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 성서를 모르거나 예수를 모르거나
김진 지음 / 엔크리스토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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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김진 박사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갖고 쓰는 것임을 밝힌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한 김진 박사의 짧은 글을 다른 곳에서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대충 짐작은 했다. 내가 보기에는 짧은 형식의 글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말할 수 없어 책을 펴 낸 듯 하다.  

나는 가끔 신문이나 몇몇 전문 잡지 또 서적을 통해 김진 박사의 글을 보면서, 참 멋지고 신선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이라고 느끼며 한국 기독교의 장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 바로 멋지고 신선한 생각으로 혼자만 앞서 나간다는 착각,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이끌어간다는 착각을 고스란히 갖고 있음도 발견한다. 나는 김진 박사의 책을 읽으며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너무나 아쉬워서 이렇게 글을 쓴다(메모 창에다 이렇게 글을 쓰니 왠지 정리가 안되는 것 같고 참 어색하다. 다소 두서가 없더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한 김진 박사의 비판에는 같은 맥락에 있는 과대 평가와 과소 평가가 공존한다. 이 모습은 김진 박사의 현재의 지식 수준이나 사상의 형태가 아니라 '성숙도'와 관련이 있다. 

* 과대 평가 : 영화는 영화다. 그것은 한때나마 '살짝' 영화 근처에 갔다 온 김진 박사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놀이이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소리지르고 블루 스크린 앞에서 쇼하는 특수 효과의 장난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감탄하고 놀라고...[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고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하고 또 교인들이 단체로 보고 아예 극장에서 예배를 보는 행동을 과대 평가하지 말았으면 한다. 영화가 끝나면 눈물을 닦으며, 밖에서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하거나 못다 먹은 팝콘을 먹거나, 아니면 트름을 끅끅하며 밥을 먹거나, 또 현실에 대한 답답하고 짜증
스러운 이야기를 하며 다 원위치로 재빨리 돌아가는게, 우리네 '현대인'들이다. 현대인들은 재빨리 놀이를 끝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만약 영화를 보고 그것을 사실로 알고 거기에 흠뻑 젖는다면, 그건 비판할 게 아니라 그 순수함에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있다. 영화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영화나 예술이 삶에 전부여서 일반 대중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착각한다. 하지만 다행이도 예술은 삶을 위해서 있지만 삶은 예술을 위해 있지 않다.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약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냥 영화이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잘못된 믿을 갖고 잘못된 종교관을 갖고 잘못된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갖게 될 거라는 생각, 사람들은, 현대인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 과소 평가 :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의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김진 박사가 진짜 이야기하는 부분과 관련이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늘고 있는 일인데, 언제부터인지 좀 안다는 신학자나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는 할렐루야를 외치며 게거품 물고 소리지르거나, 마냥, 무작정, 별생각 없이 교회나 성당이 좋아 나가는 사람이나, 단순 소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묘한 무시가 있다. 그 반대로 대단히 지적이고 냉정하게 보이는 이야기들, 예수의 신화성, 역사적 예수, 예수 세미나 논쟁, Q문서 이야기, 에세네파와 초기 그리스도교 상황...현대 신학계의 흐름이었던 실존주의 신학이나...케리그마 이야기 등등을 하며 예수와 그리스도교를 이야기하면서 교회나 성당에 나가면 정말 제대로, 또는 지적이고 현대적으로 종교 생활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놀라지 말기를. 마냥 바보 같은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정도의 내용은 '감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지금은 21세기이다. 현대이고 이성과 합리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그런 세계 속에서 살고 교육받고 지시받고 생활해 나간다. 동정녀 마리아 이야기, 예수에 대한 각종 기적적인 이야기, 고난과 부활, 이 모든 이성의 이해 속에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우리 현대인들은 스스로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건 배운 게 아니라 21세기에 살면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다 폴 틸리히이고 루돌프 불트만이다. 틸리히와 불트만이 현대 신학을 내 세우며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비전을 보인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정리한 것이다. 모든 지성의 흐름은 그렇게 흐른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면, 사람들은, 현대인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후대에 많이 각색된 복음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그리스도교인들이 중세 시대의 믿음을 갖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설과 신화적인 내용이 가득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진짜를 끄집어 내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고 아는 우리들이다. 진짜 걱정해야 될 게 있다면 어떤 일말의 우직함(?)도 없이 그것을 너무 '여우' 같이 잘 하는 것이 문제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겉저리와 잘 익은 김치를 생각했다. 지식의 총합은 겉저리이다. 겉저리도 먹을만 하지만 역시 김치는 숙성된 것이 제맛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상의 총합은 김치이다. 그것은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훨씬 더 세밀하고 진지한 관찰이 필요하다. 정말, 솔직하게, 얼토당토 않은 엘리트 의식은 버려야 한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기다리고 멈춰도 보고 참을 줄도, 그냥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쭉쭉 앞서 나가야 하는 '진보적인' 김진 박사에게는 힘들고, 어쩌면 어울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어설픈 지식의 총합과 다이제스트판 사상이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는, 그게 진짜 진보이므로.

아, 그리고 정말 [멜 깁슨...]에 쓴 내용을 책으로 내고 싶다면 좀 더 후에, 다른 기획으로 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실제 내용은 궁극적으로 요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인데, 멜 깁슨이 제목 첫머리에 나오고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 금년 4월에 상영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해 쓴 책처럼 보인다(물론 그 영화가 직접적인 동기가 됐겠지만). 아마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관련된 책이 잘 팔려 우후죽순 처럼 나오는 상황에서 뭔가 될 거 같다는 생각에서 나온 듯 한데...왠지 나름대로 논리와 생각이 있는 김진 박사의 책이 출판계에 널려 있는 '5분대기조'들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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