신처럼 굴림하기도 한다. 마치 6~8개의 팔과 3~4개의 얼굴을 가진 아수라가 생각났다. 아수라는 그 특이한 생김과 같이 매우 특이한 사연을 지닌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에서 악마로 추락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정의의 신이 어떻게 악마가 됐을까? 자기의 딸이 당한 것에 분모하며 힘의 신 인드라에게 대적하면서 도저히 신의 세계에서 추방을 당하기 때문이다. 아수라가 가게 되는 곳은 아수라장, 즉 영원히 싸우는 세계이다. 부모로서 신처럼 굴림해야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의 자식들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 부모에게 힘과 용기를 구걸하거나 매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야 된다. 맹목적 기도는 영원한 미성숙을 줄뿐이다. 대신 고통은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격려를 통해 해줘야 하는 것이 부모가 해주어야 하는 자세가 아닐까?
우리는 지난 IMF 같은 경제적 위기로 완벽한 직장도 완벽한 미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적인 미성숙과 삶의 불안전함이 결국엔 아이들에게도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해답을 도출해 가는 과정을 알려줘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